<청춘이란 파도> 울보의 헤어짐

청춘이란 파도를 즐기는 중입니다. EP 3

by 해일

서른하나에 떠난 호주 워킹 홀리데이! 호주를 방랑하는 중입니다 :D


IMG_0598.JPG 내가 새로 떠나는 길이 알록달록하고 예뻤으면 좋겠다

2019년 12월 31일 새로운 한 해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그날, 일 년 동안 정들었던 회사를 떠났다. 이제 드디어 준비 기간 1년을 거쳐 온 나의 또 다른 모험의 곧 시작 될 해였다.


서른의 마지막 날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들은 바로는 서른 보다 서른하나가 되던 순간에 기분이 더 이상했다던데 나는 딱히 느끼지 못했다. 나이가 한 살 더 늘어났다는 것보다 막연하게 꿈꾸던 일을 실행할 순간이 곧 다가온다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더 컸다.


호주로 떠나기 전 두 달 동안 알차게 놀면서 막바지 영어 공부에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역시 생각에 그칠 뿐이었다. 역시 나는 인간적인 사람인가 보다. 인간미가 너무 넘치기에 막판 일주일 동안 다 못한 영어 책을 몽땅 필기해서 가져가기 위해 하루에 몇 시간을 노트와 씨름해야 했다.


서울에서 돌아와 2년을 본가에서 함께 살면서 엄마는 귀찮게 구는 나에게 빨리 다시 독립하라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막상 딸과 떨어질 날이 점점 다가오니 딸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 슬픔으로 하루를 보내고 계신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엄마와 많은 것들을 하려고 노력했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약속이 있어 외출하거나 외박하지 않는 이상 엄마와 늘 같이 저녁을 먹었고, 엄마가 점심시간에 볼 일을 보러 회사 밖으로 외출할 때는 점심도 같이 먹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비싼 음식을 먹은 건 아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함께 하는 순간을 즐기는 그런 소소하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시간으로 채웠다.


설날에는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사랑니를 발치했다. 약 두 달여의 치과 진료의 마지막 관문이자 떠나기 전 치를 가장 큰일이었다. 매복 사랑니였기 때문에 더 퉁퉁 부은 몰골을 하고 어영부영 일주일을 지나고 나니 출발 일주일 전이었다.


방 한 켠에 옮겨놓았던 캐리어를 본격적으로 펼쳐두고 무언가 생각 날 때마다 짐을 담았다. 리스트를 쓰려고 몇 번이나 시도는 했지만 시도에 그쳤을 뿐이었다. 엄마는 내 방에 들어올 때마다 내가 펼쳐놓은 캐리어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셨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으셨다. 그저 자신의 딸과 함께 무사히 여행을 다녀오라는 듯이 쌓인 짐들과 캐리어를 종종 쓰다듬을 뿐이었다.


짐 싸기의 마무리는 역시 엄마의 손길이 닿아야 했다. 정리 정돈 달인의 손으로 넘겨지니 요리조리 물건이 잘도 자리 잡았다. 그렇게 바리바리 챙긴 타향살이 짐들을 싣고서 디데이를 맞았다.


서울에 사는 동생까지 집으로 내려와 다 같이 공항으로 향하는 아침이었다. 나는 전 날 마지막 준비와 엄마에게 줄 편지를 쓰느라 늦게 잔 탓에 차 안에서는 비몽사몽이었던 순간이 더 길었다. 휴게소를 들릴 때만 맑은 정신을 가진 기분이었달까.


다행히도 수화물은 미리 무게를 맞춰 온 덕분에 문제없이 보낼 수 있었고 오랜만에 등에 멘 백팩 하나만이 비행기에서의 여정도 함께 할 동반자였다.


놀러 나온 듯 가족들끼리 맛있는 걸 먹고 디저트까지 즐겼다. 풍경이 공항이라는 것만 빼면 평소와 다름없는 한가로운 일요일이었다. 겨울이라 가족들이 운전해서 천안에 있는 집까지 돌아갈 길이 더 빨리 어두워질 것 같아 평소보다 일찍 출국 수속을 하기로 했다.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 끄트머리에 나도 자리를 잡았다. 그제서야 정말로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눈물을 보이기 직전이었고 나는 눈동자에 가득 차오른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한껏 힘을 주고 있었다. 울지 말고 헤어지자고 말했던 엄마의 다짐이 무색하게 헤어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울고 있었다.


눈물을 참기가 힘들어 줄이 점차 주는 동안에 계속 손을 내저었다. 나는 이제 들어갈 테니 먼저 자리를 떠나라고, 그렇지만 나와 가족들은 서로가 작은 점이 되고 출국장 안으로 사라질 동안까지 손을 흔들었다.


완전히 가족들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작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모두 여행을 떠나는 사람뿐인지 나만 울고 있는 기분이라 빨리 그치기 위해 계속해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깜빡하고 필통에 챙겨온 칼과 가위를 뺏기느라 쏙 들어간 눈물은 출국장에 들어간 나를 보기 위해 이층 통로에 서있는 가족들을 보고 다시 흘러나왔다. 진짜로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손을 흔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금세 통통하게 부어오른 눈두덩을 가리기 위해 살까 고민만 했던 선글라스를 샀다. 슬픔을 핑계로 또 소비를 했다.


일찍 게이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친구들과 통화를 나누고 나서 동생이 가방 안에 숨겨두었다던 편지를 찾아서 읽었다. 동생의 편지를 읽는 게 오랜만이라는 것을 느끼며, '내가 동생에게 편지를 마지막으로 쓴 건 언제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새 부쩍 독서량을 늘려가며 메모를 하던 동생의 작문 실력은 상당했다. 어느 새 이렇게 많이 컸나를 느끼며 동생이 직접 마음을 담아 적은 편지를 보면서 나는 또 울었다..... 새 출발은 내 예상보다 더 울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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