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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면역체계의 붕괴

by 전하진


인간은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면역체계가 건강하게 작동하면 몸은 질병을 막아내고, 감염이 발생하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면역력이 약해지면 작은 감염에도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면역체계란 국가와 공동체가 외부의 충격과 내부의 갈등 속에서도 지속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건강한 사회적 면역체계는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건강한 의식체계가 받쳐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불안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공정한 거버넌스를 형성하며,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회복력이 바로 사회적 면역체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은 급속도로 사회적 면역력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원인은 우선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우리의 상식이었던 것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불안감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기후위기, AI 혁신, 정치적 양극화, 가짜뉴스와 정보 조작, 경제적 불평등, 팬데믹과 같은 위협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지구촌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러한 급속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과 미래 비전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형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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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단순하고 극단적인 답을 찾고, 강력한 선동가에게 의지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확산된다. 이런 경향은 사회를 극단적으로 분열시키고 사회를 파괴한다. 가정 폭력이 증가하고, 범죄와 약물 문제도 눈에 띄게 늘어난다. 이처럼 개인의 불안이 사회적 불안으로 확대되면서, 경제에도 영향이 있다. 불확실성을 느낀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망설인다. 경제 성장세가 꺾이면서 불안은 더 가중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면 전체주의나 포퓰리즘이 활발해져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사회적 균열을 심화했다. 지금도 비슷한 징후가 세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불안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제적 불확실성, 정치적 양극화, 기술 변화, 미디어 환경의 혼란 등이 얽혀 있다. 그중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안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9명이 기후위기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다고 한다. 이들은 희망보다는 불확실한 미래를 더 크게 느낀다. 기후위기는 이미 일상에 침투했다. 이상 기온과 자연재해가 잦아지면서 사람들은 일상적인 걱정을 넘어 구조적 불안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처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느낌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후위기 현상은 더욱 극명해질 것이며, 이것이 MZ세대를 비롯한 모든 세대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면서 경제적, 정신적 고통과 불안감을 유발하고 결국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 혁신이 낯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키운다. 기후위기만큼 심각한 불안감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에 의한 사회 변화다. 지금까지 인재에 대한 개념도 바뀌고 있으며, 이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오던 교육시스템의 대전환을 강요하고 있다. 일자리는 물론이고, 산업적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회복력을 갖추지 못한 채 극도의 불안감이 증폭된다면 사회는 건전하게 회복되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회적 면역체계 회복을 위한 대전환


이런 사회적 면역체계의 붕괴는 지엽적인 치유책으로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대전환의 시대에는 전쟁과 같은 격동의 시간을 거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격동의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국가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인간의 탐욕과 행위로 인해 초래된 기후위기라면, 인간이 탐욕을 버리고 저탄소 소비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탄소 경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방식이며, 문제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탄소 배출을 많이 한 선진국 시민 20억 명이 1년에 1톤씩만 줄이면 연간 20억 톤을 감축할 수 있다. 이는 고탄소 소비를 저탄소 소비로 전환시키고, 빠르게 고탄소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이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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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행동과 인식의 전환


사람들이 앞다투어 기후행동에 나서 1톤이라도 탄소를 줄이겠다고 한다면, 그 행위를 통해 인식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기후행동은 국가를 뛰어넘어 지구적 관점을 가지고 지구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행위다. 또한 지속 가능한 삶과 자연과의 공존을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후행동은 단순한 탄소 감축을 넘어, 사회적 면역체계 회복을 위한 교육이자 훈련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인공지능의 윤리적 방어체계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 기술적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의 윤리적 사용은 조작자의 윤리의식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지속가능한 삶 과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 대한 인식이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윤리적 인공지능의 남용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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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기후행동은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라, 미래 사회의 새로운 상식과 개념을 사회적 면역체계로 자리 잡게 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를 지구적 윤리관(Ethical)과 지속가능성(Sustainable)을 바탕으로 지구적 선(Global Good)을 추구하는 ESGG 프레임워크로 정리하고 체계화할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사회적 면역체계를 구축할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이제는 논의가 아니라, 실천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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