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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의 질서, 일상의 전환

대한민국이 이끄는 생태사회 전환

by 전하진

어릴 적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배가 아플 때 엄마가 쓰다듬어 주면 신기하게도 통증이 가라앉았던 기억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행위는 단지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비과학적이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을 간간이 접하곤 했다. 식물한테 욕을 하면 잘 자라지 못하고, 칭찬을 하면 잘 자라는 것 같은 일이다. 오래 전 한 대학 총장께서는 그렇게 식물을 키우며 보여 주곤 했다. 하지만 그 때는 이것이 왜 그러는 지 잘 설명해 주지 못했다. 우리는 막연하게 그러한 현상이 있음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행위는 몸과 마음, 관계가 교차하는 회복의 패턴이었다. 엄마의 손길은 부드러운 촉각과 따뜻한 온기로 아동의 신경계에 직접 작용해 복부 긴장을 이완시키고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시키며, 동시에 “괜찮아질 거야”라는 정서적 안정감을 전한다. 이로 인해 심박수와 호흡, 장운동의 리듬까지 조율된다. 나아가 손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열과 전자기장이 피부를 통해 전달되며 생체 전기 패턴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 존재가 고정된 구조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조율되고 동기화되는 ‘패턴적 존재’임을 잘 보여준다. 회복이란 약물이나 수치의 변화가 아니라, 이처럼 미묘한 관계의 공진(共振, resonance) 패턴의 재배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식물에게 인간의 말은 소리라는 물리적 진동일 뿐 아니라, 말하는 이의 감정과 상태가 깃든 에너지 패턴이다. 식물은 귀가 없어 말을 ‘듣지는’ 못하지만, 그 진동을 뿌리와 잎을 통해 느낄 수는 있다. 실험에 따르면 특정 주파수 대역의 음파는 식물의 수분 흡수와 생장을 촉진하며, 불규칙하거나 거친 소리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더 나아가, 사람이 어떤 감정으로 말을 하느냐에 따라 손끝이나 몸에서 나오는 미세한 전자기장 역시 식물 주변의 생체 환경 패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식물은 소리의 ‘의미’가 아니라, 그에 담긴 리듬과 공명에 반응하는 것이다. 이처럼 존재는 단단한 구조가 아니라 주변 흐름과의 조율 속에서 형성되는 패턴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말을 건넨다는 것은 곧 에너지와 패턴을 건네는 행위이며, 그것은 식물에게도 통한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산속에서 느끼는 평온함, 상쾌함, 심리적 안정감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리듬‧전자기 패턴과 우리가 공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역방향의 패턴 상호작용인 것이다.


‘형상’이 지켜지는 진짜 이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짧게는 며칠 길게는 10년 정도면 모두 새 세포로 교체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시체나이는 최장 10년을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제자리에 다시 배치된다. 비밀은 세포 자체가 아니라 세포들을 안내-정렬하는 미세 전자기 패턴(생체 전압 지도) 에 있다.

세포막 안팎의 전압 차(Vmem)가 신경 회로처럼 온몸에 “좌표계”를 그린다.

세포들은 이 전압 지도를 읽고 “여기는 각막, 여기는 홍채”처럼 자신이 취할 운명을 결정한다.

미국 터프츠대 Michael Levin 연구팀은 개구리 배아의 전압 패턴만 살짝 조정해 눈 세포를 원래 자리가 아닌 꼬리·배 쪽에서도 만들어냈다. 세포가 “눈”을 이루는 정보는 화학 물질에 있지 않고 패턴에 코딩돼 있다는 증거다.


이처럼 ‘형상’은 고정 구조물이 아니라, 에너지 흐름이 그려 내는 순간적 무늬다.


이를 이해하면 끊임없이 갈아 끼워지는 세포들이 어떻게 매번 제자리를 찾아가며, 패턴을 조정할 때 형상까지 바뀔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다.


고정물에서 흐름으로


우리는 흔히 인간을 “완성된 구조”로 바라본다. 뼈와 장기가 정해진 자리에 있고, 성격도 한 번 형성되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생명과학과 시스템 이론이 보여 주듯, 인간은 사실 입자·에너지·정보가 끊임없이 들고나는 동적 패턴이다. 세포 하나를 이루는 단백질은 몇 분에서 몇 시간 만에 교체되고, 뇌의 전기적 연결망은 매순간 새로 짜인다. “나”라는 존재는 이러한 흐름이 잠시 그려 낸 순간적 무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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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 사고가 열어 주는 세 가지 창


몸: “수리”가 아닌 “조율”
질병을 고장난 부품으로 보는 기계적 관점 대신, 전기·대사 흐름의 불협화음으로 이해하면 생활습관·환경을 섬세하게 조정하는 예방적 접근이 가능하다.


마음과 학습: 유동적 정체성
능력은 저장된 자산이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흐름이다. 직업과 역할을 여러 번 바꾸는 ‘멀티 포텐셜’ 인재가 탄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 · 경제: 순환 설계
도시 인프라, 기업의 공급망, 국가 경제까지도 고정 구조가 아니라 물질·에너지·가치의 패턴으로 보면, 재생·공유·재사용을 전제로 한 순환경제가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다.



패턴 관점으로 본 일상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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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선택 하나도 “흐름을 끊느냐, 살리느냐”로 판단 기준이 이동한다. 이는 SDX재단이 추진하는 VDC · MCC 같은 탄소 감축 메커니즘이 ‘감축량’이라는 정태적 숫자를 넘어, 탄소·가치 흐름의 재배선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태사회로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생태사회는 지구 생태계의 모든 생물종의 살아가는 방식을 인간도 따라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인류는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성장과 효율, 지배의 원칙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 원칙은 자원을 고갈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인간 스스로도 지속가능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순환의 원리를 망각한 채, 자연은 무한한 공급원으로만 인식하고 각종 폐기물은 외부효과로 치부해 버렸다.


결국 이런 선형적 사회가 유지 될 수 없음을 선고받은 상태가 된 것이다.


이제 지배, 성장, 경쟁 (지성경) 이 아니라 순환, 공존, 자율 (순공자)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생태사회는 자연처럼 모든 것이 순환하며, 버려지는 것이 없어야 한다. 다양한 생명과 존재가 서로 공존하고, 연결 속에서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중앙의 명령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자율적으로 적응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자율의 질서 속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인간 삶의 근본을 다시 세우는 문명의 전환 원칙이다.


지금의 상식을 깨고 이러한 생태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잘 살펴 보면 미디어나 사회적 이슈로 잘 드러나지 않은 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생태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Global South -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시아 등지에 위치한 개발도상국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 용어는 단순히 지리적 남반구 국가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발전 수준이 낮고, 사회·정치적으로 불안정하며, 인구 증가가 활발한 국가들을 포괄한다 - 라고 부르는 나라들의 많은 시민들은 여전히 자연과 가까운 방식으로 살고 있다. 땅과 물에 의존한 생계, 지역 공동체 중심의 협력, 낮은 에너지 소비 등 그들의 일상은 ‘생태적 삶’의 요소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 사회의 정치·경제 권력자들이 산업화와 경제 성장의 구호 아래, 외부 자본과 자원을 결탁해 생태적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부패, 토지 강탈, 기후재난의 피해 집중 등 수많은 사회적 모순을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태사회로의 전환이 본격화될 경우 — 무한성장 대신 순환, 공존, 자율이 핵심이 되는 새로운 문명질서 속에서 — Global South의 일부 국가나 지역이 ‘생태선진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삶의 흔적을 갖고 있으며, 전환의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고탄소 기반의 복잡한 인프라를 해체해야 하는 Global North와는 달리, 비어 있는 공간에 생태사회의 인프라를 처음부터 새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태선진국이란 GDP나 기술 수준이 아니라, 생태적 원칙을 사회 전반에 구현한 나라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오히려 지금까지 ‘후진국’이라 불리던 곳에서 더 크게 움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독특한 문화와 기회


우리는 대한민국이 생태사회 전환을 위한 역사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나라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단지 경제력이나 기술 수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땅의 민족성과 경험, 그리고 독특한 세대구조가 전환을 이끌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패턴’을 인식하고 그것에 따라 살아온 민족이다.


천부경이나 정역은 수리적 구조를 통해 우주의 순환과 질서를 설명하며, 훈민정음은 소리의 원리를 기하학적으로 조합한 문자 체계로, 자연의 패턴을 언어에 담았다. 단청과 전통 문양, 한옥의 구조는 반복과 균형의 미학을 반영하고 있으며, 농경사회에서 발달한 24절기나 김장철 같은 생활 풍습은 계절과 생명의 순환을 감지한 실천적 패턴 인식이다. 또한 풍수지리와 한의학, 기(氣) 중심의 세계관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과 관계의 질서를 중시해왔다. 이처럼 한민족은 고대로부터 보이지 않는 질서와 흐름을 읽고 조화롭게 살아온 ‘패턴 민족’으로, 이는 생태사회로의 전환이 요구하는 관계 중심적 인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은 공동체 중심의 삶과 ‘함께 가는’ 문화에 익숙하다. ‘우리’라는 표현을 일상처럼 사용하는 민족, 유교와 공동체 전통 속에서 상호의존의 미덕을 실천해온 민족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러한 문화는 생태사회의 핵심 가치인 ‘공존’과 ‘협력’의 토양이다. 개인주의적 경쟁보다는 관계 중심의 조화와 배려가 익숙한 한국인에게, 생태사회의 윤리는 낯선 미래가 아니라 되찾아야 할 전통일지도 모른다.


또한 대한민국은 압축적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대전환을 연속적으로 경험한 유일한 나라 중 하나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에 성공하고, 권위주의를 넘어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으며, 디지털 사회로의 이행을 선도해왔다. 이러한 복합적 전환 경험은 시스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새로운 질서를 상상할 수 있는 집단적 기억을 제공한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는 생태적 삶과 산업화의 삶을 모두 경험한 세계 유일의 세대, 즉 베이비붐 세대가 존재한다. 이들은 가난 속에서 자연에 기대어 살았던 유년기와, 고도성장 속 산업화의 중심을 모두 체험한 세대다. 이제 은퇴와 전환기를 맞이한 이 세대는 생태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가교 세대이자 리더 세대가 될 수 있다. 이들의 기억과 지혜, 그리고 지금의 자산과 사회적 영향력을 결합한다면, 생태전환의 동력은 의외로 가장 전통적인 세대에서 나올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민족적 정체성과 집단적 전환 경험, 세대적 자산이라는 세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 조건은 단순한 기후 대응을 넘어, 인류 전체의 문명 전환을 이끄는 리더십으로 확장될 수 있다.

리더십은 힘이 아니라 서사에서 출발해야 하며, 기술이 아니라 공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생태사회로의 전환을 세계에 제안하고, 실험하며,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사적 기회의 문 앞에 서 있다.



리덱스리더(LeadX Leader)에 의한 대전환 주도


대한민국은 생태적 삶의 기억과 산업화·민주화·정보화를 모두 몸으로 겪은 유일한 세대를 가진 나라로, 이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 문명의 전환을 이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자연과의 순환, 공동체적 공존, 자율적 삶의 질서를 회복하는 생태사회로의 대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이 흐름 속에서 한국은 후발국이 아닌 선도국으로 설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다.


특히 전환의 시대정신을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리덱스리더(LeadX Leader)를 양성하여, 지역에서부터 글로벌 네트워크로 확산시키는 전략은 지금 가장 현실적이고 시급한 과제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대한민국이 앞장서 전 세계에 생태문명의 실천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리덱스리더 양성 및 확산을 위한 실행계획에 돌입해야 한다.


리덱스리더(LeadX Leader)는 X(대전환)을 리드하는 리더라는 의미로서, 단순한 환경운동가나 시민참여자가 아니라, 문명의 방향을 전환하는 실천적 리더를 상징한다. 이들은 기후위기를 단순한 위협이 아닌 전환의 기회로 인식하며, 생태적 가치와 삶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앞장선다.


리덱스리더는 전환감수성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생태문해력탄소문해력을 갖추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며, 전환금융과 VDC·MCI·MCC 등 생태경제 메커니즘을 활용할 수 있는 실행력을 갖춘다. 동시에, 지역 공동체와 지구 공동체를 연결하는 감각,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확산 능력, 그리고 공존·순환·자율의 원칙을 실천하는 인격적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바로 리덱스리더다.

이들을 통해 더 많은 리덱서(LeadXer)가 탄생하여 대전환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것이다.


리덱스리더는 관계에 있어서 복잡한 흐름을 시각화·모델링하여 숨은 인과를 드러내는 능력—데이터 리터러시, 시스템 사고—가 필수 역량이 된다. 또한 흐름을 조율하는데 있어서도 자원을 쥐고 통제하는 힘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실시간으로 협상하며 집단적 리듬을 맞추는 조율력이 리더십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시간이 없다


어쩌면 기후위기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는 지 모른다. 생태사회는 순환, 공존, 자율의 사회다. 생태계에 적응하고 그 주변의 생물종과 공존하는 자율적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적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대전환 시기에 우리 민족이 잘해 왔던 것 처럼 지금의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식을 모두 깨고 새로운 사회를 창조해야 한다.


과거 새마을 운동이 우리 사회 대전환을 이끌었듯이 이제 지금까지 경험을 모두 집약하여 인류의 대전환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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