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이 시대에 '방주'를 묻는다면
우리는 지금 '돈'이 신(God)이 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가치는 숫자로 환산되고, 효율과 성장이 곧 선(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견고해 보이던 '머니로직(Money Logic)'의 바벨탑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다중위기(Polycrisis)의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기후위기라는 대홍수,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실존적 위협,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 이런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 거대한 파국 앞에서 우리를 구원할 방주는 어디에 있는가?"
저는 그 답이 거창한 국가 시스템이나 초월적인 기적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살림셀(Salim Cell)'입니다. 이것은 최첨단 기술과 정책의 결과물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류가 수천 년간 갈구해 온 종교적 이상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어쩌면 종교가 지향하던 그 곳을 향해 열심히 달려 온 진화의 과정으로 머니로직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 부모 품에서 욕심내고 자라듯이요. 이제 청년이 되었으니 정신적 성숙이 필요할 때가 되었지요. 저는 인류가 이제 어른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라고 비유합니다.
오늘은 기술이나 경제가 아닌, 영성과 철학의 언어로 살림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카톨릭 사회교리에는 '보조성의 원칙(Subsidiarity)'이라는 보석 같은 지혜가 있습니다. "작은 공동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거대 권력(국가)이 빼앗지 말고, 오히려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살림셀은 '보조성의 원칙'이 작동하는 민주적 터전입니다. 국가가 모든 생존을 통제하고 배급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살림셀은 밥을 짓고, 에너지를 만들고, 서로를 돌보는 고유한 권한을 마치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처럼 국가로부터 다시 찾아옵니다. 국가는 전적인 관리자가 아니라, 살림셀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든든한 '지원자'로 물러섭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은 하나"라고 역설했습니다. 기후위기 해결과 가난 구제는 따로 갈 수 없다는 '통합 생태론'입니다. 살림셀은 바로 이 가르침대로, 탄소를 줄이는 행위(Eco)가 곧 이웃을 살리는 경제(Economy)가 되도록 설계된 '통합적 구원선'입니다.
성경 속 노아의 시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며 시집가는 일상에 취해 다가올 홍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배, 성장, 경쟁'의 머니로직은 우리를 탐욕의 노예로 만들었고, 창조 질서인 지구 생태계를 파괴했습니다.
성경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경고합니다. 맘몬(돈)의 질서가 무너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을 보존할 '방주'입니다.
살림셀은 '분산형 방주(Distributed Ark)'입니다. 거대한 하나가 아니라, 곳곳에 흩어진 수많은 작은 방주들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Zero Basic)하고, 서로를 형제처럼 돌보는(Culture Basic) 삶을 회복합니다.
또한, 살림셀의 주인은 지배자가 아닌 '청지기(Steward)'입니다. 지구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잠시 맡아 관리하는 곳임을 깨닫고, 자연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 시대의 '남은 자(Remnant)'들이며, 살림셀을 이끄는 리더들입니다.
3. 불교의 '인드라망'과 '보살행'
불교는 이 세상을 '인드라망'이라는 거대한 그물로 비유합니다. 우주 만물은 그물의 코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가 아프면 모두가 아픕니다. 이것이 연기법(緣起法)입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나'와 '너'를 분리하고, 끝없는 탐욕(Greed)으로 이 연결망을 끊어놓았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기후 재난이라는 공업(共業)입니다.
살림셀은 '인드라망의 회복'입니다. "타자를 살리는 것이 곧 나를 살리는 길" 이라는 살림의 철학은 불교의 자타불이(自他不二) 사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또한 살림셀에서 이루어지는 탄소 감축과 돌봄 노동을 '살림바(Salim Bar)'와 '살림트로피'로 기록하여 보상하는 시스템 은, 보이지 않는 선행(공덕)을 기록하는 '현대판 인과응보의 장부'와 같습니다. 욕망으로 불타는 화택(火宅) 같은 세상에, 청정한 수행 공동체(승가)를 세우는 일. 이것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보살행이 아닐까요?
동양의 지혜는 늘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공동체의 어울림을 강조했습니다.
유교가 꿈꾸던 '대동(大同) 사회'는 "천하가 공공의 것이 되고, 남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돌보는 세상"입니다. 도교의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小國寡民)'은 "작은 공동체에서 문명의 이기에 얽매이지 않고 소박하게 자립하는 삶"입니다.
살림셀은 '21세기형 향약(鄕約)'이자 '첨단 소국과민'입니다. 살림셀은 국가라는 거대 시스템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을 단위에서 밥과 정을 나누던 두레와 품앗이의 정신을 복원합니다. 그러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AI와 디지털 기술(Urban Basic)을 통해 물리적 고립을 극복하고, 전 지구적 연결을 유지하면서도 생태적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오래된 미래입니다.
이슬람교에서 인간은 신의 대리자인 '칼리파(Khalifa)'로서 지구를 돌볼 의무를 집니다. 우리의 동학(천도교)은 '시천주(侍天主)', 즉 내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상을 통해 모든 생명의 존엄을 외쳤습니다.
살림셀은 생명을 하늘처럼 모시는 '개벽(開闢)의 현장'입니다. 돈이 사람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돈을 도구 삼아 생명을 살리는 곳. 각자가 서로를 하늘처럼 귀하게 여기며(Ethics), 노동이 아닌 살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곳입니다.
살림셀이 추구하는 '살림로직(Salim Logic)'은 결국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사랑, 자비, 인(仁), 공존'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가 설계하려는 살림셀은 특정 종교의 교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기도해 온 이상향을 '현실의 땅'에 구현하려는 구체적인 설계도입니다.
"전환은 비용이 아닙니다. 파국을 회피하는 가장 저렴한 보험입니다."
노아가 비웃음을 뒤로하고 묵묵히 방주를 지었듯, 이제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살림셀을 지어야 할 때입니다. 탐욕의 바다 위로, 서로를 살리는 수만 개의 작은 배를 띄우는 상상.
그것이 바로 신(神)이 이 시대의 우리에게 묻고 있는 질문에 대한 대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