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g Economy 회사는 상장하면 안 된다 - 3

창작자의 자유를 가로막는 새로운 게이트키퍼

by HJH

크라우드 펀딩은 한때 창작자와 기업가들에게 혁명의 언어였다. 은행 대출이나 벤처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아이디어와 신념만으로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약속은 매혹적이었다. 이는 긱 이코노미가 자율과 실험을 내세우며 노동의 경계를 허물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이미 그 철학적 약속에서 멀어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플랫폼의 불투명한 심사와 일방적 리젝이다. 수많은 창작자들이 수개월간 준비한 프로젝트가 플랫폼의 모호한 기준에 의해 ‘적합하지 않다’는 한 줄의 통보로 거절된다. 구체적 사유도, 재심 기회도 없다. 이는 창작자의 자유로운 실험을 가능케 하겠다던 본래의 취지를 무너뜨리고, 플랫폼을 창작의 심판자이자 게이트키퍼로 만든다.

긱 이코노미에서 우버 기사가 알고리즘 배차에 종속되는 것처럼, 크라우드 펀딩 창작자 역시 플랫폼의 불투명한 심사 시스템에 종속된다. 창작자는 ‘시장과 대중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의 승인을 얻는 것’을 첫 관문으로 삼아야 한다. 결국 대중에게 열려 있어야 할 문은 플랫폼 운영자의 손에 의해 좁혀지고, 이는 자율적 경제 활동이라는 크라우드 펀딩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배반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부작용은 크다. 심사와 리젝 권력이 집중되면, 창작자는 플랫폼이 원하는 프로젝트만 기획하게 된다.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는 배제되고, 안전하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기획만 살아남는다. 이는 창작 생태계 전체를 위축시키고, 결국 플랫폼이 단기적 이익에 맞는 콘텐츠만 양산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크라우드 펀딩이 본래 약속했던 다양성과 혁신은 사라지고 만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거절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자율적 실험장이 아니다. 창작자가 금융 권력과 제도권 심사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 선택한 길이, 다시 또 다른 권력에 포획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는 긱 이코노미 기업이 상장과 동시에 주주 자본주의에 예속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창의와 혁신에 달려 있다면, 우리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의 권력 집중을 경계해야 한다. 플랫폼은 심판자가 아니라 투명한 중개자여야 하며, 창작의 자유는 금융 자본의 논리나 불투명한 심사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크라우드 펀딩은 더 이상 대중의 힘으로 만드는 미래가 아니라, 단지 플랫폼이 승인한 현재의 반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