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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Sep 09. 2018

영화 리뷰 <나의 마지막 수트>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특별한 로드 무비


아르헨티나에 사는 88세 노인 아브라함(미구엘 앙헬 솔라 분)은 평생을 재단사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가족들은 이제 그를 까다롭고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날, 짐을 정리하던 아브라함은 기억에서 잊힌 수트를 발견한다. 그날 밤, 아브라함은 수트를 전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 몰래 무작정 아르헨티나에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할리우드에선 80년대 <코쿤> 시리즈가 유명하다. 이후엔 <어비웃 슈미트>,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라스트베가스> 등이 사랑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업>도 잊을 수 없다. 유럽으로 눈을 돌리면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베라는 남자>가 최근 극장가에 선보였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장수상회>가 있다.


아픈 역사의 흔적


<나의 마지막 수트>도 노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그러나 노인의 삶을 조명하는 다른 영화들과 결이 다르다. 주인공인 아브라함은 옛 친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폴란드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의 육체와 정신에 깊은 상처를 준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비극의 역사인 '홀로코스트'다.

  


연출을 맡은 파블로 솔라즈 감독은 아르헨티나에서 각본가로 명성이 높다. 우리에겐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원작인 <내 아내의 남자친구>로 알려졌다. <나의 마지막 수트>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을까? 다름 아닌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감독은 이야기한다.


어릴 적 할아버지 앞에서 '폴란드'란 단어를 입 밖에 꺼내지 못했던 강요된 침묵이 괴로웠던 파블로 솔라즈 감독은 이후 집착과도 같은 호기심으로 만남, 이별, 본질을 찾는 여정에 대한 일화들을 수집했다.


어느 날 나치로부터 목숨을 구해준 옛 친구를 찾아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침묵'과 '약속'을 합한 내용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떠올린다. 파블로 솔라즈 감독은 <나의 마지막 수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와 함께 성장해 온 고통과 증오, 공포가 감도는 침묵을 채울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던진 수많은 질문을 영화에 담았다"
  


<나의 마지막 수트>는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독일, 폴란드를 거치는 로드 무비의 형식을 취한다. 멈춰버린 시간이자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공간으로의 여정에 오른 아브라함은 기억, 역사, 상처, 두려움, 화해, 치유 등 다양한 의미와 마주한다.


아브라함이 유산 상속을 놓고 딸들과 갈등하는 대목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인용했다. 파블로 솔라즈 감독은 <나의 마지막 수트>가 말하려는 바가 진실의 가치를 탐구하고 인간 정체성을 성찰하는 <리어왕>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아브라함은 여행을 하며 리어왕처럼 깨달음을 얻는다.


적절한 무게와 웃음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세 명의 여자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스페인에선 호텔 여주인 곤잘레스(안젤라 몰리나 분)가 그를 돕는다. 독일에서는 인류학자 잉그리드(줄리아 비어홀드 분)가 함께한다. 폴란드에선 간호사 고시아(올가 볼라즈 분)가 도와준다.


나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당하고 분노에 휩싸여 있지만, 한편으로는 친구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았던 아브라함은 세 명의 여인을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과거부터 이어진 현재의 고통을 하나씩 극복한다. 말하자면 세 여인은 아브라함을 구원하는 존재인 셈이다.
  


<나의 마지막 수트>는 아브라함의 삶과 홀로코스트의 관계를 서서히 드러낸다. 쉽사리 설명하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 과거의 시간은 아브라함이 꾸는 꿈을 빌려 플래시백 형태로 영화 곳곳에 나타난다. 기차시퀀스에서는 과거라는 시간과 현재의 아브라함을 연결하여 생생한 고통을 전한다. 때로는 웃음도 적절히 섞어 소재가 지닌 무게감을 덜어준다.


극 중에서 아브라함은 오른쪽 다리가 병들어 절단해야할 처지에 놓여있다. 주위에선 잘라내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나 아브라함은 다리를 '오랜 친구 추레스'라 부르며 버틴다. 아브라함의 다리를 잘라버리려는 풍경엔 과거를 망각하거나 일부러 외면하려는 모습이 겹쳐진다.


영화 초반,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족 전체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게끔 모든 증손이 모여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엔 과장된 거짓을 담겨 있다. 아브라함의 다리와 사진은 진실의 가치를 우회적으로 묘사한 표현이다.


영화는 점차 사라져가는 존재인 아브라함을 통해 역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감싸 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브라함이 잊지 않고 전달하는 '마지막 수트'처럼 말이다.


20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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