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에서 벌어진 살인, 의문투성이 영화
2017년 한국 호러 장르는 과거 어느 때보다 위축되었다. 2016년 극장에서 만난 호러 영화(장르 분류는 네이버 참고)는 <혼숨>,<무서운 이야기 3: 화성에서 온 소녀>,<멜리스> 3편에 불과하다. 2015년엔 <검은손>,<십이야: 깊고 붉은 열두 개의 밤 Chapter 1>,<무서운 집>,<퇴마: 무녀굴> 정도가 선보였다.
시계를 10여 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7년엔 <검은 집>,<기담>,<두 사람이다>,<므이>,<전설의 고향>,<해부학 교실>이 나왔고, 2006년은 <스승의 은혜>,<신데렐라>,<아랑>,<아파트>,<어느날 갑자기>이 극장가에 걸렸다. 2005년의 공포는 <가발>,<레드 아이>,<분홍신>,<여고괴담 4- 목소리>,<첼로- 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이 책임졌다. 이렇듯 과거와 비교하면 현재 한국 호러 장르의 토양이 얼마나 척박해졌는지 피부에 와 닿는다. 작품 숫자를 떠나 표현 수위는 보수 정권의 영향을 받은 탓에 얌전해졌고 소재의 신선도 역시 떨어진 실정이다.
한국 호러 영화의 씨가 말라가는 상황에서 <콜리션>은 호기롭게 '익스트림 잔혹 스릴러'를 표방하고 나섰다. 메가폰은 <잡아야 산다><막걸스> 등의 작품에서 세트 팀장과 연출부를 맡았던 이윤호 감독과 <괴물>,<전우치>,<무서운 이야기>,<작은 형>,<터널>,<곡성> 등에서 아트디렉터와 세트를 맡았던 허서형 감독이 공동으로 잡았다.
영화는 태화(이승준 분)가 정수(이익준 분), 성진(이루리 분)과 함께 검은돈이 든 가방을 강탈하고 산장에 숨어들며 시작한다.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여겼던 산장에 자신들이 산장을 쓰기로 했다는 동근(김범태 분), 상현(곽형철 분), 한나(허민진 분), 선영(한유이 분)이 나타나며 모두는 의도치 않은 밤을 함께 보낸다. 그런데 술에 취해 먼저 잠이 든 성진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에 이른다.
<콜리션>은 산장에 우연히 모인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갈등, 복잡하게 얽힌 욕망의 충돌을 그린다. 이윤호 감독에 따르면 처음에 제목으로 염두했던 건 <악의 덫>이었지만, '충돌'이란 의미를 가진 콜리션(collision)이 인물들의 본능적 욕망이 각기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영화의 내용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해서 바꾸었다고 밝혔다.
산장에 모여든 사람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비틀어진 욕망으로 점철된 관계로 본다면 <콜리션>은 <헤이트풀8>을 닮았다. 그러나 제한된 공간에 놓인 사람들이 가면을 쓴 살인마들의 공격을 받는 안과 바깥의 대치 상황으로 주목하면 <콜리션>에 영향을 깊이 준 작품은 <유아 넥스트>임을 알 수 있다.
<유아 넥스트>는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가면을 쓴 괴한들의 무차별 공격을 받는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외부의 침입으로 깨지는 평화로운 일상, 이유 모를 공격과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묘사한 <유아 넥스트>는 마치 호러 영화로 거듭난 <다이 하드> 내지 <나 홀로 집에>의 성인 버전 악몽으로 다가왔다.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는 진실과 추악한 욕망의 민낯을 보여주며 영화는 "집은 안전한 공간인가?", "가족은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를 질문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가면은 살인마의 도구이자 감춰진 진실을 은유하는 장치였다.
<콜리션>엔 서로 믿지 못하게 된 사람들끼리 이렇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들 솔직히 말해봐. 여기 왜 온 거냐?" 그들은 서로의 정체와 속셈을 알고 싶어 한다. <유아 넥스트>와 마찬가지로 <콜리션>의 가면도 숨겨진 당신의 얼굴, 그리고 감춘 나의 얼굴을 묻는 장치인 셈이다.
문제는 이것을 풀어가는 방법이다. <유아 넥스트>는 이야기가 간결하고 인물이 선명하다. 관객이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의문을 품을 만한 부분이 없다. 반면에 <콜리션>은 구성이 매끄럽지 않다. 영화 도입부에 이어지는 장면들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쉽게 이해가 안 간다. 돈이 든 가방의 정체는 무엇인가? 처음에 죽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의문이 쌓여가는 통에 몰입도가 떨어진다. 남은 건 끝없이 분출하는 피와 난무하는 살덩어리가 주는 피로감뿐이다.
최근 한국 호러 영화에선 <노르웨이의 숲>,<죽이러 갑니다>, 미스러티 스릴러론 <조난자들>이 공간과 살인을 활용하며 장르적 재미를 성취한 바 있다. <콜리션>은 이들 계보를 잇지만, 아쉽게도 장르의 유희란 DNA까지 얻질 못했다. 게다가 이야기와 설정을 넘어 몇몇 장면에 기시감이 들 정도로 <유아 넥스트>의 잔상은 지나치게 짙다.
<콜리션>은 2주, 13회차라는 촬영 기간에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다. 분명 만든 이들이 열정을 쏟았기에 영화는 빛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예산이 완성도의 절대적인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다듬어지지 않은 각본은 산만함이 가득하다. '충돌'을 묘사하는 영화가 정작 이야기의 '충돌'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다. 간혹 나오는 한국 호러 영화이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2017.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