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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Dec 03. 2017

영화 리뷰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내는 떠났고, 입양한 아이는 짐 같았다... 이 아빠의 선택은?


사랑하는 아내 카밀라(엘렌 도리트 페테르센 분)의 설득으로 입양한 다니엘(크리스토페르 베치 분)과 단란한 가정을 꾸린 키에틸(크리스토퍼 요너 분). 어느 날 죽음의 그림자란 예상치 못한 불행이 찾아온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아물기도 전에 홀로 다니엘을 돌봐야 하는 처지인 키에틸은 모든 것이 버겁기만 하다. 일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느라 다니엘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그는 어떻게 해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지 막막할 따름이다. 깊은 사랑을 주지 못하던 키에틸은 다니엘의 친엄마를 찾기로 한다.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다니엘이 노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키에틸과 카밀라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행복이 깨져버린 가정에서 별다른 유대관계가 없던 아버지와 아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게다가 아이가 입양되었다면? 영화의 설정은 작가 호르헤 카마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를 갖기로 한 후, 만약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던 그는 처음으로 입양을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쓴 단편 이야기는 <오슬로, 8월 31일>,<블라인드>를 제작한 한스 요르겐스 오스네스를 통해 시나리오 작가 겸 배우 힐데 수잔 예트네스에게 전해졌고, <키퍼 틸 리버풀>,<더 오하임 컴퍼니>를 연출한 아릴드 안드레센 감독이 합류하면서 영화로 완성되었다. 각본엔 자그마치 3년이나 공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키에틸은 여러 어려움에 봉착한다. 장시간 집을 비우는 직업을 지닌 처지지만, 아이만 남겨두고 갈 순 없다. 다니엘은 잠들기 전에 엄마가 해주었던 걸 원하나 키에틸은 알 길이 없다. 보호자로서 의무를 다하고자 노력하지만, 부딪히는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키에틸은 사소한 문제로 다니엘과 충돌하는 상황이 괴롭다. 감정의 평행선을 달리던 키에틸은 자신이 다니엘에게 좋은 삶을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점차 의문이 든다. 그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극 중에서 "다니엘에게 필요한 걸 주고 싶어요"란 대사로 나타난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긴 키에틸은 다니엘의 친모를 찾기로 마음먹는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목적에 가깝다. 상담소에서 키에틸은 아이와 자신 사이엔 유대 관계가 없고, 친밀감을 느끼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감정의 거리감을 느끼는 두 사람을 통해 영화는 누구도 쉽사리 꺼내지 않았던 질문, "입양아에게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과감히 묻는다.



키에틸과 다니엘은 함께 콜롬비아로 친엄마를 찾는 여행에 오른다. 다니엘을 위한 최선책을 찾는 목적이 전부는 아니다. 친엄마에게 아이를 떠넘기고 싶은 키에틸의 마음도 엿보인다. 친엄마를 만나면 어떤 해답을 얻을 거란 막연한 기대도 감지된다. 어쩌면 불안함의 해소일지도 모른다.


여정에서 키에틸과 다니엘은 다툼과 화해를 거듭한다. 키에틸이 살던 노르웨이와 다니엘이 태어난 콜롬비아는 둘의 거리감을 풍경으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미로처럼 어지러운 콜롬비아의 모습은 복잡한 감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친엄마를 찾으면서 이런저런 사건을 겪는 두 사람은 자신의 속생각과 서로의 진심을 깨닫는다.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키에틸과 다니엘을 일방적인 면으로 조명하지 않는다. 어떨 때엔 키에틸이 비정하게 느껴지나, 한 편으론 그가 짊어진 무게가 힘겹게 보인다. 다니엘을 묘사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키에틸 역으로 분한 배우 크리스토퍼 요너는 "부모로서 도덕적이지 못하게도 보일 수 있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그를 이해하고 변호하고 싶다"고 캐릭터에 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아릴드 안드레센 감독은 "사랑하고 미워하고 상처받으며 그 안에서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를 설명한다. 영화는 여러 층위에서 조각이 났다. 키에틸과 다니엘의 관계도 그렇거니와 웃음과 눈물, 행복과 불행, 과거와 현재는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다.


파편 같았던 요소들은 마음이 통하며 하나의 관계로 엮어진다. 영화는 그런 순간을 놀라운 솜씨로 포착한다. 특히,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 간에 진심이 전달되는 두 번의 장면을 눈여겨보시길 추천한다. 


각본을 쓴 호르헤 카마초는 "입양이든 자연적이든 모든 부모는 이 영화에서 묘사된 좌절과 분노 일부와 관련될 수 있다"며 "아이를 돌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반드시 사랑이란 전제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논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각자 자신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길 바란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호르헤 카마초의 말처럼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논쟁적인 질문을 세심한 손길로 그렸다. 그리고 인간의 선한 선택을 믿는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아기와 나>와 화법,정서, 결론에서 비교해봄직한 구석도 많다. 잔인하면서 따뜻한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온가족이 보기에 더없이 훌륭한 가족 영화다.


201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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