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와인은 정말 오래된 음료입니다. 포도주를 담은 항아리의 제작연대가 BC 6천년쯤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거의 인류문명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나 오래되고 현재까지도 광범위하게 소비되는 인류의 창조물이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문득 종교를 떠올렸습니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하면서도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종교. 와인과 많은 면에서 닮아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닮아있을까요? 먼저 일차적으로 감각들을 자극한 다는데서 흡사합니다. 둘 다 시각적으로 강렬합니다. 레드와인은 색으로 마시는 음료이기도 합니다. 와인잔을 들고 하얀 리넨 천 위에서 그 붉은빛을 비춰보는 모습들, 영화 등에서 많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포도의 품종에 따라서도, 지역에 따라서도, 제조방법에 따라서도 그 붉은빛이 달라집니다. 화이트 와인도 그러합니다. 옅은 노란빛, 짙은 황금색 빛은 와인을 마시기 전부터 마음을 흔듭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여행을 하면, 어디서나 위압적인 성당 건축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일반적인 건물과는 다른 위용으로 우리를 압도합니다. 성당 앞에 서면 건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한 파사드가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서도 시각적 자극은 계속됩니다. 파사드에서 눈을 돌려 출입문에 가까이 가면 다시 한번 화려하고도 묵직해 보이는 문이 또 한 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유명한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의 천국의 문을 떠올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황금빛의 부조로 장식된 성당문은 그곳을 들어서기 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성당을 들어서면 또 어떤가요? 휘황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완전히 다른 세계로 온 것만 같은 착각을 들게 하고, 제단 뒤로 걸려있는 제단화 역시도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와인은 향으로 마시는 술이기도 합니다. 와인잔 깊숙이 코를 가져다 대고 향을 맡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00여 명 밖에 안 되는 와인마스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와인의 색과 향만으로도 그 와인의 대략적인 품종과 재배된 지역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포도로 만든 술이니깐 포도향만 나겠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발효의 마법을 거친 와인은 정말 다양한 향을 품고 있습니다. 검붉게 익은 자두의 향, 때로는 놀이터의 흙냄새,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향은 우리를 황홀경에 이르게 합니다. 종교도 그렇지요. 절에 가보신 분들은 누구나 향을 피우는 모습들을 보셨을 겁니다. 때로는 저 멀리서부터 냄새로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불교뿐만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분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이겠지만, 성당에서도 대축일등에는 향로에 향을 넣고 향을 치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성당에 들어가면 느껴지는 특유의 향은 단순히 성당 문을 열고 들어왔을 뿐인데, 저 밖의 공간과 완벽히 차단되었다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내면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처럼 와인에서도 마시는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냥 마시지 않습니다. 소믈리에 들이 와인을 시음하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와인을 시음할 때는 공기와 함께 그리고 후루룩 소리와 함께 약간의 와인을 입에 담습니다. 그러고 혀 전체로 적시고, 입천장, 잇몸이 다 와인에 닿을 수 있도록 입안에서 오글오글 거립니다. 마치 가글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다음에 내 몸 깊숙이 와인을 밀어 넣습니다. 종교들이 바로 신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고, 많은 절차들을 거친 이후에 성경 한 구절을 낭독하고 가르침을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신부님이 잘게 썰어 설명을 해줍니다. 스님들도 불경 속의 가르침들을 풀어 다시 설법을 베풉니다. 와인을 마시는 자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 와인을 내가 마시면서도 이게 어떤 향과 맛을 내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향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와인의 종류가 너무 많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평에 기대어 와인을 마시기도 합니다.
실제는 내가 보고 내가 향을 맡고 내가 맛을 보는데도 전문가의 평론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어쩔 때는 성경을 가르침보다 목사의 설교 말씀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중요한 건 결국 내가 마신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