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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ep 07. 2019

도망치던 자에게 다가온 사업

새로운 에피소드




  막 바쁘지는 않은데, 산다는 것은 참 분주하기 이를 데 없어서 글을 놓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글도 사람 기분 따라간다는 것을 자주 느끼는 요즘이다. 2019년 8월 19일. 가까스로 사업자등록증을 손에 넣으면서 '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기분이 참 미묘했다. 어찌어찌 취업을 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거나. 혹은 다시 프랑스 유학을 시도할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창업이라니. 그 누구보다 많이 놀랐던 것은 주위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늘 의도치 못했던 길로 쑥쑥 잘 빠져서 나아가는 나 자신을 보니 역시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겪어보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깨끗하게 잘 차려진 테이블을 보면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진정 내 삶인가, 싶어서.



  사업을 구성하면서 어려운 것이 너무나 많았다. 심드렁한 공무원의 자세와, 밤만 되면 '이게 성공할 아이템인가' 하는 생각에 잠 못 드는 밤이 더 많았다. 파리가 너무나 그리웠다. 왜 이렇게 나는 해외를 늦게 접하게 되어서 서른이 다되어가는 지금에서야 깨달았을까. 


  짜증이 몰려왔다. 어찌어찌 시작할 수 있게 된 지금 생각해보면 이 사업은 감사해야 하는 기회임이 틀림이 없었으나, 마음속 한가운데에선 스스로에게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왜 내가 이걸 하게 되었는지', 자영업자로 묶여 완전히 내 자유를 구속당했다는 기분이 들어 화가 났다. "왜 나는 한 명일까?" 하는 생각을 하니 화가 더 났다. 마음속에 내재되어 늘 꾸욱- 눌러왔던 화(火)가 폭발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매장 앞에 벚나무를 심었는데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옮겨 심으면서 죽어버렸다. 꼭 내 기분인 것만 같아 기분이 더 나빴다. 더 나빠질 기분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분이 나빴던 것은 이 사업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나 경제적인 것은 둘째치고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많은 일들이 그런 것인데 말이다.



  내 나이 스물아홉, 아직 취업이나 해외생활. 혹은 사회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자부한다. 일본에서 몇 개월, 파리에서 일 년 하고도 또 몇 개월. 외국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나 공감능력이 평균 이상은 하는 덕에 어느 집단에서나 잘 적응하고 잘 지내왔었다. 한국인이어서,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내 해외 생활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다. 창업을 한 이후에는 월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까운 서울에 자주 놀러 가는데, 요즘 가장 부러운 것은 직장인들이다. '돈을 번다'는 생산적인 활동이 부럽지는 않다. 나 역시도 돈을 버는 업자이니 말이다.


  나는 사람들과 호흡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조금은 그립고 부러웠다. '팀'이 되어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커피를 기다리는 막간을 이용한 이런저런 대화들이 많이 그립게 다가왔다. 지금도 서울의 커피숍을 가면 직장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는 한다. 늘 "인생이 씁쓸하고 힘들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대화에서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을 통해서 내 삶의 갈증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한다. 감사할 때가 더 많기도 하지만, 내 사업이라는 영역을 구축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고독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그리웠다.


  반영구적인 나만의 공간을 구축하여, 내 사업을 시작하였다. 좋거나 좋지 않거나 시작은 하였고, 나는 이 일을 책임지고 나의 생계 수단으로써 잘 꾸려 나아가야 할 의무가 생겨났다. 사실 사업이라는 것에 대하여 조금은 가볍게 생각해 왔음을 고백한다. 내가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내 사업이라는 분야는 직장인에게나, 전업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나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멋있는 척 포장해왔을지도 모르겠다. 이 고독한 싸움을 몇 년이나 지속해야 마음의 평안이 찾아올지는 모르겠다. 늘 걱정이 많아 조바심을 내야 하고, 위기의식을 느끼는 내 성격으로는 아마도 마음의 평안이라는 것은 친하게 지내기 어려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늘 내 것을 놓고 도망만 다녀왔어서 말이다. 일본으로, 프랑스로.


  조금 이르지만, 숨이 막히게도 이제는 도망도 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켜보려고 한다. 그리움과 뿌듯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다음에는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지. 이제는 나도 궁금하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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