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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리할리 Nov 14. 2020

일본어 못해도 일본에서 살 수 있다고요?

맞는 말이에요


집의 확장, 동네의 발견


코로나19로 도쿄로 출근하는 빈도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어든 지 10개월이 다 되어가고, 여행도 자유롭게 못 다니게 되면서 집, 그리고 우리 동네가 내가 생활하는 곳의 전부가 되었다. 평소에 늘 가던 단골 식당이 식상하다 싶을 때는, 별점이 낮아서 안 가보던 식당에도 굳이 한 번 맘 먹고 가보면서 고작 그런 낯선 경험으로 여행 온 기분을 내 보기도 하고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일상을 어떻게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지 수련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일까.


<트렌드 코리아 2021>은,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 의식주를 해결하는 공간에서 한 단계 나아가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콘서트와 쇼핑도 즐기는 멀티 레이어를 입은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에서 '레이어드홈' 이라는 키워드를 내년의 주요 트렌드 키워드로 제시하였다. 집의 범위가 물리적인 집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슬리퍼를 신고 편한 운동복 차림으로도 돌아다닐 수 있는 동네(#슬세권)로까지 확장하고 있다고 덧붙여 설명한 점이 인상깊었다.


멀리 이동해야만 갈 수 있는 멋진 카페보다 우리 집 앞의 소박한 단골 카페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훨씬 중요하다. 동네의 마트가 우리 집 냉장고 역할도 한다  그렇기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집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 역시 그 중요성을 더한다.



나의 언어, 그들의 언어


동네가 진정으로 집의 확장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동네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과 맺는 느슨하면서도 약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언제든 격의 없이 만나 커피나 맥주를 한 잔 할 수 있는 동네 친구, 오며가며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는 동네 사람들이 일상의 표정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관계는 공통의 언어를 공유할 때만 성립된다.


나 역시 동네에서 단순히 식료품을 사고 소비하는 사람으로만 생활할 때에는 기초적인 일본어만으로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집이 생활의 중심이 되고 나서부터, 단골 식당이나 카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집 앞 테니스장에서 수업 전후로 짧은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고정적으로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들과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매일 점심을 먹은 후 집 앞 단골 테이크아웃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요즘 우리 부부가 가장 애정하는 일과이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이 곳의 커피가 너무나 맛있어서 종종 도쿄까지 카페 탐방을 가던 발걸음도 자연스레 끊겨버렸다. 이곳에서 원두를 사서 집에서 직접 내려마시려 해도 도저히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맛을 흉내 낼 수 없어서, 이 곳을 우리의 홈카페로 생각하고 매일같이 다니고 있다.


9개월 정도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된 점장님과는 이제 조금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일본어에 자신도 없고 할 말도 딱히 없어서, 커피를 기다리는 몇 분간 어색한 침묵의 순간을 아래와 같은 대화로 모면하려고 서로 애쓰기도 했다.

점장님: 오늘은 날씨가 정말 맑네요.
나: 그러게 말이에요. 좋은 날씨네요.
점장님: 내일은 또 비 예보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 아 그렇군요!
(...)


언어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질 때  


이런 안타깝고 슬프고 어딘가 비장함도 느껴지는 대화를 나누기를 얼마간 반복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였는지 대화 주제가 차츰 넓어지기 시작했다. 내려주는 커피콩에 대해, 그 날 먹었던 음식에 대해, 직장 생활에 대해, 여름휴가 계획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농담을 하며 같이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일주일에 쉬는 날이 하루밖에 없는데 그 날에도 멀리 있는 다른 카페를 찾아다니면서 커피를 공부하시는 점장님의 열정에 놀라기도 했고, 커피에 대해 많이 배울 수도 있었고, 남편이랑 싸우고 씩씩거리면서 혼자 커피를 사러 갔다가 얼른 화해하라고 공짜 케이크 한 조각을 받아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날씨 얘기를 구태여 꺼내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만세!)


동네에 맛있는 가게는 정해져 있다 보니, 다른 식당을 들락날락 거리며 만나게되는 다른 손님들을 카페에서도 마주치기도 했다.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때 관계 맺기가 시작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모국어를 쓰는 고국에서는 새삼스럽게 인지할 기회가 없지만 해외에서는 언어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질수록 아주 조금씩 관계 맺기의 벽 역시 허물어지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그래서 오늘도 외국어 공부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으면 영어밖에 안 하는 남편은 여기서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데 굳이 일본어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냐고, 영어 공부를 더 하라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코로나로부터 언제 자유로워질지 모르는 요즘, 생활 반경이 과거에 비해 많이 쪼그라들어 있는 요즘, 더욱더 현지 언어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그나저나 일본어로는 입도 뻥긋 안 하는 누구를 위해 대신 음식도 주문해 주고 병원도 데려가 주고 콜센터에 전화도 걸어주는 부인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무엄하도다 -_-)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국인 인터넷 카페에 종종 이런 질문이 올라온다. ‘남편 직장 때문에 일본에 가게 되었는데 일본어 못 해도 살 수 있나요’라고. 지방일수록 힘들지만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는 큰 문제없다는 게 답변의 중론이고 사실이기도 하지만 2년 가까이 일본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현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때, 조금 더 재미있고 슬기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가지도 못 하고 집에서만 콕 박혀 생활해야 하는 요즘 같은 때일수록, 일상을 그나마 다채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에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일수록, 주변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언어의 힘은 더 강력하다.

자, 이제 글 다 썼으니 노트북을 덮고 일본어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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