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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리할리 Apr 10. 2021

국립신미술관 사토 카시와전

일본의 슈퍼스타 디자이너


국립신미술관에서 2월 3일부터 5월 10일까지 사토 카시와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사토 카시와는 일본 미디어에 얼굴이 꽤나 자주 등장하는 디자이너인데 무엇보다 유니클로 로고를 만든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슈퍼스타 디자이너의 대규모 개인전인 만큼 대대적으로 홍보가 된 모양이었다. 3월의 주말, 코로나 시국에도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티켓을 구매하고 나서도 전시장 입구에서 15분 정도 줄을 서서 대기한 후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일본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의 주 연령대가 보통 중장년층 이상인데 반해 이번 전시회는 순수 미술 작품 전시회가 아니라서 그런지 방문객들이 대체적으로 젊은 점이 눈에 띄었다.



둥글둥글 국립신미술관


가장 먼저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사토 가시와가 초등학생 시절 만들었다는 <우주>, <개미>라는 작품 두 점이었는데 우주를 과감한 색채와 대칭이 잡힌 구도로 표현한 그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일본을 대표할 디자이너가 될 떡잎을 보였던 거니, 아니면 기분 탓에 대단해 보이는 거니.


사토 카시와는 일본 광고업계에서 덴츠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회사 하쿠호도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후, 2000년에 회사를 나와 <사무라이>라는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한다. 이후 일본의 굵직한 기업들로부터 광고뿐만 아니라 브랜드 콘셉트 개발, 비주얼 개발, 커뮤니케이션 전략 등의 업무를 맡으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쌓아 나간다. 본인은 자신을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비주얼 닥터'라고 소개하기도.




70-80년대 대표적인 4대 광고매체는 TV, 라디오, 잡지, 신문이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90년대부터 구찌의 톰포드 같은 디자이너를 필두로 의상 디자인, 점포 설계, 굿즈 제작 등으로도 광고의 영역을 넓히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일본에서는 2000년대부터 바로 이 사토 카시와를 중심으로 현대 시각 브랜딩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Smap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앨범의 브랜딩 및 광고 작업이 그가 <사무라이>라는 개인 스튜디오로 독립하여 처음 맡은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당시 앨범 커버라고 하면 멤버들의 사진을 활용하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는데 그는 앨범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cd 앨범 및 타이틀, 콘서트 비주얼, PR, 패키지, 굿즈, 미디어 전략 등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브랜딩을 전개한다. 전시회 벽면에는 당시 그의 작업물들이 콜라주로 걸려 있었다.



아이돌 그룹 Smap 의 앨범 브랜딩 프로젝트. 시부야의 모든 거리가 광고판이 된다


전통 미디어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눈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광고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그는 시부야 거리를 중심으로 이목을 끄는 광고를 펼쳤고, 그의 의도대로 전통 미디어들이 현장을 방문해서 보도를 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다. (지금으로 치면 흔한 인스타 명소 중 하나인 것 같은데?)


광고를 안 보고 거리를 지나가기가 힘든 지금은 이 콘셉트가 특별하게 느껴질 것도 없지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까지만 해도 자판기, 버스, 옥외 광고판을 광고 매체로 활용한 건 참신한 시도였다는 정보를 참고하면서 이 작업물들이 미술관에 걸려 있는 맥락을 짚어 보았다.



츠타야 서점의 티포인트도 사토 카시와 작품이었군




가장 임팩트가 컸던 방은 그가 작업한 로고가 브랜드 특성에 맞는 질감으로 커다랗게 걸려 있던 로고의 방이었다. 유니클로뿐만 아니라 이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국립신미술관(고도의 내부거래?!), 츠타야 서점의 T 포인트, 세븐일레븐 PB , 라쿠텐, 닛신 컵라면, 미쓰이 물산 등 포트폴리오가 엄청났다. 이걸 한 사람이 다 만들었다니!



오브제가 된 로고


매일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익숙한 로고들이 미술관에 오브제처럼 걸려 있으니 낯설면서 재미있었다. 가장 눈이 오래 머물렀던 건 역시 유니클로 로고였다. 가타카나와 알파벳 로고가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두 개의 로고가 전혀 위화감이 없이 편안하게 어울렸고, 특히 가타카나 로고는 하나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추가 요금 없이 지참하고 있는 휴대폰으로 들을 수 있는 전시 음성 가이드에서는 사토 카시와가 직접 로고 탄생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니클로는 2006년 글로벌 확장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통용될 수 있는 새로운 로고 디자인을 그에게 의뢰하는데, 유니클로의 야나이 회장에게 사토 카시와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ZARA와 같이 글로벌 의류 브랜드이지만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이미지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로고를 원하시나요, 아니면 GAP처럼 글로벌 브랜드이면서도 동시에 미국 브랜드임을 드러내는 로고를 원하시나요


ZARA와 GAP 모두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의류 브랜드이지만 브랜드의 발원지인 스페인, 미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브랜드 안에 품을 것인지 분리시키는지에 따라 당연히 브랜드 비주얼의 방향성이 달라진다. 야나이 회장은 정확성을 추구하여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일본의 장인 정신(모노즈쿠리)이나 일본 특유의 미니멀리즘 미학,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써의 일본을 유니클로라는 브랜드 안에 담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런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카시와 사토는 뉴욕, 런던, 파리의 거리에 과연 어떤 로고가 걸리면 유니클로라는 브랜드의 본질을 임팩트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우선, 유니클로가 미국에서 시작된 패스트 패션을 유니클로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가타카나를 활용하기로 한다(일본은 외래어를 한자, 히라가나 이외의 문자 체계인 가타카나로 표기한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전의 유니클로 로고에 사용되었던 와인색에 가까운 빨간색 대신 일본 국기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빨간색을 메인 색상으로 채택한다. 이런 브랜드의 기본적인 본질을 가장 중요한 재료로, 선명한 색상과 군더더기가 없는 선과 면, 단순한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사토 카시와표 디자인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유니클로의 로고가 탄생한다.


나 역시 대표적인 일본 기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유니클로가 떠오르는데, 이런 연상 작용이 기업의 실적이나 규모와는 별개로,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로고를 통해서 증폭되었을 수도 있겠다. 2019년 한국에서 일본 불매운동이 한창 일어났을 때 유니클로가 타격을 많이 입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유니클로=일본이라는 연결고리가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한국의 신혼집 부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토스터나 전기주전자를 만드는 BALMUDA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닌텐도 등은 상대적으로 불매운동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고 하는데, 주변의 시선에 쉽게 노출되는 패션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집단행동의 목표물이 되기 쉽다는 점뿐만 아니라 유니클로 로고에 담겨 있는 일본이라는 국가 정체성도 불매운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유니클로의 야나이 회장은 일본 재계에서 매우 드물게 일본 특유의 나르시시즘적에 가까운 국수주의에 반대하고 변화에 소극적인 정권에도 거침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사람이라는 점과는 별개로 말이다.



두 개의 로고가 나란히 놓여도 위화감 없이 어울린다




사토 카시와가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국립신미술관의 로고 디자인을 의뢰받았을 때에는 시설의 영문명인 The National Art Center의 이니셜인 nact를 활용해주면 좋겠다는 요청사항이 있었다고 한다. 신국립박물관이라는 평범한 이름에서 미술관의 어떤 점을 본질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nact는 읽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포인트에도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가 대신 뽑아낸 글자는 '신(新)'이었다.


국립신미술관 전경과 로고


자체 소장품을 보유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는 미술관으로서 기존 미술관과는 차별점을 두고자 한 점, 그리고 건축 외관의 곡선과 내부 전시장의 직선이 어우러져 유연하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이미지를 '신(新)'이라는 한 글자 안에 표현했다고 한다. (설명을 들으니... 왠지 그럴 듯 해...)




사토 카시와는 약 10년 전부터 세븐일레븐의 PB 상품 브랜딩도 담당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이 그에게 브랜딩을 의뢰할 당시는, PB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한 지 3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로, PB 상품의 인지도를 조금씩 넓혀 나가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상품 패키지에 로고 사용법도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오니기리 샌드위치 도시락 샐러드 등 신선식품 제품에는 아예 세븐일레븐 로고가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세븐 프리미엄, 세븐 프리미엄 골드, 세븐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세븐 프레시 푸드, 세븐 카페 이렇게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PB 상품의 상위 카테고리를 만들고 각각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담은 매뉴얼을 만들었다.


이제 편의점들은 다른 제조사들의 상품을 밀어내고 PB 상품을 중심으로 매대를 차곡차곡 채우고 있는데 특히 편의점 업계 절대강자인 세븐일레븐의 PB 상품 퀄리티는 정평이 나 있다. 이제 유행하는 맛집의 빵이든, 다른 제조사의 간판 상품이든 무엇이든지 PB로 더 싸면서 비슷하게 혹은 더 맛있게 만들어버린다. 세븐일레븐이 유통사인지 제조사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아침용 오니기리를 사기 위해 매일 들르는 세븐일레븐에서 내가 본 이 다양한 PB 상품의 패키지들이 다 이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니.


PB 상품을 이렇게 벽면에 다 붙여 놓을 것 까지야..


일본의 컵라면 브랜드 닛신의 브랜딩 작업에도 참여를 했다. 닛신 컵라면 박물관의 정문을 위에서 바라보면 컵라면 뚜껑처럼 보이게 만든다든지, 명함을 직사각형이 아닌 컵라면 모양으로 커팅해서 바로 닛신의 간판 상품을 떠올리게 한다든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재미있었다. 닛신은 주 소비자층이 10-20대 젊은 층인 만큼 예전부터 '병맛' 광고도 많이 하고, 기업 설명자료도 진지함을 모두 걷어내고 만화책처럼 만드는 등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닛신의 컵라면 박물관 브랜딩 작업도 내가 했습니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나서 산업 디자이너의 '명성'에 대해 생각했다. 스타 디자이너에게 기업의 의뢰가 집중되는 업계 특유의 관례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으로 치면, 네이버, 이마트 PB, 교보문고, 한섬, 신라면 로고를 한 사람이 다 만들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기업 입장에서도 유명 디자이너와 일을 하는 것이 편리할 수 있다. 로고를 제작하는 작업은 기업의 얼굴을 만드는 일인 만큼, 의뢰를 받은 디자이너는 기업의 CEO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기업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을 발견해야 하는 과제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물을 경영진들 앞에서 발표하고 설득하는 일 역시 디자이너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과 카리스마는 기업 쪽에서도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는 자질일 수도 있겠다.


반대로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을 고집하는데 자신의 명성을 똑똑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어쨌든 기업은 돈을 주고 작업을 맡기는 '클라이언트'이고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바탕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의 기준에 맞는 작업물을 만들어야 한다(갑을 관계라는 말을 풀어 쓰려니 어렵군).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베스트 후보는 A 안임에도 불구하고, 클라이언트가 B를 원할 때도 있으며, A를 수용하는 척하면서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덧붙여서 처음과 전혀 다른 결과물 D를 클라이언트가 공동으로 창조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작업물이 클라이언트의 눈에 지나치게 심심해 보이거나 단순해 보이면 이런 ‘방해’ 작업에 노출되기 쉽다.


실제로 사토 카시와의 디자인은 매우 단순하다. 이번 전시회 홍보차 나온 tv 프로그램에서 한 패널이 검은색 테이프를 가지고 미쓰이 물산 로고를 바닥에 순식간에 그리면서, 이렇게 따라 만들기 쉽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색상도 가장 단순한 기본 색상을 사용하려 하며, 선에도 불필요한 장식을 넣지 않으려고 한다는 그의 디자인 철학은 어쩌면 명성이 있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단순하고 따라 하기 쉬워 보이는 디자인이라도, 클라이언트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영향력과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에.


그나저나 전시회에 소개되어 있던 기업들이 협찬 및 후원 기업 리스트에도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역시 이 쪽은 기브앤테이크가 확실하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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