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오해받기를 좋아합니다

by 허건

나는 오해받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궤도로 이탈한 행성처럼

기대를 저버리고 따돌려지고 싶습니다


언젠가 나만의 작은방에 들어가 별빛처럼 수많은 얼굴을 하고서

세숫대야처럼 맑은 일기장에 옛날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습니다


수만 광년 전에 쓰여진 별의 죽음은 구김살 없는 얼굴을 하고서 별자리의 이야기로 오해되곤 합니다

하나둘 내 것을 넘겨주고 질량을 벗겨냅니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떨어지는 운석마다 우표를 붙여줍니다


휑하니 코를 풀고 소행성이 지나간 세숫대야 언저리에 내게 박힌 크레이터의 크기를 측정해봅니다

때론 사라지지 않아 추해지는 것들 기름때 벗기듯 벗기고 긁어서 무뎌지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지, 표정 없는 얼굴은 거울에 어떻게 맺힐지


얼마간 나의 궤도를 휩쓸던 감정은 질량을 가지고 있는지, 물방울을 통과한 빛의 굴절은 얼마나 편리하게 작용하는지, 어째서 비 온 뒤에 슬픔과 기쁨 사이의 색이 분류되는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빼곡하게 적어 넣고 싶습니다


주무르기 편리해진 기억은 추억이 됩니다

입맛에 맞는 단어만 골라 적으며 나는 오해하기를 좋아합니다

반송된 편지가 방문 앞에 넘치는 걸 은근히 즐기며

나는 오해받기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