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아이'를 만나는 시간, 피카소 도예전

by lee나무

지난 주말에 도립미술관을 다녀왔다. 이건희 컬렉션 '피가소 도예전'을 보기 위해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1년에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기증한 피카소 도예 97점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협력하여 개최하는 공립미술관 순회 전시전(3.18.~6.28.)이다.


학창 시절 나에게 피카소는 입체파의 대명사였고,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과 같은 난해한 그림을 남긴, 남들이 천재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여겼던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나이를 먹고 그림에 대해 나름 흥미가 붙고 화가의 생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 후로는, 그의 여성 편력이 상상을 초월하고, 심지어 돈 문제나 예술계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행태가 째째하고 치졸하기 까지 해서, 인간적으로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많이 부족한 나는 그의 인격적 문제와 작품을 연결하며 그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고수했다. '피카소는 과잉 포장되었어', '미술사를 피카소 전후로 나눈다고? 글쎄, 그의 화풍을 이용하려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있었겠지', '자신의 예술을 위해 여성을 '뮤즈'로 이용하고 가스라이팅하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신병자', '예술적 영감을 그런 식으로 얻는다면 천재라고 할 수 없지' 등 다분히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논리를 주장하곤 했다.


이런 나의 생각에 백기를 들게 한 계기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실물 영접한 후였다. 미술관에는 에곤 쉴레, 모네, 앙리 마티스 등 여러 거장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피카소의 작품 몇 점을 바라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음..., 어쩔 수 없네. 인정' 하며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찌 되었건, 그를 인간적으로는, 아직도 나는, '아무튼, 당신은 결코 좋아할 수 없어' 라고 말한다. 동시에 그와 별개로 '인정. 어느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힘이 있어' 하며 그의 작품을 즐긴다.



아이같은 천진함이 담긴 동물 도예


피카소가 도예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도예. 마음에 드는 그림과 색감이 어우러진 그릇이나 접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유니크한 화병, 이런 물건들이 주는 일상적인 편안함, 기분좋음, 위안.


피카소가 도예를 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이 무색하게 하얗게 비어진 머릿속.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천진하고 귀엽고 고상하기도 해서 "소장하고 싶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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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도예부엉이, 염소, 비둘기를 소재를 한 도예 작품


도슨트의 안내에 따르면 피카소는 작업실에 여러 동물들을 직접 키웠다고 한다. 그 중에 비둘기와 염소는 그의 유년 시절 그림의 주요 소재였다고. 피카소는 예술가로서 궁극적 도달점을 '아이같음'이라고 했다. 라파엘로 전을 관람한 뒤 그가 남긴 "나는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도예 속 부엉이 모습을 보며 저절로 미소가 피는 까닭은 아이같은 천진함이 보여서일까. 그림의 선들은 망설임 없이 쭉쭉 그은 것 같다. 즐거워하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엉이를 불러내어 점토 위에 쓱쓱 옮겨 놓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는 건 나만 그런가. '새침한 부엉이', '무심한 부엉이', '잠 오는 부엉이', '장난치는 부엉이' 같다. 부엉이(올빼미)는 지혜를 상징하는 고대 그리스 동물로, 피카소가 매우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도예 속에 재현된 연인


피카소의 도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의 마지막 연인 '자클린 로크'이다. 자클린을 소재로 한 작품이 400편이 넘는다고 한다. 피카소의 노년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 인물임에는 두 말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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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을 소재로 한 <자클린의 옆모습>, <여인의 얼굴>, <이젤 앞의 자클린>


피카소와 자클린은 1952년 프랑스 남부 발로리스에 있는 '마두라 공방'에서 처음 만났다. 자클린은 공방의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피카소는 70대였고, 자클린은 피카소보다 45살이나 어렸다. 피카소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매일 그녀의 집 담벼락에 비둘기를 그렸고, 6개월 동안 매일 꽃을 선물했다고 한다. 피카소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여 년을 함께 했다.


도예 속에 재현된 자클린의 옆 얼굴을 보노라면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었던 듯하다. 짙은 눈썹, 크고 시원시원한 눈매, 오똑하게 솟은 코, 가늘고 긴 목. 황토에 실루엣만을 단순하게 담아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여인의 얼굴>은 검정 도자기와 하얀색 단선이 대비되어 여유와 호흡을 선사한다. <이젤 앞의 자클린>은 제목을 본 후에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해체, 단순화, 과장, 재배치,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과 같은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마치 순진무구한 아이의 세계를 만난 듯.


투우, 신화, 정물이 담긴 도예


투우의 고장 스페인이 고향인 피카소는 도예 속에 투우의 장면 장면을 섬세하게 그려 넣었다. 투우사가 붉은 천으로 소의 공격 코스를 조종하는 동작, 말을 타고 창으로 소를 찌르는 투우사, 투우사를 뿔로 들이받는 소, 소의 등에 작살을 꽂는 투우사 등 생생하게 표현했다. 피카소는 투우장을 즐겨 찾았고 "투우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관념을 표현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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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 신화, 정물이 있는 도예 오른쪽 위에서 부터 <투우-투우사가 붉은 천으로 소의 공격 코스를 조종하는 동작>, <말을 탄 목신> , <사과와 꽃다발>


그 밖에도 신화, 꽃과 화병, 과일이 있는 정물, 판화 기법을 적용한 도예, 타일 형태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피카소의 도예 작품을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던 이유, 그것은 아마도 '우리 안의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물 도예 <사과와 꽃다발> 처럼, 하얀 도화지를 마주한 아이가 연필을 손에 쥐고 망설임 없이 선을 긋는다. 지우개는 필요치 않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과와 꽃과 화병을 쓱쓱 직관적으로 그린다.


계산하지 않는 순수성. 스스로 즐기면 그것으로 충분함. 단순, 발랄, 창의, 주저주저하지 않음, 가벼워지다, 즐거워지다 같은 낱말이 떠오르는 순간 속에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나이를 먹고 숱한 의무를 살아내는 동안 '우리 안의 경쾌한 아이'를 잊고 살아온 건 아닐까. 그래서 이런 예술 작품 앞에 문득 서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아이'가 깨어나고, 유년의 웃음과 몸놀림이 기억되고, 얼마간 우리는 가벼워지는 것이 아닐까.


피카소의 도예를 감상하며 제주 도립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났던 '라울 뒤피'가 떠올랐다. 애정하는 화가 '앙리 마티스전'을 보기 위한 목적이었건만, 나는 '라울 뒤피'의 그림에서 더 많이 즐거웠고 위안을 받았다. 그의 그림을 보며 '내 안의 아이'를 만났다. 망설임 없이, 주저함 없이, 계산 없이, 놀이하듯 몰입하며 선과 색을 펼쳐내는 그 유희. 그 즐거움.


벗꽃이 한창이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 마음 한 켠이 살짝 무겁다. 하지만 기온이 많이 올라 포근하고 꽃들도 앞다투어 피기 시작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또는 홀로 미술관을 산책하며 '내 안의 아이'를 만나고 경쾌하고 즐거워지는 시간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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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바다 위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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