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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히피 Aug 08. 2023

한 번 시작된 여행은 끝나지 않아

(100 packers 프로젝트 북 원고)

나도 기약 없이 배낭 메고 뛰쳐나온 떠돌이 주제에 처음에는 만나는 사람 마다 뭘 하던 사람인지 얼마나 나온 건지 뭘 하러 다니는지 얼마나 있을건지 돈은 얼마나 쓰는지 참 질리지도 않고 궁금해했더랬다. 거의 대부분의 장기 여행자들은 각자의 계기와 사연이 있었다. 그러나 여행자 뿐 아니라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나. 인생의 모든 일상적인 순간들이 특별한 것을. 뛰쳐나오기 전에는 막연히 갈망했던 행복이란 녀석은 내 마음 속에 혹은 가장 가까이에 가지고 살아왔다는 단순한 사실을 조금씩 체감하는 과정이었다. 파랑새가 가까이에 있다는 아주 뻔한 이야기.

스물 아홉, 나름대로 하던 일을 몰입하여 열심히 했었고 지 주제를 모르니 과로를 했고 무리를 하니 몸은 비명을 질렀다. 처음엔  잠시만 쉬려던 게, 쉬어도 금새 돌아오지 않는 몸 컨디션을 보며 일단 일을 그만뒀고, 때마침 별 생각 없이 친구가 흘리는 말을 줏어담아 배낭 하나 사서 무작정 세계일주를 하겠다며 집을 나섰다. 스물 여덟 일 년 동안 벌었던 돈을 바탕으로 스물 아홉의 내가 벌어낼 수 있는 기대수입이 있고, 거기에 아무리 아껴 쓴다해도 쓰게 될 돈이 있으니 얼마정도의 지출을 더하면 내 스물 아홉 1년의 시간을 사는 지에 대한 값어치를 계산 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1년을 큰 돈 주고 구입할 수 있다면 그건 할 만한 의미 있는 쇼핑일까? Yes! 그렇게 시작된 가출이었다.


29살 일을 몇 년 한 여자애가 돈을 조금 모았다면 그 돈으로 시집가면 되겠다는 말을 여럿에게 듣고 괜히 차오르는 반발심. 아니 그럼 결혼 안 할 거면 이 돈 써도 되나? 처음에 잡은 예산은 1000만원, 돈을 다 쓸 때까지만 하기로 마음 먹은 가출. 적게 잡은 예산에 따르면 6개월도 버티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세계일주라는 거창한 이름을 흉내라도 내 보려면 아무래도 2년은 꽉 채워도 모자랄 것 같았다. 그래 돈 아끼기 나름이겠지만, 이라는 생각을 하며 막연하게 짧아도 6개월 할 수만 있다면 2년쯤 여행해보자는 생각이 계획의 전부였던 무대뽀 실천력에, 6년이 지난 지금 삶을 바꿔버린 그 선택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잘했어 과거의 나.


 세계일주. 이름 참 거창하다. 학생 때 세계지리 시간에는 맨날 졸았고 지구본 어디에 뭐가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던 나였다. 동서남북 구분하는 것도 헷갈리고 대한민국 주변국도 솔직히 잘 모르는 나였는데. 그냥 아울렛에 가서 아무 적당한 배낭을 사왔다. 생각나는 대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몇 가지 적어봤다. 적당히 날짜를 정했다. 싼 티켓을 찾다보니 30만원 가량의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편도 항공권을 샀다. 파리에 1주일 머물고 도보로 국경을 넘어 스페인 북부를 한 달 동안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간다, 까지의 계획이 우선 전부였다.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나섰다.


별로 먼 미래를 바라본 건 아니었다. 당장 오늘, 내일, 한 달 정도를 행복하게 보내려는 마음으로 적당히 대충 살아보자. 펼쳐지는 일들을 해보고 만나지는 만남에 최선을 다하고 입에 들어온 음식은 꼭꼭 씹어 맛나게 먹고 잘 때는 푹 자자. 사는데 필요한 것들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을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면서 가만히 내 속을 바라볼 수 있었다. 펼쳐지는 대로 다음 그 다음 나라로 이동했다. 매일이 선택이었다. 여기로 갈까 저기로 갈까.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여기서 잘까 저기서 잘까. 내가 뭘 좋아하고 나에겐 어떤게 중요한지 뭐가 꼭 필요한지 매순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조금씩 더 잘 알 수 밖에 없었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약해진 마음의 근육을 조금씩 단단하게 키우고 아슬아슬하지만 원하던 대로 두 다리 튼튼하게 바로 선 서른이 되었다.  


여행 중의 자세한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나도 세세하게 기억이 나는 짙은 기억들이지만 구구절절 말해 무엇하랴 싶다. 국경을 대륙을 건너다니고 흥정에 능해지고 속고 또 속고 도둑 맞고 소매치기나 퍽치기를 당하고 배낭을 털리고 친구를 사귀고 헤어지고 사랑에 빠질 뻔도 해보고 처음 해보는 일들이 계속 늘어 갔다. 각자에게 각자의 이야기가 있겠지. 각자에게 각기 다른 여행이 남는다. 그러다 여행 중에 다이빙을 시작했고 그대로 빠져 다이빙 강사가 되었다. 그냥 뻔한 이야기. 그리고 여행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왔다. 6년. 여행이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


꿈꾸던 대로 저지르고 나면 적어도 그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면 완벽해지진 못해도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은 다가갈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무언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지불하더라도 원한다면 그러면 하면 된다. 배낭을 메고 모르는 세상에 뛰어나와 펼쳐지는 대로 걸었더니 내 삶을 마음껏 사랑하게 되었다. 자신 없고 허전하고 남의 눈치를 보고 불안하고 남을 흉내내는 그런 내가 아닌, 가슴이 꽉 차도록 풍부하게 느끼고 눈을 빛내며 꿈을 꾸고 사랑을 하며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여행하고 글쓰는 프리다이버가 되었다. 지난 6년은 당장 내일 죽어도 후회하지 못할 빛나는 값진 순간들이었고, 나는 앞으로도 매일을 그렇게 채워나가며 살아가려고 한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눕는 곳이 내 집인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가장 소중한 사람과 밥을 먹을 거고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채울 거다. 나는 여전히 여행하고 종종 글을 쓰고 틈나는 대로 다이빙을 하는 프리다이버이다. 이런 내 소개가 썩 마음에 든다.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싶다. 짐을 더 줄이고 싶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짐은 그리 많지 않음을 알기에. 몸이 가벼워지는 만큼 나는 더 높이 멀리 날아오를 게다. 버리는 만큼 새로운 맛을 갖게 될 게다. 일희일비 하지 말라던 정약용 선생님의 말을 기억하고도, 그 누구보다 격렬하게 일희일비 하는 나는, 더 많이 털어버리고 더 많이 가볍고 싶다. 행복하게 사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일희일비. 앞으로의 날들도 더 많이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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