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부터 새치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미용실에 가서 새치염색을 해야 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돈의 많고 적음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나 자신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마음을 달리 먹은 건 푼돈의 힘을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누군가는 하루 커피 한잔값을 아껴 그 커피회사의 주식을 산다고 말했다. 난 미용실 갈 돈으로 애플 주식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미용실에 가지는 못하지만 새치 염색은 해야 했다. 3분 스피드 염색약을 구매해 집에서 직접 새치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5천 원 염색약 한통으로 3번 나눠 염색을 했다. 새치염색은 염색약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아이들 머리도 약간의 미용기술을 배워 집에서 내가 직접 해주었다. 펌은 물론이고 커트도 직접 해주었다. 물론 아이들의 의사를 묻고 결정한 일이다. 조금 어색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럭저럭 만족했다. 나도 아이들도.
새치염색 비용은 우리 동네 기준 사만 원이다. 아이들 커트 비용은 만원. 펌 비용은 오만 원이다. 한 달 기준으로 대략 십만 원의 비용을 지출한다. 펌 같은 경우는 3달 기준으로 한 명씩 계산했다. 1년 동안 대략 백이십만 원의 미용 지출비용이 책정되었고, 생활비에서 그 비용을 빼서 애플 주식을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주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락내리락 변동성을 띄었고, 나는 내가 정한 기준의 금액의 언저리에 올 때 조금씩 주식을 매수했다. 소수점투자로 그날 현금의 보유량만큼만 주식을 사야 했다. 목돈이 아니라 푼돈으로 조금씩 투자를 하는 거라 1주를 사는 날은 손에 꼽혔다. 조금씩 사모은 소수점주식들이 10주가 되던 날 푼돈의 힘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주식을 매수한 3년전 주가보다 현재 애플의 주가는 많이 오른 상태다. 최고 수익률이 90%까지 간 날도 있었니 말이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들어오는 배당금도 외화통장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회사의 성장성과 튼튼함에 오랜 투자를 결심했었다. 목돈이 필요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군가는 나의 푼돈을 우습게 보기도 한다.
"그 돈 그거 모아서 어느 세월에..."
하지만 난 그들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 돈 그리 모아서 작은 소형아파트도 구매하고 남편 빚도 갚아 주었으니 말이다. 요즘도 여전히 그들은 나의 씀씀이에 불만 가득한 말들을 한다. 너무 궁색하게 살지 말라고. 그거 그리 아껴서 뭐 할 거냐고. 인생 짧다고. 그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의도 할 수 없다. 넉넉하게 살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살고 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가끔 그들의 날카로운 말에 마음이 베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통장잔고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 보지만 헛헛한 마음이 들 때도 가끔 있다.
'뭣하러...'
어느 날은 일탈을 꿈꿔 본 적도 있다. 지하철역 몇 정거장만 지나면 유명 백화점이 있다. 큰 맘먹고 백화점 명품관으로 향했다. 친구가 샀다던 그 미니백을 사고 싶어서였다. 나도 까짓것 그거 하나 살 돈 충분히 있다고. 하지만 사고 싶었던 브랜드 매장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지하철 안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도 나왔다. 명품 브랜드 매장은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했고 예약을 했더라도 그날의 매장 컨디션에 따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복잡한 구매 환경이 어쩌면 잘 된 일이지도 모른다. 그날 만약 아무런 제약이 없이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나는 분명 그 미니백을 샀을 것이고. 그 미니백을 보며 기쁜 마음보다는 후회와 허영 앞에 괴로워하고 있었을테니.
애플 주식을 팔았다. 최고의 수익률일때 매도 하지 못해 아쉽지만 이만한 수익도 감사하다. 해외주식은 매도하면 주식에 대한 수익률은 물론 달러에 대한 환차익 수익도 존재한다. 목돈이 필요해 수익률이 좋은 주식들을 정리하고 있다. 푼돈으로 사모았던 애플 주식이 작은 목돈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나를 보며 궁색한 씀씀이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이 가끔 일상을 뒤 흔들 만큼 강한 무게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나의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한 번의 일탈을 경험해 보고 알았다.
그들의 말대로 살필요가 무엇 있나. 나는 나대로 나답게 살아가면 되는 것을. 그들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