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승민 Aug 22. 2022

시도민구단은 왜 '동네북'이 될까?

국내 프로축구에서 시도민구단이 또 정치권의 '동네 북'이 됐다. 구단주인 신상진 성남 시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개선 의지도 없고 꼴찌만 하고 혈세를 먹는 하마를 유지하는 것은 시민에 대한 배임”이라며 “성남FC가 비리의 대명사가 됐다. 이런 구단 구단주를 하고 싶지 않다. 기업에 매각하거나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다. 축구가 아니라 정치 때문에 생사기로에 선 형국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 대기업 후원금 유용 의혹 때문이다. 


성남FC는 2014년에도 정치인들로 인해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사건은 성남FC가 성적 부진으로 K리그 클래식에서 2부 리그로 강등될 위기에 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성남FC의 구단주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신의 SNS에 글을 남겼다. ‘성남이 고의적으로 세 차례 오심 피해를 봤다’, ‘빽 없고 힘없는 성남 시민 구단이 당한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축구계가 심판을 매수해 오심을 유도했다고 들릴 수도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노발대발했다. 연맹은 “이 구단주의 발언이 K리그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때 갑자기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가 논란에 가세했다. 홍 지사는 도민 구단 경남FC의 구단주다. 그는 자신의 SNS에 ‘(프로축구연맹이) 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남FC 구단주의 하소연을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연맹의 처사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직접적으로 ‘승부조작’을 언급하며 프로연맹을 더 수위 높게 비난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시장을 옹호했다. 정치 무대에서 다른 정당 소속으로 대립각을 세우던 두 사람이 지자체장 신분으로 한목소리를 내자 ‘아무도 못 해낸 정치 화합을 축구가 이뤄냈다’는 자조 섞인말이 나왔다.


시·도민 구단이 뭐기에 그럴까. 사실 시·도민 구단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규정은 없다. 연맹 관계자는 “명확한 근거에 의해 설립된 게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시·도민이 소유·운영에 참여하는 구단을 시·도민 구단이라고 통칭한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원론적으로는 ‘시·도민’이 주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소유나 운영에 시·도민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 국내 시·도민 구단은 대부분 각 지방 체육회가 대주주다. 창단 초기 지자체가 영리·비영리 법인인 프로축구단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지방 체육회를 통해 구단에 우회해 출자해서다. 일반적으로 지방 체육회의 회장은 해당 지자체장이 겸임하기 때문에 지자체장이 구단주가 된다. 사실상 지자체가 구단을 소유·운영하는 셈이다. 


1997년 첫 시민 구단인 대전 시티즌의 창단 당시 시·도민 구단 모델은 축구계의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기업 오너의 의지에 따라 구단 운명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벗어나 시민과 지역 기업의 참여로 연고의식을 강화할 대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팬 확보와 수익 창출도 유리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가 컸다. 이런 분위기와 더불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전용 구장까지 지어지면서 각 지자체는 속속 시·도민 구단을 창단했다. 


그러나 뚜렷한 설계 없이 만들어진 시·도민 구단은 애초 취지와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예상만큼 팬을 확보하지 못했고, 당연히 수익도 기대보다 적었다. 수익원을 만들지 못하자 그만큼 지자체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그럴수록 구단은 지자체의 눈치를 보게 되고, 방만 경영과 낙하산 인사 의혹은 늘어만 갔다. 불투명한 경영과 실적 부진에 팬이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문제라던 기업 구단이 오히려 조금씩 제 살 길을 찾아가는 동안 시·도민 구단은 어느새 깊은 수렁에 더 깊이 빠졌다. 


시·도민 구단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뭘까. 힌트를 얻기위해 시·도민 구단과 공기업을 비교해보자. 시·도민 구단은 ‘민에서 관’으로 공기업은 ‘관에서 민’으로 향했다는 점에서 방향성이 다르지만, 둘은 관청과 민간의 사이라는 비슷한 공간에 위치한 조직이다. 공기업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소유와 경영의 주체가 되어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는 기업’이다. 시·도민 구단의 현실과 거의 같다. 관련 규정이 없어서 그렇지, 시·도민 구단도 엄밀한 의미에선 지방 공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겪고 있는 문제점도 유사하다. 시·도민 구단과 마찬가지로 공기업은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 재정문제가 불거지면서 공기업 재정위기의 원인에 대한 여러 분석이 제기됐다.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 살펴볼 점은 공기업 목적 자체의 모순이다. 공기업은 수익성과 공공성이라는 양면적인 목표가 있다. 쉽게 말해 ‘공공재를 팔아서 돈을 벌어라’와‘돈 못 벌어도 공공재를 만들어라’의 차이다. 학계에서는 ‘공기업이라 할지라도 다른 민간 기업과 똑같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다’는 주장과 ‘공기업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공공재 생산에 있다’는 입장이 대립하다가, 지금은 ‘많이 벌어서 남길 필요는 없지만 쓰는 돈 만큼은 스스로 충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가 됐다. 


양면적 목표에서는 딜레마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공기업이 쓰는 만큼만 벌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다. 실제로 공기업 주요 수익원의 가격은 대체로 원가에 못 미친다. 지하철이나 전기·가스·수도 요금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원가보상률은 80% 내외다. 그만큼 밑지고 판다는 얘기다.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공공재의 요금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다. 서민 물가, 정확히는 그걸 염려하는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공성을 위해 자신의 수익성을 훼손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살림살이가 좋을 때야 정부가 이를 보전해 줬지만, 예산 운영이 팍팍한 지금은 오히려 벌어 오라고 난리니 진퇴양난이다. 


시·도민 구단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도민 구단은 운영이 어려워진 기업구단에 지자체가 투자하면서 만들어졌다. 수익을 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봤으면서도 구단을 인수한 이유는 뭘까? 정치적 치적을 장식하기 위한 게 아니라면, 축구단 운영이 그만큼 주민 복지와 지자체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공성에 비중을 더 뒀다는 얘기다. 


그러나 구단주인 지자체장이 바뀌고 지방 재정이 여의치 않아지자 채 여물지 않은 축구단의 수익성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축구계 한 관계자는 “시·도민 구단의 어려움은 지역민을 위한 축구팀을 만들 건지, 이기는 팀을 만들 건지, 적자 안 내는 팀을 만들 건지가 불분명해 확고한 전략을 추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낙하산 인사는 공기업과 시·도민 구단의 이런 문제에 기름을 부었다. 공기업과 시·도민 구단 경영진은 ‘돈 줄’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와 지자체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변화를 맡는다. 대개 바뀐 수장의 측근이거나 선거 과정에서의 논공행상 일환으로 경영진이 임명된다. 간혹 전문 인사가 선임돼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이들의 실적과 외부평가가 아무리 좋아도 제대로 임기를 마친 사례는 없다. 인사철마다 구단 사장뿐 아니라 실무직원까지 전부 갈아 엎다 보니 장기적인 정책 수립은 꿈도 못 꾼다. “자금을 집행하려고 할 때마다 지자체에 보고를 한다. 자연스럽게 운영에 역동성이 사라지고 공무원 조직처럼 경직된다. 선수 영입에서도 저비용 고효율만 따지다 보니 감독과 보이지 않는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시도민구단 관계자) 


많은 전문가는 이 같은 공기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로 새로운 평가체계와 경영진의 독립성·전문성을 꼽는다. 각 기관의 여건에 따라 경영 상태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공성을 위해 용인할 수 있는 비용의 수준을 명확히 하고, 대신 엉뚱한 곳에서는 낭비가 없는지 따져야 한다. 


시·도민 구단 역시 기업 구단과 똑같이 평가할 수는 없다. 대신 지자체가 시·도민 구단에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그것에 따라 예산의 가치에 맞는 활약을 하고 있는지, 또는 주민의 복지 증진 등 공공재 기능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평가해야 구단들도 그것에 맞춰 장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장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경영진이 필요하다. 그들이 정치권의 선거에 좌지우지 되지 않을 만큼의 독립성도 뒷받침 돼야 한다. 


단,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독립성 요구는 명분을 잃는다. 공기업과 시·도민 구단이 낙하산 인사나 양면적인 목적을 핑계로 안이함에 젖어 방만해진 것도 사실이다. 프로축구 관계자는 “(시·도민 구단은) 스스로 벌지 않은 돈이기에 예산을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지자체들의 살림이 팍팍해지고 기업들도 허리띠를 졸라 매는 상황에서 시·도민 구단의 살림에 대한 점검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도민 구단도 지자체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익 사업을 개발해야 한다. 또 축구뿐 아니라 다른 체육 활동을 포함해 주민들의 복지와 건강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지역민 밀착 사업도 추진해 팬층을 두텁게하는 절실하다. 지역과 밀착 관계를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기업과 동호회를 중심으로 가족 단위 팬이 생겨나 축구장을 찾고, 투자도 이뤄질 수 있다. 이렇게 팬이 두터워지면 지나가던 구단주가 “팀을 없애겠다”는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