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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1

삼 개월을 꽉 채웠다.

아무것도 읽지 않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읽는 것이 두려웠다. 간신히 뭍으로 나온 터였다. 다시 바다로 들어갈 순 없었다.

책장을 넘기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책들을 치웠다.

배고픈 사자로 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과거의 나에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그렇지.


#2

뭍은 꽤 괜찮은 곳이었다. 단순하고, 건강하고, 밝은 곳이었다.

물론 나의 바다도 좋은 곳이다. 아늑하고, 출렁이고, 나와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육지사람이 되기로 했다. 긴 시간에 걸쳐, 비늘 대신 피부를 얻었다.

한 번도 마음 놓고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나는, 배불리 먹었으며,

아름다운 글을 쏟아내는 대신, 운동을 하며 땀을 흘렸다.

책 속에 파묻혀 눈물을 삼키고 뱉는 것에 안녕을 고했다.

먹고 마시고, 운동하고, 사람을 만났다.


#3

우물이 다 말라버린 줄 알았다.

매번 찰랑였던 우물물을 글에다 길어 놓곤 하였는데, 이젠 두레박 따윈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물이 차오를 것 같다 싶으면, 호로록 마셔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이 찰랑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의족을 차고 첫걸음을 떼는 다리 잃은 노인처럼, 그렇게 더듬거리며 물이 차올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걸어보는 돌쟁이의 첫걸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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