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연구에 대한 단상

'질적연구, 계획에서 글쓰기까지 (전가일 저)'

by 한나

몇 주간 양적연구 공부에 매진했다. R을 설치하고, 통계학을 공부했고, 파이썬도 훑어봤다. 마치 당장 양적연구로 논문을 쓸 사람처럼.

눈을 뜨면 유진은의 'R을 이용한 통계분석'이라는 책 때문에 끙끙 앓았다. 또 책은 얼마나 두꺼운지.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뭔가 불편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그 누구도 나는 양적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이 없었는데, 난 스스로 누군가에게 압박을 받은 것처럼 내 사고방식을 양적연구에 끼워 넣고 있었다.


사실 양적연구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말로 증명하고 느낌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수학으로 풀어낸다. 마치 인공지능처럼.(그것도 아주 오~~~~ 래전에!!!) 그런 증명된 모든 함수들을(철저히 계산된!!) 파이선처럼 쉽게 쓸 수 있도록 고안해 낸 프로그램이 R이다.


R은 꽤나 흥미롭다. 그저 수치만 입력하면 얼마나 타당한지, 리스크는 얼마인지, 상관은 어떠한지 그걸 함수로 뚝딱 해낸다.


그렇게 나는 몇 주 동안 나는 숫자의 언어를 배웠다. 세계를 셈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가.

흩어진 현상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 선의 기울기를 계산하고, 우연과 필연을 가려내는 일. 양적연구는 분명 단단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측정되는 것만으로는 끝내 다 닿을 수 없는 결이 있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이 닳아가는 속도, 어떤 말 한마디가 오래 남기는 그림자,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하루 안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감각 같은 것들.

그런 것은 표로 정리되기 전에 먼저 이야기로 다가온다.


질적연구는 바로 그 이야기의 숨결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그것은 사람을 데이터의 한 줄로 세우기보다, 한 사람의 시간과 맥락 속에 다시 데려다 놓는다.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무엇이 그를 침묵하게 했는지, 같은 장면을 겪고도 누군가는 견디고 누군가는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적연구는 정답을 빠르게 압축하지 않는다. 대신 서두르지 않고 곁에 머문다. 이미 이름 붙여진 것들보다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감정과 경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래서 질적연구의 힘은 증명이라기보다 발견에 있고, 결론이라기보다 이해에 있다.


나는 이제 질적연구를 더 느리고 불확실한 길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다루려는 가장 정직한 방식 중 하나라고 느낀다. 삶은 늘 깔끔한 변수로만 흘러가지 않고, 사람은 언제나 설명보다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는 크기를 보여주고, 어떤 연구는 방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질적연구는 자주, 우리가 너무 오래 당연하게 여겨서 보지 못했던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든다.


숫자가 말해주지 못하는 장면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 아마 내가 다시 이쪽을 돌아보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람의 삶은 계산될 수 있어도, 다 계산되고 나면 오히려 사라지는 무엇이 있으니까.



# 연구자가 자신의 존재를 기울여 관심을 갖고 문제를 삼을 때 비로소 그 현상, 그 사람들은 상호 존재로서 우리에게 드디어 현현하게 됩니다. 연구 전반에 걸쳐 존재의 기울어짐이라는 관심과 지향성이 끈질지게 나타나야 좋은 연구가 될 수 있습니다.


# 질적연구의 텍스트는 설득이나 강요가 아니라, 논문을 통해 독자를 대화의 장으로 초청하는 것이며, 설명이나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나 학위논문의 연구과정은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선택해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무척이나 많은 어려움을 마주해야하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겪는 모든 지난한 어려움들을 견디고 연구를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은 무엇보다 강렬한 연구 동기에서 나옵니다.


# 자료 자체가 고정불변의 것으로 있다기보다는 오직 '자료화'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질적연구에는 자료 수집보다 자료 구성이란 개념이 더욱 적절해 보입니다.


# 우리가 바꿀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뿐입니다.(그조차도 매우 힘든것이지만요). 학문하고 연구하는 일은 기실 타인을 위한것이 아니라 언제나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공부의 끝은 결국 위기지학인 셈이죠.


# 따라서 연구 현장에서 연구자를 반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흔한일로 생각해야하고, 혹 현장에서 연구를 허락했다면 그것을 오히려 감사히 여기며 현장과 참여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다가서야 합니다.


# 결국 질적연구의 질은 자료의 질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 지금 참여자들의 삶에 지정으로 관심이 있나요? 경청에 기초한 질문을 하고 있나요?


# 질적연구의 질은 결국 자료의 질이고, 자료는 결국 관계의 질이고, 관계는 결국 그 현장과 사람들에 들인 시간과 연관되기 마련입니다. 시간을 들이지 않는 질적연구는 딱 그만큼 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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