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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Sep 22. 2023

A의 이야기

  A는 차에서 내렸다. 오랜시간 직선도로를 달려온 탓에 도착한 곳이 어딘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그곳엔 안개가 자욱했다. 가시거리가 채 2m가 되지 않아보였다. 손을 내밀어 닿는곳을 찾았다. 그는 오랜시간 운전한 다리를 조금 높게 올려놓고 싶었다.

  십수걸음을 걸었을까 갑자기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그의 어머니의 뱃속에서 들었던 소리처럼 익숙한 소리였다. 귀를 기울여 그쪽으로 향하고자 했으나, 자신의 차와 멀어질 것이 우려되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로 했다. 하지만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뗄수록 소리는 희미해져갔다.

   

  그때 낡은 그의 운동화 밑창에 표면의 굴곡이 느껴졌다. 미끌미끌하고 울퉁불퉁한것으로 보아 목적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습지대에 내린것같다.

  A는 소리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습지대는 무척 위험한 곳이라서 늪에 발을 담그기라도 하면 금방 수렁처럼 잡아먹힐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대신 인상을 써 앞에놓인 것을 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A는 미간에 힘을주고 실눈을 떴다. 언듯언듯 보이는 큰 바위와 버드나무과로 보이는 잎사귀들이 눈에 포착됬다. 차에대한 거리감각을 잃지 않기위해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그루터기로 짐작되는 기둥쪽으로 발을 옮겼다. 한발한발 옮길때마다 끈적하게 따라붙는 진흙이 기분이 나빴지만, 당장이라도 다리를 높은곳으로 올리지 않으면 목적지까지 다리가 제 역할을 할수 없을것 같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겨우 서너걸음 떼었을 뿐인데 A의 빨간색 쥐글리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좀더 속도를 올리기로 했다. 그루터기에 거의 다왔다. 더 속도를 내었다.


  잡았다. 그리고 닿았다.


  그건 그루터기가 아니었다. 발바닥의 느낌과 비슷했다. 축축하고 차가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꿈틀했다.


  A는 본능적으로 뒤를돌았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그의 차로 달려갔다. 그것은 마치 A를 쫒아오는것 같았다. 쥐글리에 가까워지자 잘 움직여지지 않는 오른발을 지지대삼아 왼발로 점프를 뛰었다. 오른쪽 넷째 발가락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허둥지둥 트렁크를 열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수없는 엽총이 손에 잡혔다. 축축한 그것이 흐느적거리며 오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A는 방아쇠를 당겼다. 사격을 언제 배웠는지도 모른다. 짧은시간 자신의 사격솜씨에 놀란다. 그 누구도 총에대해서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총의 주인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탄피가 떨어지는 소리에 그는 놀랐다. 무엇을 향해 총을 겨누었는지 잊은채였다. 탄약소리가 아니라 탄피가 떨어지는 소리에 정신이 들은것에 놀랐다. 그는 숨을 잘 쉴수 없었다. 난 언제부터 총을 잡았었나, 어떤것을 향해 총을 쏘았나, 기름칠이 잘 되지않은 시꺼먼 엽총은 언제부터 쥐글리의 트렁크에 숨겨져있었고 나는 그걸 어떻게 찾을수 있었나. A는 어지러웠다.



  그는 원래 초원에 살던 사람이다. 초원은 우거진 나무가 없어서 앞을 내다보기 참 좋은 곳이었다. A는 그곳이 좋았다. 봄이면 알수없는 꽃가루가 날렸고, 여름이면 무릎에 닿을만한 작은 짐승들이 짝을 찾아 헤맸다. 계절마다 다른 냄새를 풍기는 곳이었다.


  냄새로 시간이 흐르는것을 감지했고 계절을 느꼈다. 가을은 A가 썩 좋아하지 않던 계절이다. 차가운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음한켠이 쓸쓸했기 때문이다. 싸악싸악 귀뚜라미소리를 들으며 A와 그의 친구들은 월동 준비를 했다. 사냥감을 해체해 내장과 외피는 따로 말려 보관했고, 모아두었던 과실들은 냉해를 입지않도록 보금자리 안쪽에 켜켜히 그러나 성글게 쌓아놓았다. 긴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기다려졌다.


  일은 힘들고 고됬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날 A와 그의 친구들은 작은 축제를 열기로 약속했기에 일이 싫지는 않았다. 첫눈이 내리는 날이되면 A는 함께해준 그들에게 근사한 선물을 할 작정이었다. 제작년 몰래 만들어놓은 과실주를  A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 그루터기 옆에서 꺼낼 생각이었다. 


  어느날이었다. 기다리던  눈이왔다. 어째서인지 그날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첫눈이(첫눈이려나? 비가섞였을수도 있었겠다)내리고 있었는데도 A는 혼자였다. 눈인지 비인지를 가늠하며 좀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마을공터에 있는 커다란 나무의자에 앉아 A는 한참을 그렇게 기다렸다. 과실주를 들고있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A를 떠난것이다. 아니야. A가 그들을 떠나온것인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풍경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한 원망과 그리움이 몰려왔다. 맞아. 그들은 내 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총구소리에 잠시 고꾸라져 있떤 A는 눈을 떴다. 사방이 고요했다. 고요함의 소리가 너무 큰 탓에 고막이 터질것 같았다. 안개는 여전했으나 보이지 않았던것들이 보였다. 탄피와 함께 추락한 것들, 그가 저격해버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순수한것들이었다. 사실 그것들이 본질부터는 순수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중요한것은 A의 총에 맞아 모두 스러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관통한 총알은 그것들의 심장을 빼앗은것 같았다. 가슴께(가슴인지 아닌지도 모르는)에 커다란 구멍들이 뚫려있었다. A는 질식할것같았다. 의식적으로 호흡했다.

  그때였다. 호흡하는 A의 옅은 탄식소리를 듣고 그 구멍들이 모로누워 일제히 A를 바라봤다.

  그것들은 오로지 구멍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A의 총구로 심장을 잃은 그것들. 그것들이 차례로 모로 눕기 시작했다. 

  

  A는 자신이 처한상황에 대해 되짚어 보았다. 그가 할 수 있는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A를 향해 멈춰있는 구멍의 시선들. 어쩌면 A도 구멍이 뚫린 순수한 그것들과 본래부터 함께였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묻고싶었다. 그들에게 묻고싶었다. 내가 왜 빨간차를 탄거야? 나는 어디로 가고있던거야? 엽총이라는 것은 언제부터 쓸수 있었던거야? A는 속삭였다. 그러나 그 구멍들은 말이없었다. 구멍이기에 말이없었다. A도 함께 침묵했다. 당장이라도 도망을 가고싶었다.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럴수 없었던것은 그가 그 구멍에 있는 슬픔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이질적이지만 익숙한 슬픔이었다. A는 그 슬픔을 읽고 몸을 움직였다. 그래야만 할것같았다. 그들과 본래부터 함께라는 생각이들었다. 감각이없는 오른발을 먼저 눕히고 몸의 방향을 틀어 구멍들과 함께 모로 누웠다.


  초원을 생각했다. 그리운 그들을 생각했다. 코끝이 시큰했다. 초원의 바람냄새가 느껴졌다.

  그래, 그들은 구멍인가? 구멍은 그들인가? 초원의 간질이던 느낌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구멍을 메워보려 오른쪽손으로 허둥거러도 소용이 없었다. 난 이제 어디로 갈수 있을까? 이것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을수 있을까?


  이미 늦었어. 구멍들이 그렇게 알려줬다.


  그리고

 그가 쏜 총알들이 멀리까지 갔다가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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