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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흥행작은 산업을 구원할 수 있는가

<좀비딸>의 성공 이면에 가려진 한국 영화의 구조적 위기에 대하여.

by 조하나



2025년 8월의 극장가는 하나의 거대한 패러독스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예상치 못한 국내 코미디 영화 <좀비딸>이 박스오피스를 평정하며 관객의 열띤 호응을 얻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영화 산업 전반이 관객 수와 매출액 급감이라는 혹독한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극명한 대비는 현재 한국 영화계가 처한 복합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지금 한국 영화계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위기, 그리고 미래의 기회가 교차하는 역동적인 현장입니다. 이 중대한 변곡점에 서서, 표면적인 흥행 지표 너머에서 산업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구조적 위기의 실체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전략적 움직임들이 보입니다.





<좀비딸> 현상

2025년 여름 극장가의 가장 큰 이변은 단연 좀비딸의 압도적인 흥행입니다. 개봉 이후 연일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했고, 실시간 예매율에서도 경쟁작들을 큰 격차로 따돌리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은 단순히 한 편의 흥행작 탄생을 넘어, 현재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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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요인은 복합적입니다. 먼저, 주연 배우 조정석의 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특유의 생활 밀착형 코미디 연기와 애틋한 부성애를 오가는 감정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극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둘째, '좀비'라는 장르적 소재를 공포가 아닌 '가족 코미디 드라마'의 틀 안으로 가져온 혁신적인 결합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볼 수 있는 좀비 영화'라는 입소문은 20대부터 40대까지 고른 관객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정부의 영화 할인 쿠폰 정책도 한 몫 하며 가족들과 함께 극장을 찾는 이들이 늘었습니다.






금주의 신작들: 세계관의 확장과 장르의 심화


이번 주 극장가는 할리우드 대작부터 한국 독립영화, 일본 고전 명작, 정치 다큐멘터리까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장르의 영화들이 관객을 맞이합니다.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존 윅 유니버스의 첫 번째 스핀오프인 <발레리나>입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가 새로운 여성 주인공 '이브'를 연기하며,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으로 등장해 세계관을 잇습니다. 이는 현재 할리우드를 지배하는 '프랜차이즈 세계관 확장' 전략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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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올 상반기 흥행작 야당의 확장판인 <야당: 익스텐디드 컷>은 기존 흥행작을 감독의 시선으로 재편집하여 N차 관람을 유도하는 새로운 전략을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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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 수상작인 <수연의 선율>과 일본 영화의 거장 소마이 신지 감독의 1994년작 <여름정원>은 특별한 관람 경험을 제공하는 '큐레이션된 영화'로서 극장의 역할을 재정의합니다.


<자백>의 최승호 감독이 '4대강 사업'을 추적하는 신작 다큐멘터리 <추적> 역시 사회적 논쟁을 예고하는 문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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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너머의 전장: K-콘텐츠의 위기와 새로운 활로


<좀비딸>의 흥행 이면에는 한국 영화 산업이 직면한 심각한 구조적 위기가 존재합니다.


2025년 1분기 한국 영화산업의 매출액과 관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33% 급감했습니다. 이 위기는 치솟은 티켓 가격과 OTT의 보편화에서 시작되어, 관객의 신중한 소비 패턴, 그리고 소수 영화에 대한 스크린 독과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습니다. 산업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예산 영화'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고, 창의적인 인력들은 OTT 플랫폼으로 이동하며 극장 영화의 다양성은 더욱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침체된 내수 시장의 위기감은 역설적으로 한국 영화계가 해외로 눈을 돌리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동남아시아 시장은 K-콘텐츠의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CJ ENM이 기획, 제작한 베트남 영화 <마이(Mai)>가 현지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경신한 것처럼, 한국 영화계는 단순한 콘텐츠 수출을 넘어 기획-제작-투자-배급으로 이어지는 고도로 발전된 '산업 시스템' 자체를 이식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티빙-웨이브 합병'이라는 거대 공룡의 탄생이 임박했습니다. 이는 넷플릭스에 대항할 유일한 토종 플레이어의 등장을 의미하며, 제작사에게는 새로운 협상 파트너를, 소비자에게는 더욱 강력해진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 거대 플랫폼의 행보가 향후 수년간 한국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겠죠.




새로운 질서의 서막

2025년 8월의 한국 영화 산업은 단순한 '침체'나 '위기'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보다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구조적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습니다.


<좀비딸>의 예외적인 성공은 오히려 관객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극장 경험'에 목말라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미래 한국 영화의 향방은 티빙-웨이브 합병으로 재편될 국내 시장, 동남아를 필두로 한 글로벌 시장 확장, 그리고 압도적인 '이벤트 영화'를 위한 프리미엄 공간으로 재정의될 극장 경험이라는 세 가지 축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한여름의 스크린 위에 펼쳐진 위기와 기회의 교차로에서, 한국 영화계의 담대한 도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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