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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적어도 오늘은 아니야

by 조하나

압력은 정직하게 폐를 조여왔고, 질소는 달콤하고도 비릿한 마취제처럼 뇌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그녀의 눈앞에는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산, 피나클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다른 다이버들은 모두 저 위, 햇살이 부서지는 얕은 수심이나 거대한 피나클 너머에 머물러 있었다. 깊은 수심에서 수면을 향해 팽창하며 솟아오르는, 다이버들이 내뱉은 은빛 공기 방울의 행렬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삶에 대해 성실했다. 꼬박꼬박 숨을 쉬고, 꼬박꼬박 감탄하며. 오직 그녀만이 이 질서 정연한 생존의 리듬에서 엇박자를 타고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다이버들로 붐비지 않는 피나클 반대쪽, 심연의 경계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책임져야 할 머나먼 스웨덴에서 온 다이버 커플이 있었다.


‘내가 원했던 게 고작 이거였나.’


그녀는 호흡기를 문 채 쓴웃음을 삼켰다. 그녀가 서울을 떠나 이 섬에 닿았던 건, 계획된 내일이 없는 삶, 찰나의 유희가 전부인 삶, 우연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이 바닷속 같은 삶을 동경했기 때문이었다. 1년 뒤의 승진, 10년 뒤의 아파트 평수 따위를 계산하며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이 역겹다고 핑계 댔지만, 사실 그녀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런 과정에서 하루하루 끊임없이 조소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게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지금, 그녀는 그토록 바라던 ‘예측 불가능한 우연’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클로드의 죽음은 그녀가 상상했던 낭만적인 불확실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도 통제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폭력적인 우연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막연히 동경만 했던 삶이라는 것이 이토록 잔인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그릇조차 되지 못하는 자신의 변덕과 모순에 화가 났다. 언제나 그녀를 깊은 어둠으로 몰아가는 건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멀찌감치 유영하는 다이버 커플의 핀 킥에 머물렀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녀가 당장이라도 호흡기를 뱉고 수면으로 솟구쳐 버린다면, 그들의 행복은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뒤덮일 것이다. 지금, 그녀처럼. ‘당신들이 무슨 죄라고.’ 죽고 싶은 충동과 남겨질 타인에 대한 책임감. 이 기이한 부조리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클로드는 무시하고 떠난 그 모든 것들. 남겨진 사람들이 겪을 혼란과 고통, 치워야 할 시신의 무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의 지독한 이기심이, 그 무책임한 결단력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 밖으로 나오면, 그 하루는 그걸로 된 거야.”


환청처럼, 클로드의 목소리가 물속을 울렸다. 한국에서 그녀를 찾아왔던 다이빙 교육생 시우가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가 툭 던졌던 말. 사는 데 거창한 계획 따위는 필요 없다고, 내일 세상을 구할 필요도 없다고, 그저 오늘 하루 숨 쉬고 살아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던 그 말. 그녀는 그 말을 믿었다. 그 말을 붙들고 여기까지 왔다. 시우도 한국 땅 어디에선가 그 말을 붙들고 매일 아침 기를 쓰고 눈을 뜨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한 당사자는 ‘내일 눈 뜨는 일’을 포기해 버렸다. 거짓말쟁이. 위선자. 그는 사람들에게 “한 번에 하루씩 살면 된다”고 해놓고, 정작 자신은 그 하루를 더 견디지 못했다. 아니, 견디지 않았다. 슬픔이나 죄책감 같은 이미 세상에 이름 지어져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사기였다. 그녀가 이 섬에서 배운 모든 삶의 태도에 대한 부정, 그리고 믿음에 대한 치졸한 배반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살아지는 법’을 가르쳐놓고, 정작 자신은 ‘죽어버리는 법’을 택했다.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은 사람들은 슬픔보다 먼저 ‘질문’이라는 형벌을 끝없이 받는다. 왜? 도대체 왜? 내가 무엇을 놓쳤을까? 하지만 그 질문에는 영원히 답이 없다. 그녀는 그 답 없는 질문의 감옥에 갇혀, 고통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은근한 통증 속에서 조금씩 질식해 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수면 쪽을 올려다보며 누운 자세로 물속 한가운데 가만히 점처럼 누웠다. 이제 여기서 숨을 참고, 발을 한 번만 차면 끝이다.


그때였다. 그녀는 등 뒤의 물살이 묵직하게 출렁이는 것을 느꼈다. 조류의 흐름과는 달랐다.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물의 부피를 밀어내며 공간을 왜곡시키는 듯한 압력.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푸른 심연. 빛이 닿지 않는 저 깊고 짙푸른 어둠 속에서, 별이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했다. 그녀가 타고 온 보트보다, 아니 그녀가 서울에서 매일 같이 몸을 구겨 넣었던 그 어떤 버스보다 컸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물고기. 고래상어다.


녀석은 다른 다이버들이 모여 있는 얕은 곳이 아니라 오직 그녀가 있는 이 깊고 어두운 곳을 향해 유영해 오고 있었다. 태초의 고요를 품은 듯한 느릿한 지느러미질. 지난번 만난 3~4미터 정도의 아기는 지금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성체의 지느러미 정도의 크기였다. 녀석의 몸통은 우주 그 자체였다. 짙은 회색 피부 위에 흩뿌려진 수천, 수만 개의 하얀 반점들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빛났다. 그 별들은 무작위로 찍힌 점이 아니었다.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남겨둔 설계도이자, 심해를 여행하는 자들을 위한 성좌처럼 보였다.


고래상어는 정확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반경 5미터.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녀석은 그녀를 중심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만히, 그리고 분명하게 그 압도적인 존재를 응시했다. 집채만 한 덩치에 비해 너무나 작고 동그란, 그러나 그 안에 수억 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 클로드?’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뇌리에는 그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자유롭고, 제멋대로이고, 끝내 침묵을 선택한 남자. 넓은 바다를 두고 굳이 이 깊은 곳, 혼자 울음을 삼키고 있는 그녀에게로 찾아온 이 거대한 우연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녀석이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아가미가 천천히 열렸다 닫히며 그녀가 뱉어내는 물거품을 걸러냈다. 그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가 기이할 정도로 성스럽게 느껴졌다. 녀석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았다. 내일을 걱정하지도, 어제를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저 거대한 입을 벌리고, 물을 들이켜고, 필요한 것을 걸러낸 뒤, 다시 내보낼 뿐이었다. 그것은 클로드가 말하고는 끝내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한 ‘하루를 사는 일’의 가장 완벽한 형태였다. 그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가 가리키고자 했던 삶의 본질은 저기, 저 거대한 물고기의 유영 속에 살아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서 마스크 안으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분노도, 원망도, 자책도 아닌, 그저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앞에서 터져 나오는, 영혼의 항복 선언 같은 것이었다. 신을 믿지 않는 그녀에게, 지금 눈앞의 이 광경은 유일한 계시였다. 설명할 수 없는 우연, 통제할 수 없는 마주침.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불확실한 삶’이 주는 가장 찬란한 선물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래. 너는 그렇게 자유롭게 갔구나.’


세 바퀴째를 돌던 고래상어가 천천히 꼬리를 틀어 다시 심연 속으로, 그가 왔던 우주 속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녀는 핀을 차 쫓아가는 대신 그 자리에서 녀석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배웅했다. 점점 작아지는 하얀 점들이 마침내 푸른 물빛 속에 완전히 녹아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다시 호흡기를 고쳐 물었다. ‘슈욱-.’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가 ‘보글보글’ 하는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그 소리가 마치 ‘살아라’ 하는 주문처럼 들렸다. 희망이란 거창한 단어는 여전히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갑자기 상처가 아물 리 없고, 내일이 기대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더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바다 어딘가에, 그녀에게 가장 큰 아픔을 주고 떠난 그 사람이 사랑했던, 그리고 그녀를 찾아온 존재가 여전히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갈 힘을 얻었다.


그녀는 멀리서 작은 물고기 떼에 정신이 팔려 이 기적을 보지 못한 스웨덴 커플에게 상승 수신호를 보냈다. 엄지를 척 치켜세우며 행복해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그녀도 마스크 속에서 희미하게, 아주 씁쓸하지만 분명하게 웃었다. 오늘 저녁에는 아주 매운 것을 먹어야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살아있음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핀을 찼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위로, 삶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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