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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TS|고통의 카타르시스

by 조하나

맨체스터 출신 일렉트로 신스 팝 듀오 허츠(Hurts)단정하게 빗어 넘긴 슬릭백 헤어와 레트로 슈트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관중들을 압도한다. 이들의 무대는 NME가 독자투표로 선정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베스트 퍼포먼스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참고로 2위는 U2, 4위가 콜드플레이, 그리고 6위가 비욘세였다는 걸 보면, 신인 뮤지션 허츠의 무대가 어땠는지 체감이 더 빠를 것이다. 2010년 발표한 그들의 데뷔작 <Happiness>는 그 해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려나간 대표작으로 기록됐다. 올해 3월 두 번째 정규앨범 <Exile>을 발표한 이들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서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김참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듯 테오와 아담은 방황했다. 2005년 크리스마스 무렵, 맨체스터의 한 클럽에서 술에 취해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이 둘은 음악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이런저런 음악적 시도와 실패를 겪은 끝에 허츠라는 이름의 일렉트로 신스 팝 듀오가 제 모습을 갖췄다. ‘고통’을 뜻하는 밴드 이름으로 발표한 첫 번째 앨범 타이틀이 <Happiness>라는 아이러니라니. 타이틀곡 ‘Wonderful Life’에서도 이들이 노래했던 건 고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흘려보내지 마, 결코 포기하지 마, 이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 HURTS ‘Wonderful Life’ 中에서




이 곡을 쓸 당시 테오는 실업자였고, 아담은 집도 없는 상태였다. 허츠로 데뷔하기 전부터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을 때에도 이 둘은 언제나 멀쑥한 슈트 차림을 고집했다. 옷을 제대로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업신여기지 않게 되며, 자존감 또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옷차림에서 오는 긴장 상태가 유지되면서 스스로의 태도에 그대로 전해진다는 걸 믿는 이들의 스타일은 음악적 콘셉트로도 이어져 오늘날 한여름 야외 페스티벌 무대에서도 슬릭백 헤어에 블랙 슈트를 갖춰 입는 남자 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테오와 아담이 무대에 섰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르는 테오는 마치 의식을 시작하기 전 기도를 올리는 것 같았다. 창백한 얼굴의 아담도 표정에 큰 변화가 없다. 그렇게 허츠의 무대는 시작된다. 장성곡처럼 장엄하고도 우아하고 기품 있다. 테오의 부드럽고 짙은 저음은 피아노와 기타를 오가는 아담의 연주와 어우러져 공연장을 깊게 울리기 시작한다. 화려한 연출과 스펙터클한 구성도 없다. 그럼에도 노래 한곡이 끝날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인다. 경건한 종교의식 같아 보이기도 하는 이들의 무대는 군더더기 없는, 말 그대로 그냥 ‘블랙’이다. 그 안에서 이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테오의 목소리와 눈빛, 몸짓과 어우러지는 허츠의 음악은 결국 그가 마이크 스탠드를 부러트리는 퍼포먼스에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한다. 심미주의와 낭만주의에 심취한 두 남자의 강렬하고도 심플한 카리스마, 그것이 바로 허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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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츠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테오: 단순한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가장 단순한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각적인 부분들에서 그런 경향이 강하다.


절망적인 무드로 희망을 노래한다. ‘Life Is Wonderful’ 가사처럼. 이는 역설인가? 아니면 희망에 대한 의지를 극대화시킨 건가?

테오: ‘멜랑콜리’가 중요한 포인트다. 가끔 어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때 조금 덜 긍정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있지 않나.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 정말 슬프고 절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 때 그렇지 않은 무드의 노래로 표현하면 그게 더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데뷔앨범의 성공으로 두 번째 앨범 작업이 부담스럽진 않았나?

아담: 데뷔 후 2년 반 동안 라이브 투어를 하면서 얻은 영감으로 이번 앨범을 만들었다. 첫 번째 앨범은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만들었고. 그래서 두 앨범의 느낌이 다르다. 앨범을 만들 당시의 라이프스타일도 아주 달랐다. <Happiness>를 만들 때만 해도 우린 가난했고 우울했다. (웃음) 이번 앨범을 만들 땐 이미 지구 곳곳을 투어로 여러 번 돌아다닌 뒤였다. 신기하고 굉장한 일들이 거의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비현실적이고 신기하고 이상한 영향들이 그대로 음악에 반영됐다. <Exile>은 그래서 좀 더 광기 어린, 어둡고 격한 감정들이 담겨있다.

테오: 이번 앨범엔 기타가 많이 쓰였다. 첫 번째 앨범엔 기타 대신 피아노가 많이 쓰였고. 이게 전체적인 분위기에 아주 큰 차이를 준 것 같다. 또 이번 앨범엔 라이브 느낌의 드럼 사운드나 합창단 코러스 같은 요소들도 사용했다. 이번 앨범이 전작에 비해 좀 더 유기적인 구성이 발전된 것 같다.


창작 과정을 고통스럽다고 표현하는 뮤지션들도 있다. 허츠는 어떤가?

테오: 경우에 따라 가르다. 가끔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특히 정신적으로 힘들다. 스스로 넘어야 하는 벽이 있으니까. 그런 벽을 넘을 용기를 위해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이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초창기엔 나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아마 다른 뮤지션들도 힘들어하는 부분일 거다. 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곡을 완성했을 때,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테오, HURTS
아담, HURTS



무대 위에서 테오와 아담이 머리를 맞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둘 사이의 케미스트리는 어떤가?

테오: 음악 작업을 할 때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는 정말 말 그대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웃음) 허츠는 우리 두 명이 반반씩 모여 만들어진 밴드니까. 혼자라면 못했을 거다. 아담과 함께라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


4인조 밴드 경험도 있었을 텐데, 듀오가 가진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아담: 우리가 듀오로 밴드를 하기로 한 이후부터 커리어가 진보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으면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게 되거나 안일해진다. 테오와 나는 이전에 몸담았던 밴드에서 항상 리더의 역할을 맡았는데 멤버 중 하나라도 내가 가진 야망이나 열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가장 힘들어했다. 결국 테오와 둘이서 밴드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좀 더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테오: 두 개의 아이디어는 네다섯 개의 아이디어보다 훨씬 강하다. 의견이 너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담: 음악을 만들 때 우리 둘이서 모든 게 커버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굳이 다른 멤버가 더 필요하지 않다.

테오: 라이브 공연을 할 땐 뛰어난 뮤지션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뮤지션을 선택할 수 있는 거지.


극적인 삶의 변화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기에 '삶이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라는 걸 잘 알 거다. 허츠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테오: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린 항상 그렇게 느낀다. (웃음) 우리가 데뷔앨범을 낸 음반사와 계약하기 전까지 우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을 없애준 유일한 한 가지가 이거였다. 반드시 음반계약을 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스스로 그 생각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하루하루 진전은 없고 곡을 쓰는 것도 힘들고, 아무도 내 음악을 좋아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매일 아침 눈을 떠서 ‘그냥 내키는 대로 살아야겠다’ 할 순 없으니까. 그렇게 내 삶을 내버려 둘 순 없었으니까. 모든 게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에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뭔가를 간절히 믿고 그게 이뤄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거다. (웃음)



ARENA HOMME+, September 2013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나는 일관된 세계관을 갖춘 아티스트를 사랑한다. 당시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HURTS가 내한한다고 했을 때 나는 한달음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낙관주의 EDM 일색이었던 2010년대 낭만적 비관주의를 음악적인 세계관으로 완벽하게 구축한 건 라나 델 레이와 허츠였다. 내한 뮤지션이 몰리는 여름 록 페스티벌에서 인터뷰는 백 스테이지 컨테이너에서 10분 정도만 이뤄진다. 그럼에도 나는 HURTS의 일관된 세계관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 검은 벨벳으로 배경을 만들고 포토그래퍼에게 깊이 있는 흑백 촬영을 부탁했다. 아시아 투어 내내 가볍고 비슷하고 성의 없는 질문만 받았을 그들에게 나는 오랫동안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고민한 인문학적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답이 달라졌다. 질문과 답의 인터뷰가 아닌 진정한 대화가 이뤄졌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낯선 뮤지션과 단 몇 분만에 이런 교감이 가능했던 건 바로 진심의 힘이다. 나는 그들이 구축한 세계관과 서사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Wonderful Life'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HURTS의 일관된 세계관의 시작이었다. 한 여름밤, 어둠이 짙게 깔리던 스테이지를 울리던 테오의 목소리와 눈빛이 여전히 짙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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