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은 공개되자마자 <베이비 레인디어>에 이어 넷플릭스 TV시리즈 글로벌 차트 2위에 올랐습니다.(5월 17일, 현재 6위) 원제는 <A Man in Full>인데 가끔 넷플릭스의 한국어 제목 번역은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 넷플릭스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
아카데미를 수상한 배우이자 감독인 레지나 킹, 애론 소킨과 함께 일했던 토마스 슐라미가 총 6편의 에피소드 중 각각 3편의 에피소드 감독을 맡았죠. 미드 팬들에게 전설이 된 <뉴스룸>의 제프 다니엘스와 베테랑 여배우 다이앤 레인, 개인적으로 미드 <밴쉬>의 팬이기에 더 반가웠던 톰 펠프리, 루시 리우까지, 쟁쟁한 배우들도 모였습니다. 하지만 ‘Full’이 아닌 ‘Half’ 같은 시리즈로 세상에 나온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은 기대를 채우는 만족감보다 안타까움이 더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 넷플릭스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
방대한 원작의 깊이보다 의욕만 앞선
ⓒ 톰 울프 <A Man in Full>
이 작품은 작가 톰 울프가 1998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 <A Man in Full>을 원작으로 합니다. 그 당시 평단은 742페이지에 달하는 이 소설의 방대한 서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 톰 울프는 평생 기자로 살아온 경험과 인류학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작가로서의 시선을 미국의 남쪽, 애틀랜타로 돌렸습니다. 그의 소설 <A Man in Full>은 인종 불평등, 계급 냉소주의, 정치적 책략을 배경으로 한 부유한 백인 사업가의 인과응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소설을 영화화하려는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뉴욕 타임스>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요약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지적했고, 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편집자였던 마크 해리스는 “이 어려운 책은 필연적으로 끔찍한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할리우드에 경고했습니다. 2시간 남짓의 영화로는 담기 어려운 깊고 방대한 소설이라는 의미였죠.
25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A Man in Full>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스타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E. 켈리의 제작과 화제성만큼 실력도 좋은 감독과 배우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총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리즈엔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과 해학이 제대로 담기지 못했습니다. 에피소드 편성수를 더 늘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길을 잃은 제작진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시리즈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 제작진은 원작 소설에 대한 부담감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 듯합니다. 생생하고 정교하며 화려하고 장식적인 톰 울프의 독특한 산문 스타일을 영상으로 번역하는 데 지나치게 집중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톰 울프의 글에 담긴 정신과 활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를 더 크게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이해합니다. 텍스트는 페이지에서는 성공적이지만 화면에서는 만화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은 돈, 계급,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작가 톰 울프의 방대한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엮어내는 데 실패하고, 대신 과한 드라마와 침울한 사회 논평만 나열합니다.
ⓒ 넷플릭스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
찰리 크로커(제프 다니엘스)는 애틀랜타 사회에 공헌한 재력가로 전 조지아 공대 풋볼 스타에서 부유한 부동산 개발업자로 변신해 크로커 콘코스라는 화려한 마천루를 짓고 도시를 호령하는 인물입니다. 훨씬 어린 두 번째 부인 세레나(사라 존스)와 함께 전용기를 타고 다니죠. 은행가 해리 제일(빌 캠프)과 찰리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심, 질투심, 그리고 존경심이라는 모순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대출 책임자 레이먼드 핍그래스(톰 펠프리)는 찰리가 은행에 빚진 8억 달러를 회수하려 합니다. 찰리의 변호사 로저 힐(아멜 아민)은 회사의 재정적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할 뿐만 아니라, 교통 단속 중 폭력적인 경찰(스콧 다니엘 존슨)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다 체포된 찰리의 비서 질(샹테 아담스)의 남편 콘래드 헨셀리(존 마이클 힐)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 넷플릭스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
다이앤 레인과 루시 리우의 재능 낭비는 재난에 가깝습니다. 다이앤 레인은 찰리의 첫 번째 부인 마사 역을 맡아 이혼 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스텝 에어로빅을 하다 레이먼드의 유혹에 빠집니다. 찰리의 왕국을 세우는 과정에 상당 부분 일조하고 그와의 이혼을 선택한, 충분히 능력 있고 현명한 여성을 내내 무기력하고 무능하게 묘사한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은 그녀가 전 남편인 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갑자기 레이먼드와 데이트를 시작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찰리의 현재 배우자 세레나(사라 존스)는 ‘트로피 와이프’ 그 이상이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기회가 없습니다. 루시 리우는 더합니다. 그녀가 맡은 캐릭터는 이 시리즈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의무적으로, 모호하게 그려진 여성들은 주인공 남자들이 혼자서 쇼를 진행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 넷플릭스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
거만한 자산가 찰리와 그를 허풍과 허세에 가득한 벌레처럼 대하는 은행가 해리의 대립은 미드 <빌리언즈>의 헤지펀드계의 투자가와 미국 검사장의 그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다 이내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자본주의의 독버섯 같은 찰리, 그를 환멸 하면서도 그처럼 되고 싶은 레이먼드, 도덕적 신념을 고액 연봉과 맞바꾼 로저까지, <어느 남자의 완전한 삶>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남성성의 여러 측면을 탐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방향을 잃고 산만하게 동분서주합니다. 결국 찰리가 갑옷처럼 두른 허영과 욕망 안에 가려진 공감과 연민, 레이먼드의 찰리를 향한 양 날의 감정, 로저와 콘래드를 통해 드러나는 인종차별과 인간의 신념 등 모순적인 충돌의 사건이 전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합니다.
찰리와 레이먼드, 이 가여운 두 수컷이 서로를 경멸하는 마음의 씨앗은 결국 자기혐오에서 출발합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평가하는 잣대는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 누구와 자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뿐이죠. 찰리에겐 아들이 있고 아내가 있고 일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탐욕과 시기, 자존감의 결여이며 그가 죽기 전까지 채우려 했던 구멍입니다.
레이먼드 역시 찰리가 파헤치는 그 공허함을 어떻게든 채우려 애씁니다. 한편으론 찰리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만큼 그를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존경하죠. 그가 쫓고 있는 유령은 바로 찰리입니다. 레이먼드는 그가 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혐오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자신을 더욱 경멸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합니다. 결국 이 독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비극은 치명적인 대립과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찰리는 미국의 트럼프를 떠올리게 합니다. 허영과 허세로 가득한 위태로운 삶을 유지하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기애가 넘치고 과대망상적인 면을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혐오와 자격지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기 파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아, 여기 한국에도 한 명 있네요, 생각나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