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책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 Dec 13. 2019

부서지기 때문에 덜 울 수 있다

작년 연말에 재미로 신년 운세를 본 적이 있다. 내 사주를 봐주신 분은 엄마 또래의 여성분이었다. 옛날 방식대로 홍차를 내려 마시며 셰익스피어를 탐독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셰익스피어를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 셰익스피어를 꿈꾸는 사람의 인생을 논하다니, 겸손한 자세로 들을 수밖에.


 인생이 코스 요리라면 그녀는  순서를 꿰뚫고 있는 노련한 셰프였다.  은밀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술술 읊었다. 애피타이저로 삶에 대한 충고도 건넸다.  인생이   30분도   사람의 프라이팬 위에서 널뛰기를 했다. 놀랍고 끔찍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이것이다. 내가 나무의 성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추운 계절에 유난히 마음이 약해지고 인연도 끊어지는 일이 많았을 거란다. 꽤 일리가 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내 마음은 한 번도 강했던 적이 없다. 또한 소중한 사람은 따뜻한 계절에도 나를 떠나갔다.


마음을 깨지기 쉬운 물건처럼 움켜쥐고 걷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땐 항상 같은 꿈을 꾼다. 꿈에서 나는 길을 헤매고 있다. 불안해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면 매번 같은 기차역에 다다른다. 가파른 언덕배기 아래로 돌이 깔린 선로가 있고 기차는 멈춰있다. 기차는 차양에 가려져 선두부만 보인다. 플랫폼으로 올라가고 싶지만 곧 꿈에서 깨어난다.


이럴 땐 눈만 감으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끔찍한 상상도 하게 된다. 바닥이 종이 딱지처럼 보일 정도로 높은 건물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다. 혹은 갑자기 건물이 무너져 속수무책으로 낙하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상황인 것처럼 뺨에 바람도 느껴진다. 두려움에 정복당할 것 같지만 나는 이것이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정하는 방법은 ‘나는 날 수 있다’고 자기 암시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있는 힘껏 아이언맨이나 피터팬 따위를 떠올리다 보면 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유로운 비행을 즐기는 것은 아주 잠시 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압도적으로 크다. 빨리 눈을 뜨면 되는데 이상하게 그게 안 된다. 한 번 먹잇감을 물면 놓치지 않는 맹수처럼 상상은 내가 비행할 수 있을 때까지 놔주지 않는다.


악몽과 환상에 시달린 지는 오래됐다.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내겐 늘 당황스럽고 힘들다. 나는 역경에 익숙해질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부서지는 것에 익숙하다. 지금 행복하다고 해도 언젠간 또 부서질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은 나를 강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덜 울게 한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점술가의 예측은 ‘예측’으로 끝났다. 그러나 내가 예측한 부서짐은 삶 속에 실재하는 것이다. 사주팔자보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산책 중에 밑동이 갈라진 나무가 결국은 하나가 되어 하늘로 뻗어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나무의 성질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것은 갈라지고 깨져도 결국은 나 자신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아픈 계절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죽기를 택하지도, 결실을 맺는 것에 불성실하게 굴지도 않는다. 그냥 온몸으로 아파하고 만다. 언젠가 나도 나에게 돌아갈 것이다. 아프지 않기를 소망하지 말자. 아픔이 빨리 지나갈 것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