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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Dec 21. 2019

아프지 않기 위한 아픔

세상 모든 일에 일정한 형태가 있다면 어떨까? 내가 생각하는 그것의 형태는 화살과 가장 비슷하다. 모든 사건은 화살처럼 날아와서 삶을 관통한다. 사건에 대한 감정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그것을 느끼는 시간은 사건이 삶의 반대편을 뚫고 나올 때까지로 한정되어 있다. 모든 것엔 끝이 있다는 뜻이다. 신이 우리에게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 까닭은 인간이 삶에서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는 일에 미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이 있음을 알고 미리 준비함으로써 상처를 감당할 힘을 비축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다 연습 게임이 있는 건 아니다. 재수 없을 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끝을 맞이해야 한다. 괴로운 일이 빠르게 해결되면 쾌재를 부를 수 있다. 문제는 소중한 인연이 갑작스럽게 끝날 때다.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차라리 괜찮다. 더 가치 있는 물건이 생기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갑자기 잃으면 불가항력적으로 지독한 슬픔을 견뎌야 한다. 세상 어떤 것도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없기에.


한때 내게도 뮤즈가 있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을 뛰어넘어 존경했다. 그와 가까이 지내던 시절에는 송나라 시인 구양수가 강조한 ‘다독, 다작, 다상량’을 애쓰지 않아도 실천할 수 있었다. 사실 ‘실천’이라기보다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뮤즈가 괜히 뮤즈겠는가.


그 사람과의 인연이 갑작스럽게 끊어지고 나서 삶은 스릴러가 됐다. 한순간에 팔이나 다리가 잘려나간 느낌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나라는 사람의 여러 조각들이 떨어지고 그의 것으로 채워진 탓이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존재를 뒤바꿀 수 있다는 건 이토록 경이로우며 잔인한 일이다.


난 최선을 다해 나의 뮤즈를 사랑했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고 항변하겠다. 마음 바닥에 있는 것까지 기꺼이 내주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내 마음이 더 크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그 역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에게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 모든 면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그리워할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 그리워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그러나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찬바람이 세게 불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또한 상처를 잘 견디는 사람이라고 해서 칼이 날아오는 곳에 서 있을 이유는 없다. 나는 뮤즈를 사랑했지만 그는 내게 너무나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래서 나는 문을 닫았다. 그것이 나의 뮤즈에 관한 이야기의 전부다. 시작이 있었고, 뜨거웠고, 끝이 났다는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 그러나 이 별다를 것 없는 만남 이전의 나를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다.


뮤즈를 떠나보내고 누군가와의 인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시작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끝을 향해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일곱 살 된 반려견과의 이별을 벌써 준비하고 있다. 이토록 작고 소중한 아이가 내 곁을 떠난다면 한 시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할머니와의 이별도 미리 준비한다. 아직도 정정하시지만 당장 다음 주에라도 돌아가실 것처럼 상상하곤 한다. 미리 앞당겨 아픔을 느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 위해 미리 아픔을 연습하는 것이다.


감정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면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직면해도 해결되지 않을  우회해도 괜찮다. 조금  길을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으로 나를 지킬  있다면 됐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모든 전술은 적당한 타이밍을 꿰뚫고 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  번의 후퇴로 나를 실패자로 내몰지 않으려 한다. 세상만사의 형태가 화살이든 검이든 간에 어쨌든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몫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부터 지켜야겠다. 어쩌면 우회로로 선택한  길이 나를 어떠한 아픔에도 흔들리지 않게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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