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8장 지상명령 | 유튜브하나교회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몇몇 구절은 성경의 핵심 구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욱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8장의 말씀도
그러한 성경의 핵심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장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리신 마지막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의 지상 명령(至上命令) 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이토록 중요한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한 번 살펴보는 것도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구절의 헬라어 문장에서 동사는 단 하나
‘제자를 삼다’입니다 (나머지는 동사를 수식하는 분사입니다)
그러니까 가서, 세례 주고, 가르치는 것은 모두 제자를 삼기 위함이라는 소리입니다
결국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을 '제자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로 번역된 헬라어는 마데테스라는 말입니다
이 '마데테스'라는 말은 깨닫다, 이해하다는 뜻을 지닌
‘만다노’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자 삼으란 말씀은 예수께서 가르친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들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가르침을 진정으로 깨달았는지...
즉 제자가 되었는지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 가르침 대로 살고 있는 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스승과 부모를 거의 동일시했습니다
부모가 육체로 낳은 분이라면
스승을 정신적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 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승과 제자는 정신적으로 한 몸입니다
한 몸이기에 스승의 가르침을 깨닫고 이해한 제자는
스승처럼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이미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지에 가는 것도
세례를 주는 것도 아닌
제자를 삼는 것, 즉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이 곧 교회를 세우라는 말로도
혹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로도 달리 표현되는 것일 뿐
결국 교회의 모든 사역은 사람을 제자 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여기까지 이해되었다면
지상 명령의 절반이 이해된 것입니다
이제 나머지 반은 그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내내 강조하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하고도 일관됩니다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오직 눈에 보이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써만 드러나는 것이니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단 한 가지 핵심 메시지는
'이웃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라든지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놓아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
이러한 가르침은 모두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다른 버전일 뿐
결국은 똑같은 메시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을 제자 삼으라는 지상 명령,
즉 선교의 명령은 '이웃 사랑을 삶 가운데서 실천하라'
라는 말씀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선교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는 선교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어
선교지로 선교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교회 예산의 적지 않은 부분이
선교를 위해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교회를 통해 행해지는 선교의 모습은
서로 사랑하고 돌아보라는
이웃 사랑의 가르침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종교인을 만드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본질적 가르침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져라'
'우리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라' 하는
교리의 전파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당시에 세리나 창기 심지어는 살인자나 강도까지도
품고 용서하셨던 예수님으로부터
유일하게 끝까지 쌍욕을
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을 마치
성경에 나오는 나쁜 사람들의 대명사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예수님 당시의 시대로 돌아가서 살펴본다면
전혀 의외의 상황과 맞닥뜨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과 달리
바리새인은 당시에 백성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종교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웬만한 사람을 흉내조차도 못 낼 정도로
열심이었고 또한 진심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형을 살펴보면
크게 제사장 사독의 후손들인 사두개파 사람들과
구약 전통에 강한 지식인 그룹인 바리새파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당시의 성전 권력, 즉 대제사장 자리는 언제나 사두개인의 몫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종 성전세와 환전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로마 지배층과 결탁하여 조국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는 백성들을 탄압하기도 하고
종교 권력을 이용하여 오로지 사리사욕만을 챙기던 기득권 세력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바리새파 사람들은 청렴 결백했으며
성경의 지식에 통달해 있었고
하나님의 명령, 즉 율법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을 용기를 갖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사두개파 사람들보다는 유독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서
독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외치신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말은
거의 쌍욕이나 다름없는 거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한마디로 영적인 측면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사두개파 사람들이나 다른 누구보다도 훨씬 더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리사욕만 채우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모세오경을 통째로 외우다시피 하는 지식인들이었고
구약의 율법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그야말로 신앙의 위인들이었기에
백성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말이라면 대체로 신뢰하고 믿고 따르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가르침은 영향력이 컸습니다
문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르치는 신앙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구약성경을 따랐습니다
그것도 문자적으로 따랐습니다
그들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
즉 율법에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보다 더 철저히 지키기 위해
십계명을 세분화하여 600여 개의 하지 말아야 할 율법을 만들어 철저하게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을 살펴보면 가히 눈물겨울 지경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신약 성경 내내 가르치신 내용은
바로 이러한 바리새인의 가르침이 그릇된 것이라는 일깨움이었습니다
제 아무리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히 특심이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 사랑이 빠져있다면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헛된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다니는 이유,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예수 믿고 구원받기 위함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그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주일 성수, 십일조, 성경 읽기, 새벽 기도, 큐티 등 교회라는 조직 내에서 행해지는
몇 가지 종교 활동에 충실하게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생활의 정점에는 언제나 전도하는 삶, 선교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선교하고 전도하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둡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전도하는 것이고
무엇을 하는 것이 선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선교지에 나가 병원 지어주고 학교 지어주고
교회를 지어 예배하게 하는 것은 선교의 표면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진정한 선교의 의미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을 제자 삼는 것이고
제자 삼는 일이란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이웃 사랑을 자신의 삶 가운데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은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이 참된 진리로서 이해될 때
삶 가운데 누리게 되는 ‘천국의 자유함’을 말합니다
즉 진리를 깨닫게 되면 참다운 자유
‘그 어디나 하늘나라’를 누릴 수 있다는 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물론 신자들은 죽어서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이 땅 가운데 살면서
천국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 가운데 살면서 그 어디나 하늘나라임을 고백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웃과의 화평한 관계 속에서 실현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려야 할 복음은(기쁜 소식은)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다는 소식입니다
이미 구원받은 몸이니 그렇게 아등바등
죽기 살기로 이웃과 경쟁하며 살 필요 없다
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전도이고
이 복음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곧 선교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교리를 전파하는 일이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선교가 특정 교단의 교리의 전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히 방향을 잃은 헛된 열심히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이..
단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라면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인 이웃 사랑의 가르침은 설 자리를 잃고 맙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을 섬긴다며 열심을 부려도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예수님께 쌍욕을 들어야 했던 바리새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으로부터 배우는
두려운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