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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Jung Jun 18. 2020

#03 코비드로 혹은 코비드 때문에

그렇지 않지만 그렇기도 한

5월 4일 월요일, 자가격리가 완화된 첫날.

우리는 시댁을 방문하기로 했고 두 달간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을 보지 못한 아이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온라인 수업이 끝나는 오후 다섯 시에 집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손님들에게 보내야 할 택배 수거가 늦어져 여섯 시 삼십 분에야 집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두 달 만에 잡은 운전대가 어색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와 마음이 불편해졌지만 백미러로 보이는 아이의 들뜬 모습이 애틋해 금방 불편한 마음을 털어버렸다.

시댁까지는 차로 십분, 그 짧은 시간 뒷좌석의 아이는 온몸으로 기쁜 마음을 표출하고 있었다.


아이와 나는 격리 기간 동안 바깥 외출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두 달 만에 시부모님을 만나는 것이지만 마리오는 그동안 세 번 부모님을 뵐 수 있었다.

그중 두 번은 시아버님이 몸이 안 좋으시다는 시동생의 전화를 받고 달려간 것이었는데 매번 응급차가 왔지만 병원 응급실에서 위험 상황에 처하게 될, 예를 들어 병실 부족으로 코비드 병동으로 옮겨지거나 병원 내 감염 등의 확률이 컸기 때문에 가족의 동의하에 집에서 매번 응급 처치를 받으셨다.

42년생인 시아버님은 재작년에 은퇴를 하시고 약간의 우울증과 치매 초기 증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지만 특별히 아프긴 곳은 없으셨기에 아무도 우리에게 닥칠 불행을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생각보다 다들 잘 지내신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또 그동안 시부모님과 같은 건물에 살아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준 시동생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두 달을 기다려 겨우 두 시간 정도의 만남을 가진 아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과 더 있고 싶은 마음에 자고 가겠다 했지만 내일부터는 매일 올 수 있다는 말로 회유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차리며 이제 자주 들려야겠다, 시어머님이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숨을 쉬지 않으셔!

짧은 비명과도 같은, 하지만 왠지 모를 침착함이 느껴지던 시어머님의 한마디.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는 가족을 잃었다.


코비드로 돌아가신 건 아니지만 코비드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돌아가셨으니 그도 코비드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겠지.

코비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또 누군가는 직장을 잃었다, 불확실한 미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한번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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