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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Jun 17. 2021

나는 숨 쉬는 이글루에 산다.

사랑의 주춧돌을 놓아야 그 위에 좋은 집이 올라간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도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홍수에도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지을 수 있다. 인생이라는 집도 마찬가지다.


정연복 시인의 글처럼 나는 내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집이라는 건물의 완성을 보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게 됐다.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이 뒤엉킨 어지러운 공사 현장은 소음과 흙먼지가 풀풀 날려 뿌연 안갯속 같았지만, 미래의 우리 집이 내 머릿속에서는 선명한 그림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거실은 넓었으면, 부엌은 환기가 잘 됐으면, 하얀 울타리에 빨간 덩굴장미가 피었으면...' 온갖 기대와 설렘 속에 역사적인 집 짓기는 진행되고 있었다. 짓기가 삶의 낙이 되신 시아버님은 스스로 관리 감독 완장을 차고 매일 공사 현장으로 출근했다.


어느 주말 오후, 우리 집이 궁금하여 아이들과 함께 공사 현장을 찾아갔다. 마을 초입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서니 저 멀리 나 혼자 상상했던 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 저 하얀색이 우리 집 맞아요? 저건 이글루 아니에요?"


"글쎄, 가까이 가봐야 알겠는데..."


얼음덩어리가 연상되는 “ALC 자재”

차를 세우고 가까이 가 보니 영락없는 이글루다. 하얀 얼음덩어리를 쌓아 올린 듯 보이는 블록 형태의 건축 자재 이름은 ALC였다.


ALC 자재의 장점은 공기구멍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음에 좋고, 냉난방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통기성이 좋아 탈취 효과가 뛰어나니, 쾌적한 실내 환경은 기본이고 청량감은 덤이다.


많은 장점 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환경 호르몬을 유발하지 않는 ‘친환경 자재’라는 점이었다. 아이가 넷이다 보니, 새집 증후군이 걱정이었다. 건강에 매우 유익한 자재라 두부를 빗대어 ‘두부 자재’라 불리기도 한다니, 큰 걱정 하나를 덜어낸 느낌이었다. 그날 처음 본 ALC 블록을 우리 가족은 두부보다 얼음덩어리로 느꼈고, 이글루를 연상했다.



종종 폭설 같은 예고 없는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나는 이글루를 짓고 또 지어 시련 속을 따뜻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내 사랑이 아름답게 세 들어 살게 하고자 노력했다.

오영진 작가의 글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에스키모인들의 안식처 “이글루”

에스키모인들이 얼음으로 지은 집 '이글루"는 온통 차가운 얼음으로 지어졌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너무도 따뜻해서 갓난아기도 자랄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양의 공기구멍(기포)을 가지고 있어 살아 숨 쉬는 집이라는 의미에서 ALC 우리 집도 이글루를 꼭 닮았다.


고층 아파트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숨 막히는 대도시를 떠나 너른 자연의 품속 같은 이곳에 집을 짓게 된 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다. 도심의 아파트보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공간이 내게는 로망이었다. 눈뜨면 매일 마주하는 시멘트와 매연 대신, 우리 아이들에게 살랑거리는  바람의 흔들거림을 보여주고 미생물이 살아 숨 쉬는 흙을 밟으며 맘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다. 사계절이 선물해 주는 개성 넘치는 빛깔과 풀 향기 꽃향기를 맡으며 느린 보폭으로 천천히 자연을 누렸으면 했다.


아이들이 느닷없이 만나는 폭설과 태풍처럼 시련과 역경을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상처를 보듬어 주고 치유해 주는 집이면 얼마나 좋을까!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 으쌰 으쌰 응원해 주는 집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안식을 주는 집을 짓고 싶었다.


사랑의 주춧돌을 놓아야 그 위에 좋은 집이 올라간다는 정연복 시인의 말처럼 얼음덩어리 같은, 두부 같은, ALC 블록이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나는 이런 나의 간절한 소망을 기도와 함께 숨결처럼 불어 넣었다.



사계절의 빛깔을 감상할 수 있는 거실 풍경

어느덧 꿈에 그리던 우리 집이 완성되었다. 정신없이 이삿짐을 정리하다 문득 바라본 거실 창문 밖, 붉게 피어오르는 노을을 바라보는데 내 눈은 왜 그리 뜨거웠을까! 우리 집이 흙으로 잘 왔다고 자연으로 잘 왔다고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이사한 바로 그날, 위로와 치유를 받고 나니 우리 집이 이글루처럼 가족 사랑의 기초가 튼튼하고, 세상의 상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따뜻한 둥지로 잘 지어졌음을 확신했다.


회색 숨, 텁텁한 가래를 뽑아내고 초록 숨, 푸른 생명력을 마음껏 들이켜본다.


민트빛 아카시아 향기가 초록 잔디 위에 하얗게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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