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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Oct 24. 2021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강원도 어디 깊은 산속 펜션에 놀러 가야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설경이 우리 집 뒷마당에 펼쳐졌다. 아파트에 살 때는 베란다를 통해 밖을 내다보면 사방에 회색 건물들이 솟아 있었는데 여기는 마치 병풍처럼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졌다. 이사 온 첫해에 나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눈꽃축제와 겨울왕국이 내 집 마당에 펼쳐졌으니 말이다. 뒷마당이 온통 소나무 숲으로 둘러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오직 우리 가족만 존재하는 것처럼 호젓하게 느껴졌다. 우리 집 설경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지인이라면 누구든 눈만(비가 와도 그랬다) 내리면 우리 집을 그리워했다.


“현주야! 너네 집 거실에 앉아서 내리는 눈 감상하면서 따뜻한 커피 마시고 싶어.”


“나야 오면 정말 좋지! 그런데 그거 알지? 잘못 들어왔다가 폭설 내리면 고립된다는 거! 자고 갈 자신 있으면 짐 싸들고 와!”


그 말은 사실이었다. 10년 전 이 마을에는 집보다 공터가 훨씬 많아 자동차 출입이 별로 없었다. 산속에 우리만 폭 들어앉아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눈이 많이 내리면 첫째와 둘째가 다니던 유치원에 아침 일찍 전화해 이쪽으로 올라오지 마시라고 전화를 드렸다. 잘못 올라왔다가 꽁꽁 언 빙판길에 자동차 바퀴가 헛돌면 정말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뒷마당 소나무 숲에서 생각지 못한 남자 등산객이 불쑥 나타나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나무가 서로 부딪혀 큰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하도 커서 무섭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아파트에 살 때는 몰랐는데 태풍이 오면 우리끼리 견뎌야 해서 그 또한 조금 두려웠다. 사계절 풍경이 예쁜 만큼 꽉 막힌 뒷마당 소나무 숲은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


몇 년 전 애증의 관계였던 뒷마당의 소나무 숲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그동안 파티션이 돼주었던  소나무 숲이 모두 사라지니 우리 집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저 아래 도로에서 올려다보면 하얀 우리 집이 한눈에 보였다. 잠시 동안은 소나무 숲 실종이 서운했다. 그 대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되어 설레고 기뻤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뒷마당 풍경은 오묘한 신비감을 주었다.


소나무 숲이 사라지니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었던 흑성산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아래 마을과 도로가 한눈에 다 내려다 보였다. 뒷마당도 시야가 탁 트였다. 소나무 숲이 사라진 터에는 전원주택단지 부지가 들어서고 있었다.


동화 속 집처럼 빨간 기와가 올라간 지붕의 집들이 줄 맞춰 세워졌다. 1차 개발 후 2차 개발이 또 이루어졌다. 그만큼 전원주택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방증일 것이다. 우리 동네에 전원주택이 늘어가면서 생활 편의 시설도 여러 가지 관리들도 점점 좋아졌다. 더 이상 고립은 없었다.


뒷마당에 차곡차곡 들어서고 있는 전원주택들. 마치 장난감 마을처럼 예뻐 보였다.


눈 내린 어느 날 뒷마당의 풍경을 보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란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침마다 우리 아이들이 산책을 했던 마을길이다. 10년 전에 우리가 이곳에 집을 지을 때만 해도 3채 정도밖에 집이 없었는데 지금은 빈 공간 없이 전원주택들이 모두 들어섰다. 눈이 펑펑 내리는 우리 동네 풍경을 10년간 봐왔지만 볼 때마다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내려앉은 겨울 풍경이다.


추운 겨울날 통창을 통해 바라보는 겨울 풍경은 언제나 마음을 몽글거리게 만들었다. 밖은 추웠지만 집안은 온기로 훈훈했다. 네 아이들이 뿜어내는 사랑스러운 열기가 집안에 가득했다. 추울수록 더욱 그랬다.



난로는 추위로부터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줌과 동시에 많은 추억을 선물해주었다. 이곳에 구워 먹었던 군고구마와 군밤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계단 아래 난로 옆 공간은 아이들만의 소중한 아지트였다. 난로에 구운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 먹으며 만화 영화를 보곤 했다.


난로 덕분에 난방비를 크게 절약할 수 있었지만 완벽한 해결책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몇 년 전에는 목돈을 들여 큰맘 먹고 ‘지열난방”공사를 했다. 그 공사 이후에 우리는 더 이상 난로를 사용하지 않았다. 운치는 있었지만 나무의 잿가루가 날려 청소가 번거로웠고 불이 꺼져가는 새벽 가끔씩 역류해 온 집안이 뿌연 연기로 가득 차기도 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었다. 그렇게 난로는 추억의 뒤안길로 총총 사라졌다.


지열난방 공사 이후 여섯 가족이 사용하는 2층 전원주택 난방비가 한 달 25만 원이라면 정말 놀랄 일이 아닌가 싶다. 난로가 주는 겨울 감성은 사라졌지만 우리들의 겨울은 더욱 따뜻해졌다.


우리 집 앞마당 감나무에 주렁주렁 감이 열렸다. 부지런하지 못해서 우리는 감을 따지 않고 감상만 했다. 새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먹이일 것이다. 주홍빛 감 위에 하얀 눈이 내려앉은 모습은 볼 때마다 너무 아름답다.


전원주택에 이사 와서 지금까지 맞은 열 번의 겨울이야기 우리 마을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맺으려 한다.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지만 그중 겨울 풍경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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