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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Sep 15. 2021

엄마 가방 속에 넣어둔 막둥이의 사랑

‘섬유선종’ 완치 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다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3살, 5살, 8살, 10살.. 엄마 손길이 한없이 필요한 작은 아이들을 두고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꿈에서 조차 하지 않았다.


그 시절, 누구보다 나의 일을 적극 독려한 사람은 신랑이었다.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며 쉰다고 그게 쉬는 게 아니라고.. 막내 3살이니 어린이집 보내고 숨 고르며 나의 삶을 살라고.. 그래야 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 생기가 우리 가정을 살리고 아이들에게로 흘러갈 거라고 신랑은 굳게 믿었다. 나는 육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대외 활동이 필요한 사람이었던 거다. 밖에서 에너지를 쏟을 때 힘을 얻는 전형적인 외향의 사람임을 그 사람은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200% 적중했다.


10년 만에 디자인 팀장으로 복귀해 첫 출근을 하던 날! 그 설렘과 떨림을 잊을 수가 없다. 첫날부터 꿈에 부풀어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자료 모으고 연구하느라 며칠 밤을 꼴딱 꼴딱 새웠는데도, 지치기는커녕 구름 위에 둥둥 떠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노래가 자동 재생될 정도였다. 아이디어는 넘쳐났고 신제품은 빵빵 터져줬다. 10년 만에 기꺼이 나를 받아준 고마운 회사에게 제대로 은혜를 갚을 수 있었다.


막둥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1주일간 고생한 거 말고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친정엄마의 징검다리 역할 덕분이었다. 엄마는 당신의 딸이 이제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꼬리표를 떼고 “윤현주”본연의 이름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 쌩얼에 츄리닝을 입던 딸이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은 모습이 그렇게 흐뭇하셨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해 무심코 가방을 열었다가 나는 그만 얼음이 되었다.

먹다 남은 “바나나”와 “쌀과자”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나 특유의 꼬리 한 향기가 폴폴 올라왔다. 순간 나는,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격하게 감동했다.


‘ 넷째 막둥이 태준이가
엄마 배고플 때 꺼내 먹으라고
기방 속에 넣어두었구나!’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또 보고.. 보고.. 흑흑..

볼수록 감동이었다. 그 시절 아직 말이 서툰 태준이에게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동심을 동심 그대로 받아들이고 혼자 한참을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세 살이 아닌 열 살의 태준이에게 다시 물어봤다.


“태준아! 이 사진 자세히 좀 봐봐봐! 이거 너 세 살 때 네가 엄마 가방 속에 넣어둔 거야. 그때 어떤 마음으로 넣어 둔 걸까? 한번 잘 생각해봐!”


내가 기다리는 답이 나오길 기대하며 물었다.


“제가 저걸 넣어두었다고요? 기억이 안 나는데? 음.. 어.. 아.. 아하?! 엄마!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요.. 먹기 싫어서? 먹다가 배불러서? 넣어 둔 거 같은데요?!” 


헉! 헐;; 동심, 감동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하하하. ;; 다시 진지하게 되물었다.


“아니 아니.. 태준아.. 그건 지금 열 살의 네 생각이고.. 세 살이었잖아.. 그러니까.. 동심으로 돌아가서 그 당시를 잘 생각해봐.. 네가 워낙 맛있는 걸 아끼는 성격인데.. 그걸 엄마에게 양보했다면? 그 세 살 아기의 마음은 어떤 걸까? 어떤 의미였을까?”




아하!
엄마! 이제 생각났어요.

그날 제가
바나나를 먹는데
너무 달고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엄마도 맛보게 해야겠다..

그리고 또,
쌀과자를 딱 깨물어 먹는데
너무 달콤하고 구수한 거예요.

그래서 이것도 엄마 배고프실 때
회사에서 드시게 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제가 넣어둔 거예요.
왜냐면 엄마를 사랑하니까요.


하하하하하.

정답!!

빙고!!!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밤새울 뻔했는데, 누굴 닮아 이렇게나 눈치가 빠른 건지 여우 같은 막둥이 태준이가 제가 원하는 답을 ! 집어서 빠르게 말해줬네요.


저는  사진만 보면 그날의 흐뭇했던  미소가 떠오릅니다. 엄마 가방 속에 넣어둔 막둥이의 사랑덕분에 복직 이후 지금까지 아주 아주 행복하게.. 모두에게 인정받으며 아주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의 저희 아이들, 전원주택 자연에서 커서 그런지  심성 고운 아이들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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