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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Oct 13. 2021

모기장 텐트로 즐기는 ‘거실 캠핑’

우리 가족은 종종 “거실 캠핑”을 즐겼다. 

앞마당 대신 넓은 거실이 캠핑장으로 변했다. 블라인드만 올리면 커다란 통창을 통해 사계절의 자연을 마주할 수 있으니 캠핑장으로 손색이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태풍이 불고 비가 내려도, 눈발이 날리고 우박이 쏟아져도 상시 영업이 가능한 캠핑장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텐트를 치기 시작하면 2박 3일 꽉 차게 놀아야 끝이 났다. 편한 침대 방을 버리고 딱딱한 텐트 바닥에 모여누워 뭐가 그리 즐거운지 복닥복닥 추억을 볶았다.


텐트에 두 명씩 들어가려면 최소 세 개의 텐트가 필요한 상황, 우리는 모기장 텐트를 구입했다. 모기장 텐트는 재질이 망사로 되어있어 일단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구멍으로 슝슝 바람이 드나드니, 통풍은 기본이요, 쾌적함은 덤이다. 그러나 지나친 개방감을 뽐내는 모기장 텐트는 사생활을 전혀 보장해주지 않았다. 누가 코를 후비는지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구조라 소소한 참견이 이어졌으니, 조잘조잘 끊임없이 쏟아지는 투명한 대화가 내 귀를 간질였다. 그건 구멍 숭숭 모기장 텐트의 최고 단점이자 최대 장점이었다. 비록 모기장이지만 명색이 텐트인지라 아늑함과 포근함은 보장이 되었다. 이러니 매력만점 모기장 텐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행복한 금요일 밤이었다. 아이들이 거실 캠핑을 제안해왔다. 평소라면 아주 흔쾌히 예스! 를 외쳤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노우! 외치고 말았다. 아이들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더니 점점 찌그러졌다. 급기야 막둥이는 믿었던 엄마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막둥이 울음에 그만 마음이 약해진 나는 그 대신 깐깐 서약서를 낭독했다.


“좋아! 일단 허락은 할게! 그 대신, 시작 청소부터 마지막 뒷정리까지 너희들이 모조리 다 하는 거다? 그리고 텐트 안으로는 과자 한조각도 절대 가지고 들어가서는 안돼! 음식은 무조건 부엌에서 해결하기! 어때? 지킬 수 있겠지?!”


“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합창했다. 폴더폰처럼 고개까지 크게 끄덕이며 말이다. 그리곤 새끼손가락을 걸어왔다.


아이들은 익숙한 몸짓으로 소파를 창가 끝으로 척척 밀어 놓고 텐트칠 바닥을 반질반질 깨끗하게 닦았다. 원터치형 모기장 텐트는 던지기만 하면 단번에 촥! 촥! 촥! 세워지는 마법을 부렸다. 아이들도 손쉽게 척척 세웠다. 빛의 속도로 2층에 올라간 아이들은 꿀벌처럼 붕붕 계단을 날아다니며 무거운 이불은 함께, 가벼운 건 각자 들고 날랐다. 우리 부부의 이부자리와 베개까지 눈 깜짝할 사이 셑팅되었다.


거실 캠핑의 모든 준비가 끝나면 빙 둘러앉아 잠자리 짝꿍을 정했다. 어떤 일말의 다툼이나 타협 없이 언제나 첫째 세아와 막둥이 태준이가 둘째 현준이와 셋째 경준이가 짝꿍이 되었다. 나와 신랑은 아이들이 정해준 대로 항상 같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원한 짝꿍이다.


아주 가끔은 막둥이가 나와 짝꿍을 하고 싶다고 떼를 썼다. 눈물 그렁그렁 매달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형아들을 바라보지만 누구 하나 아빠와 함께 자겠다고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태준이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우리 집엔 엄마 쟁탈전은 있어도 아빠 쟁탈전은 없다.


텐트 세 동이 모두 세워지고 나면 아이들은 마치 처음 보는 이웃의 텐트에 방문해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실실 웃으며 즉흥 상황극을 펼쳤다.


“안녕하세요?! 이 캠핑장 자주 오세요?”

“혹시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나와서 같이 간식 좀 드실래요?”

“음료수를 많이 싸왔습니다. 같이 먹어요.”


나도 그만 상황극에 과몰입하여 텐트에 편히 누워 책장을 넘기며 아이들에게 커피를 주문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의 부탁을 서로 들어주겠다며 실랑이를 했다. 그럴 땐 제일 공정한 가위바위보로 심부름 순서를 정했다.


뭐니 뭐니 해도 거실캠핑의 백미는 “구연동화 시간”이다. 늦은 밤 네 명의 아이들은 구연동화를 듣기 위해 우리 부부의 텐트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모기장 텐트가 지지직, 금방이라도 터질 듯 위태롭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느새 여덟 개의 눈동자에 반짝반짝 불이 켜지면 동화구연이 시작되었다. 내가 또 전직 유치원 교사 아니던가! 아이들의 심장쯤이야 쥐락펴락 할 줄 아는 연기 9단이란 말씀이다. 오랜 세월 갈고닦은 구연 솜씨를 아이들 앞에서 마음껏 뽐냈다.


어눌한 말투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갑자기 무시무시한 마녀로 변신할 때면 아이들은 작은 입술을 움찔거리고 침을 꼴깍 삼켰다. 어리바리 우스꽝 스러운 인물을 연기하다가 갑자기 굵은 저음의 드라큘라로 변신해 검은 망토를 휘두르면 아이들은 눈썹을 쌜룩거리다가 무섭다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이들의 변화무쌍한 표정과 몸짓을 보는 건 큰 보람이고 희열이었다. 목이 아파도 꼭 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그 시간을 어쩌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고요한 적막이 감도는 순간!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누군가 방귀를 뽀옹~ 흘렸다. 아이들은 잠시 뒤 솔솔 피어오르는 냄새에 손을 휘젓다가 다시 코를 막으며 “나 아니야~ 너지?!” 하며 한참을 깔깔깔 웃었다. 방귀 냄새쯤이야.. 그 시간 우리는 모두 달콤하고 고소하다고 느꼈을 거다. 하루 종일 시끄럽던 아이들이 달빛의 포근한 자장가에 쌕쌕 잠이 들었다.


조용히 블라인드를 올려보니, 검은 하늘엔 손톱 같은 초승달이 걸려있고 수많은 별들이 총총 빛났다. 고흐의 그림이 하늘에 펼쳐지고 있었다.




10년 전 시아버님 도움으로 집을 지을 때, 아버님은 아이들이 어리니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거실을 아주 크게 만드셨어요.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장소입니다. 사진에 담겼듯이 큰 텐트를 세 개나 칠 수 있다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거실을 넓게 설계해 주신 아버님의 탁월한 안목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시아버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런 추억, 이런 기쁨은 없었을 테니까요.


10년 세월, 흙에서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깨달았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아직도 한 보따리입니다. 앞으로도 소소한 행복이 깃든 재밌는 이야기 많이 들려드리겠습니다.



어젯밤 소파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고1 딸 세아가 그때의 추억에 대해 이런 소중한 말을 건네주네요.



엄마!
우리 거실에서 자주 캠핑했을 때
진짜 재밌었어요.
꼭.. 그 뭐더라?
마을 체험?
공동체 체험??
딱! 그런 느낌이었는데..
진짜 소중한 추억이에요.


https://brunch.co.kr/@hanania7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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