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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Oct 23. 2021

정서발달 끝판왕! ‘모래놀이’

2010년 집을 지어 이사할 때 그 어떤 공간보다 최우선으로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 바로 “모래놀이터”였다. 흙 밟고 살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다. 유치원 교사였던 나는 모래놀이가 아이들 정서발달에 얼마나 좋은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사할 당시 우리 아이들이 6살, 4살, 1살이었으니 모래 놀이하기에 가장 알맞은 나이였다.


아이들은 3세 이후 정서발달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모래, 흙, 물과 같이 자연이 주는 장난감에 흥미가 아주 많다. 아이들은 손가락 사이로 샤르르 흘러내리는 모래의 감촉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형태가 없으니 상상하는 그 무엇이든 표현해볼 수 있어 창의력 발달에 아주 좋다. 피아노처럼 양손을 다 사용하기 때문에 좌뇌 우뇌 발달에 좋고 손과 눈의 협응력이 좋아진다. 대근육은 물론 미세한 소근육까지도 발달시킬 수 있어 신체발달에 큰 도움을 준다. 혼자 몰입해서 놀아도 좋지만 형제자매 또는 친구와 함께 논다면 배려와 양보보 그리고 협동심을 배울 수 있다. 사회성 발달에 이만한 놀이가 또 있을까 싶다.


초중고 교과에 필수 교과목이 지정되어 있듯이 어린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모래놀이”가 필수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값비싼 프뢰벨 은물이나 몬테소리 교재교구 보다 모래놀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중요하다 못해 아이들에겐 절실한 놀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세아 아기 때부터 집안에서 가지고 놀았던 낡은 장난감 싱크대를 모래놀이터로 옮겨주었더니 아이들은 흙이 잔뜩 묻은 그릇들을 싱크 대위에 올려 설거지하며 놀았다. 생각을 확장시켜주는데 놀잇감이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주방 기구 중에 사용하지 않고 잠들어있던 그릇들과 쟁반 숟가락 등등 나 역시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모든 놀잇감을 이용해 반드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 기발함과 융통성 그리고 기가 막힌 독창성에 깜짝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이곳 모래놀이터로 출근했다. 열이 나서 앓아눕지 않는 이상 결석은 없다. 출근하면 자연스레 모래바닥에 주저앉았다. 집 앞마당이니 옷은 편안한 내복 차림이었다. 손발과 옷이 모두 모래투성이 흙투성이가 되어야만 놀이는 끝이 났다. “이제 그만 손 씻고 들어가자”라고 말하면 “벌써요?!” 소리가 한 목소리로 터져 나왔다. 그만큼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놀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느 날 호스에 물을 틀어주었더니 제법 큰 모래웅덩이를 만들었다. 어느새 커다란 개울이 되었다. 아이들은 길을 터서 물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그 위에 나뭇잎 배를 띄우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기어코 물웅덩이에 들어앉아 질퍽질퍽 몸을 다 적셨다. 모래 알갱이가 몸 사이에 끼면 연한 피부가 쓸려서 아플 것도 같은데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젖은 모래와 누런 흙물과 혼연일체 한 몸이 되었다. 모래놀이를 통해 예민함은 털어내고 털털함을 배웠다고 믿는다. 나도 아이들도 웬만한 더러움에는 허허실실 웃게 되었으니 그 또한 ‘괜찮아 괜찮아’ 자연이 토닥여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누나와 형이 유치원에 가고 나면 셋째 경준이는 계절과 상관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모래놀이를 즐겼다.  명의 아이중 흙과 가장 친한 아이가 셋째가 아닐까 싶다. 거의 매일 모래와 놀다 보니  겨울에도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래가 꽁꽁 얼어붙어 놀고 싶어도  수가 없었다. 그때는 어쩔  없이 실내용 인조 모래놀이 세트를 구입해서 거실에서 모래성을 함께 쌓으며 놀았다. 그만큼 아이들에겐 모래놀이가 간절하다.


앞마당 뒷마당으로 신나게 뛰어다니며 노는 녀석들에겐 간식 먹으러 집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조차도 아까웠다. 모래놀이터 옆 작은 식탁으로 간식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간식은 거창하지 않았다. 주로 음료수와 과자 또는 과일이었는데 별것 아닌 간식도 마당에 앉아 먹으면 더 꿀맛이었다. 소소한 일상이었는데 내 기억 속에는 커다란 행복으로 짙게 물들어있다.


쓰러져 있던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모래로 세우려던 아이들. 다가가 사진을 찍으며 조용히 바라보았다. 표정이 무척 진지했다. 마른 모래로 세워보려고 했으나 힘없이 쓰러졌다. “현준아! 양동이 들고 가서 물 좀 떠 와.” 첫째 세아가 둘째에게 주문했다. “으응, 누나. 알았어.” 둘째는 즉시 움직였다. 받아온 물을 부어 흙을 적셔주니 모래가 단단하게 뭉쳐졌다. 드디어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굵은 나뭇가지가 우뚝 세워졌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했다는 기쁨에 아이들의 얼굴은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사온 다음 해에 넷째 태준이가 임신되었다. 2013년 봄 드디어 아장아장 걷게 된 태준이가 모래놀이터에 나타났다. 우리 집 남자아이들 이름은 ‘준’ 자 돌림이다. 우리 집 뒤에 태조산이 있는데 그 건강한 자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해서 이름이 “태준”이가 되었다. ‘현준 경준 태준’ 이로써 ‘쭌 3형제’ 완전체가 된 것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텐데 태준이 역시 모래놀이터에 들어서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니 현준, 경준이 친동생이 꼭 맞았다.


쭌 3형제는 우애가 좋다. 노는 모습을 보면 협동 단결이 무척 잘됐다. 지저분한 모래를 체에 올려 톡톡 치며 살살 걸러내 고운 모래를 따로 모았다. 그 고운 모래를 그릇에 담아 ‘모래밥’을 만들며 놀았다.


넷째는 모래가 발에 들어가지 않도록 고무장화를 신었고 셋째는 날씨가 꽤 쌀쌀했는데도 맨발로 나섰다. 모래놀이터에서 빠지지 않는 놀잇감이 ‘포클레인’이었다.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퍼담아 덤프트럭에 옮기면서

아이들은 참 재밌게도 놀았다. 나중에는 더 큰 상자에 옮겨 담고 물을 넣어 반죽을 해서 틀어 넣었다가 벽돌을 찍어내기도 했다.


모래에게 우리 아이들의 정서발달을 부탁하고 나는 그 사이 따뜻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겼다. 모래놀이터 덕분에 누린 호사이자 여유다. 모래놀이시간에는 잔소리도 필요 없었다. 그저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봐 주기만 하면 되었다. 때때로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진심 어린 감동을 해주고 맛있게 먹어주었다. 박수를 쳐주면서 탄성과 환호를 크게 해 주고 뒷정리의 바운더리만 잘 정해주면 되었다.


“얘들아, 일단 옷에서 모래를 잘 털어낸 뒤에는 1층 화장실로 바로 들어가서 옷 벗고 씻자.”


아이들이 흙투성이가 된 옷을 벗어 욕실 문밖에 놓아두면 세탁기에 잘 넣어 돌린 뒤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부엌에서 엄마가 탁탁탁 양파를 썰고 또각또각 감자를 자를 때 씻고 나온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면서 여유를 누렸다. 우리 가족은 ‘모래놀이터’에서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느림의 미학’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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