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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Oct 24. 2021

창의력 끝판왕! ‘소꿉놀이’

7살 세아가 만든 “꽃밥”

​어느 날 마당에서 다급한 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꽃밥 드세요!”


세아의 감수성을 데코레이션 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 "꽃밥"이었다. 뭉클! 뜨거운 감동이 목구멍에서 올라왔다. 순간 온몸으로 환희가 퍼지는 전율을 느꼈다.


꽃밥을 자세히 살펴보니 초록잎과 보랏빛이 살짝 감도는 흰색 패랭이꽃이 올려져 있었다. 빨간 동백꽃과 자줏빛깔 철쭉, 앙증맞은 솔방울 두 개와 벨벳 느낌의 노랑 진보랏빛 패랭이 꽃을 곁들여 조화를 이뤘다. 마지막 포인트는 보랏빛 야생화였다. 위쪽으로 살짝 솟은 두 개의 야생화가 꽃밥의 퀄리티를 높여 주었다. 화룡점정은 네 개의 얇고 길쭉한 초록 잎이었다. 아무렇게나 꽂지 않고 정확히 대각선으로 착착 착착 꽂아 완성했다.


피카소도 울고 갈 기가 막힌 센스와 감각이 아닐 수 없다. 7살 아이의 솜씨라고는 믿기 힘든 멋진 공예품과도 같은 ‘예술 작품’이었다. 먹으면 입안에서 꽃향기가 나고 마음도 꽃처럼 고와지는 마법의 꽃밥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눈으로 맛있게 먹었다.


“세아야! 이 꽃밥 아까워서 도저히 못 먹겠어. 어쩜 이렇게 예쁘게 만들었어?! 진짜 이건 작품이야! 엄마도 이렇게는 못 만들 거야. 세아야 엄마에게 이렇게 예쁜 꽃밥 만들어 줘서 정말 고마워! 이 선물은 사진으로 오래오래 간직할게! 눈으로 맛있게 잘 먹었어.”


그 어떤 수채 물감도 흉내 낼 수 없는 사계절의 신비롭고 오묘한 자연의 빛깔을 보고 자란 덕분인지 세아는 미적 감각이 아주 뛰어나다. 그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로 잘 자라주었다. 첫째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다.


5살 현준이가 만든 “꽃대포”

“엄마! 저도 만들었어요.”


세아 꽃밥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둘째 현준이가 내 옷을 잡아끌며 말했다.


“우와! 현준아 이게 뭐야?”


“엄마! ‘꽃 대포’에요! 여기 끝에서 꽃 대포가 팡팡 나가는 거예요!”


플라스틱 홈런볼 과자 상자를 이용해 꽃 대포라는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어낸 현준이. 이 또한 너무 놀라운 작품이라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가운데 흩뿌려놓은 빨간색 장미꽃잎과 보라색 알갱이(야생화) 장식은 아마도 세아가 도와주지 않았나 싶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너무 훌륭한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현준아! 너무 멋지다! 홈런볼 상자에 모래를 넣고 찍어낼 생각을 어떻게 한 거야? 진짜 스위치를 누르면 얇은 초록잎 대포 구멍으로 빨간 꽃잎과 보라색 작은 잎이 팡팡 폭죽처럼 예쁘게 터지며 멀리 날아갈 것 같아. 진짜 잘 만들었어 현준아! 대단하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주었다. 현준이는 누나 작품을 모방하면서 누나 못지않은 감각과 감수성을 지닌 남자로 멋지게 잘 자라고 있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이다.


셋째 경준이도 작은 손도 무언가를 만드느라 무척 분주했다. 플라스틱 양동이 속에 모래와 잔가지들을 가득 담아 휘휘 저어 다른 그릇에 조금씩 옮겨 담았다. 누나 형아들 못지않게 소꿉놀이에 열심이었다.


잠시 뒤 파란색 밥그릇을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엄마! 이거 드세요.”


“와! 이 밥은 무슨 밥이야? 경준아?”


한참을 생각하던 경준이는 엄마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커피 밥이요.”


“오호! 엄마가 커피 제일 좋아하는 거 알고 ‘커피 밥’을 만들었구나?! 와! 진짜 밥에서 커피 향기가 나는 것 같아. 엄마 진짜 맛있게 잘 먹을게. 커피 밥은 처음 먹어봐 경준아! 그런데 진짜 완전 꿀맛이야! 다음에 엄마 또 만들어줘, 자꾸 생각날 것 같아. 경준아 고마워!”


커피 밥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아이들의 기발함에 깜짝깜짝 놀란다. 누나와 형아라는 멋진 롤모델이자 스승을 둔 셋째 경준이는 네 명의 아이중 단연 돋보이는 감각과 감수성 그리고 섬세함을 지녔다. 자연을 가장 많이 닮은 멋진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이다.


태준이는 누나 형아들이 만들어 놓은 꽃밥을 지키며 그 위에 모래를 솔솔 뿌리면서 놀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태준이 머릿속이 가장 복잡할지도 모른다. 누나 형아들이 어떻게 만드는지 그 과정을 예의 주시하며 배우는 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멋진 누나 형아들 덕분에 알아서 척척 잘 자라주고 있는 넷째 태준이는 현재 초등학교 3학년이다.


그 후로도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이들이 차려주는 다양한 ‘꽃밥”을 맛보며 호강했다. 옛말에 아들 셋을 키우다 보면 호랑이가 된다는데 자연이라는 훌륭한 보모를 둔 덕분에 나는 꽃밥을 받아먹는 우아한 엄마일 수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대신 합께 소꿉놀이를 즐겨주는 다정한 엄마의 품위를 오래오래 지킬 수 있었다.


“꽃밥”만 먹으면 목이 막힐 수 있으니 함께 먹으라고 아이들이 차려준 “꽃 국”이다. 플라스틱 양동이에 물을 담고 다양한 빛깔의 꽃잎을 동동 띄웠다. 그 어느 유명한 약수보다 내 눈엔 최고의 건강수로 보였다. 꿀꺽꿀꺽 다 마시면 왠지 지병이 말끔히 사라질 것만 같은 신비로운 물처럼 느껴졌다. 옛날 아낙들은 선비에게 물을 대접할 때 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웠다던데, 나는 꽃잎이니 그것도 수십 개의 오색 꽃잎이니 이보다 더 귀한 대접이 또 있을까. 꽃 국을 눈으로 먹을 때마다 최고의 효도를 받는 기분이었다.


물이 담긴 하얀색 플라스틱 홈런볼 상자에 여러 빛깔의 꽃잎을 아낌없이 넣어서 만든 꽃 국. 블랙 까펫 같은 검정 비닐 위에 올려놓았더니 유명화가의 회화 작품처럼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 그림 옆에 나란히 걸려도 손색없을 것 같은 값비싼 미술 작품 같았다.


꽃밥,  ,  대포, 커피 

아이들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봄에는 민트빛 자연이 그릇에 담겼고 여름에는 푸르름 가득한 자연이 소꿉놀이에 펼쳐졌다. 가을에는 수채 물감을 쏟아부은 듯한 알록달록 총천연색 단풍잎이 등장했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와 바스락 거리는 마른 잎이 소꿉놀이에 쓰였다. 파란 하늘 아래  명의 아이들은 변해가는 자연과 발맞춰   없이 움직였다. 아이들은 ‘소꿉놀이 통해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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