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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Jul 07. 2021

셋째 넷째 모두 ‘통합 어린이집’에 3년 보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

셋째가 5살이 되고(현재 5학년), 넷째가 3살이 되었을 때(현재 3학년) 드디어 길고 길었던 출산과 육아에 마침표를 찍었다. 일을 그만둔 지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복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복직을 앞두고, 셋째와 넷째를 어린이집에 보낼 준비를 하면서 내가 가장 크게 고려했던 부분은 통학거리였다. 아무리 교육프로그램이 좋고, 시설이 좋아도 장시간 차를 태우는 곳으로 아이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


​알아보니 우리 집 10분 거리에 “통합 어린이집”이 있었다. 비장애아동 40% + 장애아동 60% 로 구성으로 된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는 어린이집이었다. ​일단 방문해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주일에 두 번 인근 산으로 가서 “숲 체험”을 한단다. 짬이 날 때마다 동네를 돌면서 “산책”을 하고, 아이들이 손수 가꾼 텃밭의 재료들로 “건강한 급식”을 한단다. 인지교육은 거의 없고 “자연공부”를 한다는 말에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전원주택으로 이사할 때 추구했던 나의 교육철학과 너무 닮아있어 진심으로 놀랐다. 두 번 세 번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평소 인지교육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 시기에 꼭 가르쳐야 할 더 소중한 교육이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통합 어린이집의 교육철학이 마음에 와닿았다. 프로그램 다음으로 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의 소명의식이 큰 울림을 주었다. 신랑과 상의한 후 바로 입학 절차를 밟았다.


​아이들을 그곳에 보내면서 우리 부부는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몸이 조금 불편하거나 행동이 나와 다른 친구들에 대해 편견 없이 평범한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레 아이들 몸에 스며들었으면 하는 거였다.


어린이집에 다닌 지 3-4개월이 지났을 무렵, 다섯 살 경준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경준아, 너희 반에 혹시 아픈 친구 있어?!”


​“응, 있어 엄마.”


​“아픈 친구가 몇 명 있는데?”


​“응.... 1명!”


​“............”


잠시 놀라서 머뭇거렸다.


​“1명밖에 없어? 누군데?”


​“응.. 성훈이. 휠체어 타고 다니잖아, 성훈이만 아파..”


​“성훈이 말고는 아픈 친구는 한 명도 없는 거야?”


​“응, 엄마. 성훈이 말고는 없어!”


​한치의 고민도 없이 단호한 어조로 대답하는 경준이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멍 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다섯 살 경준이. 그 작은 아이의 눈에는 표면 적으로 몸이 아픈 몸이 불편한 친구만 아픈 거였다. 마음이 힘들거나, 나와 조금 다른 친구들은 그저 조금 다를 뿐, 그건 아픈 게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편견일 뿐이었다. (질문 자체가 편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경준이 태준이를 이곳에 보내면서 우리 부부가 소망했던 부분. 편견 없이 나와 조금 다른 모든 친구들을 그냥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 그 소망의 기도가 응답된 순간이었다.


​경준이 반에는 실제로 자폐와 ADHD를 앓고 있는 친구들이 여러 명 있었다. 비장애 아동의 경우, 조부모님과 주위의 반대로 입학을 취소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폐와 ADHD를 앓는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맞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왜 우리는 그 반대를 항상 간과하는 걸까?!


​경준이 3년, 태준이 3년 통합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갈등 상황 한번 없이 축복된 시간을 누렸다.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귀한 것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아이들이 장애, 비장애를 떠나 발달, 발달지연을 넘어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조금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우러져 땀 흘리며 몸도 마음도 모두 맑음으로 건강하게 자랐다고 믿는다. 우리 부부는 통합 어린이집을 선택한 것에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어린이집 졸업식날 “졸업식 송사”를 부탁받았다. 경준이 태준이 엄마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떠맡았다. 송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이걸 끝까지 다 읽을 수나 있으려나 걱정했는데, 역시나 두줄도 채 읽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 말았다. 원장님 원감님 선생님들도, 참석한 학부모님들도, 우리 경준이 태준이도 모두 함께 울고 있었다. ​


처음 입학한 순간부터 3번의 벚꽃잎이 날리고, 3번의 매미가 울고, 3번의 오색 낙엽이 지고, 3번의 함박눈을 맞았던 그 모든 날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고... 그 모든 날들이 찬란한 감사였다고... 그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도깨비의 명대사를 인용해, 어렵게 어렵게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송사를 겨우겨우 마쳤다.




언젠가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잊지 말아야겠다.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
장애인과 예비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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