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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Jun 18. 2021

유량동 전원주택, 우리 집 동물원에 놀러 오세요.


전원주택의 아침은 찬연하다. 되지빠귀 새의 조롱조롱 노랫소리가 알람이 되어주고, 봄바람이 솔솔 귀를 간질여 잠 부스러기를 털어준다. 소박하지만 맑게 빛나는 아침 일상이다.


잠에서 깬 세 살배기 경준이는 모유 수유로 겨우 재운 동생을 바라보더니, 내 옷을 끌어당긴다. 아직 말이 서툰 경준이는 혹시 엄마가 못 알아들을까 봐  입을 동그랗게 모은 채, 세 단어를 반복한다.

엄마, 꼬꼬, 토토.”


‘엄마, 닭과 토끼 보러 얼른 나가요’ 이 여섯 단어가 세 단어로 압축되었지만, 옷을 끌어당기는 힘만 봐도 얼마나 마음이 급한지 알 수 있다.



숨을 헐떡이며 뒷마당으로 달려온 경준이를 반갑게 맞아준 건 병아리, 암탉, 수탉, 오골계, 오리, 토끼 친구들이다. 경준이는 넋을 놓고 동물원 친구들을 바라보고, 나는 경준이의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바라본다. 이 작은 아이의 마음에는 어떤 빛깔의 감성들이 쌓이고 있을까?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시아버님은 이사 후 제일 먼저 연못을 만들고 그다음에 닭장을 만드셨다. 손주들을 위해 직접 만드신 작은 동물원이다.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며느리의 몸은 한도 초과임을 잘 아시기에 연못, 텃밭, 닭장 관리는 모두 시아버님이 도맡아 하셨다.


매일 5시 30분 우리가 곤히 잠든 새벽 미명에 시아버님은 소리 없이 다녀가셨다. 첫째와 둘째를 유치원에 보내려고 현관문을 열면 시아버님의 따뜻한 사랑이 배달되어 있었다. 아직 암탉의 온기가 남아있는 달걀 여섯 알. 조심스레 달걀을 품에 안으니 형언할 수 없는 시아버님의 사랑이 밀려온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한 바퀴 두르고 달걀을 탁 깨면, 탱글탱글 모양이 잡히며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갓 지은 하얀 쌀밥 위에  뜨끈한 달걀 프라이를 올리고 노른자를 깨뜨려 쓱쓱 비벼 먹으면 황홀한 탄성이 절로 난다. 이건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신비로운 맛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건강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 같았다.



시아버님이 맨 처음 수탉과 암탉을 사 오셨을 때 네 명의 손주들이 여덟 개의 눈동자를 초롱초롱 반짝였다. 그 눈망울을 보고 기쁨이 크셨던지 며칠 뒤 독특한 검정 옷을 입은 오골계 한 마리를 사 오셨다. 우와! 감탄하며 오골계의 특징을 살피는 손주들이 또 기특하셨는지 그다음에는 오리 세 마리를 안고 오셨다. 닭발과는 다르게 오리 발가락에는 3개의 물갈퀴가 있었다. 아하, 유레카! 오리발이 무엇을 보고 만든 것인지 눈으로 보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리를 관찰해보니 이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동그랗게 무리 지어 햇살 샤워를 즐겼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하얀 토끼 두 마리와 회색 토끼 한 마리를 자루에 담아 오셨다. 닭의 집인 줄로만 알았던 작은 집에 세입자들이 점점 늘어갔다. 급기야 암탉이 알을 부화해 병아리 다섯 마리가 태어났으니, 그야말로 닭장은 포화 상태였다. “삐약 삐약, 꼬끼오, 꼬꼬, 꽥꽥.” 닭장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의 합창소리는 비명일까? 노래일까? 아수라장 같은 닭장 동물원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났다.


‘병아리, 암탉, 수탉, 오골계, 오리, 토끼’ 형제지만 얼굴도 성격도 제각각인 나의 아이들처럼, 이 녀석들도 마치 처음부터 같은 종족이었다는 듯이 꽤나 조화롭게 작은 닭장에서 공생해 주었다. 고맙고 기특했다.


토끼는 털이 보드랍고 귀여워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번식력이 지나치게 좋은 동물이라 걱정이 앞섰다. 임신기간이 한 달로 매우 짧은 토끼는 마음만 먹으면 1년에 40마리의 새끼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 넷을 낳은 나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의 경이로운 능력치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경준이와 닭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경준이가 움찔 놀라 뒤로 물러나길래 다가가 보니, 회색 토끼의 머리가 빼꼼 망을 뚫고 나오는 게 아닌가. 안돼! 내 외마디 비명과 동시에 토끼가 탈출했다. 껑충 뛰어가더니 대나무 아래 겁먹은 듯 얌전히 앉았다. 잡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니 이내 휙 달아났다. 벤 존슨과 칼 루이스도 울고 갈 실력의 속도였다. 내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신랑과 아이들이 마치 꼬리잡기하듯 토끼를 향해 줄지어 달리기 시작했다.


앞마당을 지나 뒷마당으로, 이번에는 텃밭으로 내달리다가 연못가를 쌩하니 지나치고, 대나무 아래로 슬그머니 숨어들더니 다시 뒷마당으로 줄행랑을 치는, 돌림 노래 같은 무한 반복 토끼몰이가 시작되었다.


셋째 경준이가 제일 먼저 기권했다. 잠시 뒤 첫째 세아도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바퀴를 더 달리던 둘째 현준이도 점점 속도가 떨어지더니 이내 포기했다. 나 역시 기진 맥진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배를 잡고 드러누워버렸다. 신랑은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쫓았다. 세 바퀴쯤 더 달렸을까? 드디어 토끼가 하얀 손수건을 흔들었다. 만세! 우리의 승리였다.


두 시간 가까이 토끼와 사투를 벌여 포획에 성공했던 그날의 일화는 지금도 가끔씩 회상하며 온 가족이 깔깔 웃는다. 토끼가 얼마나 빠른지, 토끼를 잡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다들 토끼 박사라도 된 듯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세 살배기 경준이가 현관 밖으로 혼자 나서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전원주택, 아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환경 속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며 자랐다. 날마다 마주하는 자연 속에서 오감을 활짝 열었다. 그 시절 꼬꼬와 토토를 외쳤던 아기 경준이가 지금 열두 살이다. 엄마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아는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로 잘 자라주었다.


경준이는 지금도 말한다. 에버랜드 동물원 보다 우리 집 동물원이 더 훌륭하다고!


병아리, 닭, 오골계, 오리, 토끼가 함께 사는 우리 집 동물원은 연중무휴다. 누구든 대환영이다.


추억은 1년 365일 동안 매일매일 쌓여간다. 줄지 않는 곳간처럼 그렇게 차곡차곡 우리의 마음속에 채워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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