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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Oct 21. 2021

고사리 손으로 가꾼 '텃밭'

2010년 집을 지었다. 집을 짓기 전부터 앞마당에 꼭 만들고 싶은 두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모래놀이터였고 다른 하나가 “텃밭”이었다. 잔디를 깔기 전 텃밭과 모래놀이터 공간을 우선 고려했다. 우리의 바람대로 앞마당에 텃밭과 모래놀이터가 나란히 만들어졌다.


시아버님 농기계까지 빌려다가 제대로 도랑을 일구고 여러 종류의 농작물을 심었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신랑을 보니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농사꾼 포스가 좔좔 흐른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몰랐다. 앞으로 펼쳐질 잡초 잡풀과의 사투를. 그 전쟁을 치르기 위해 주말을 반납해야 하고 마당에 나가 피 같은 땀을 비 오듯 쏟아내야만 집에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신랑은 아침 8시에 마당으로 나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3년 폭삭 늙은 모습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 “왜 시원한 집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오지를 못하냐”며 운수 좋은 날 마지막 대사를 패러디하면서 한바탕 웃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텃밭과 잔디밭을 가꾸느라 진땀을 흘려도 네 아이들은 텃밭에서 마냥 행복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 힘들어도 포기할 수가 있나. 텃밭은 우리의 수고해 비해 훨씬 많은 채소를 수확하게 해 주었고 우리가 몰랐던 자연의 비밀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그해 가을, 솟아난 애기 시금치를 솎아주는 셋째 경준이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시금치는 겨우내 차가운 눈이 온몸을 뒤덮어도 죽기는커녕, 동상조차 걸리지 않고 푸릇푸릇 건강하게 자랐다. 쏙쏙 뽑아다가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고 그 위에 소금, 참기름, 깨소금을 솔솔 뿌려 무쳐먹으니 달큰하고 아삭한 것이 이제까지 먹어본 시금치 중에 단연 최고였다. 겨울 시금치가 이렇게 달콤하고 맛있다는 걸 텃밭이 없었다면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시금치는 역시 겨울 시금치가 최고라는 건 텃밭이 알려준 귀한 가르침이다.


다음 해 봄에는 잡풀 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고 검은 비닐 멀칭을 만들어서 농작물을 심었다. 잡풀 관리가 훨씬 수월해졌다. 방울토마토는 열매 무게 때문에 옆으로 꺾이니 버팀목을 미리 단단히 세워주었다. 오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장대를 높이 세우고 가로 세로 끈을 단단히 묶어주었다. 말 그대로 오이 놀이터다. 오이는 물이 부족하면 써진다는 것도 알게 되어 물을 듬뿍듬뿍 주었다. 텃밭을 가꾸는 스킬이 점점 늘어갔다.


어느 날 아침 오이 장대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마치 사람 손이 줄을 꼭 잡고 있는 듯한 오이 줄기 때문이다. “어머, 어머, 어머..” 감탄과 탄성의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분명 어제만 해도 없던 줄기였는데 밤새 잠도 안 자고 정신없이 놀았는지 수화기 끝에 돌돌 말린 줄처럼 꼬불거리며 올라간 줄기가 여러 개였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감동했다. 길쭉 통통한 오이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하더니 바닥에 깔릴 정도로 계속 쏟아졌다. 가족 친지 친구 지인들과 부지런히 나누어 먹었다.


방울토마토는 마치 청포도 송이처럼 연두 초록 빛깔로 조롱조롱 매달리며 자랐다. 뒤쪽 꼭지에는 초록 별이 붙어있었다. 햇살 샤워를 받으며 점점 누르스름 발그레하게 익었다. 누가 일부러 참기름을  바른 듯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잘 익은 방울토마토 한알을 똑 따서 옷 춤에 한번 쓱 닦고 입안으로 쏙 넣는다. 톡! 하고 터지며 입안 가득 퍼지는 새콤달콤한 싱그러운 맛. 잊을 수 없는 맛이다. 흐르는 과즙을 씁씁 거리며 목구멍으로 꿀꺽 넘기고 나면 도저히 멈출 수 없어 한참을 더 따먹었다. 아이들은 바구니 하나 가득 수확의 기쁨을 직접 체험했다. 빨간 알을 똑똑 따는 재미도 좋았지만 누가 누가 많이 땄는지 비교하며 숫자를 세어보는 즐거움이 컸다. 방울토마토가 풍년일 때는 먹어도 먹어도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익어갔다. 새들도 날아와 맛있게 콕콕 쪼아 먹었다.


둘째가 유치원에서 심어온 강낭콩을 텃밭에 옮겨 심었다. 누나 형아가 유치원에 가고 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셋째 경준이는 강낭콩을 돌봤다. 듬뿍 물을 주는 고사리손은 언제나 셋째였다. 강낭콩도 그 정성에 감동했는지 튼실한 강낭 콩알을 선물로 주었다. 머리를 맞대고 콩깍지를 벗겨 수백 개의 콩을 얻었다. 그날 저녁으로 강낭콩 밥을 했더니 콩 안 먹던 녀석들이 마치 초콜릿을 집어 먹듯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밥 속에서 쏙쏙 빼먹었다. 아이들 손으로 애지중지 키운 콩이니 얼마나 꿀맛이었을까. 텃밭 덕분에 뜻밖에 편식을 치료한 셈이다.


노지 딸기를 처음 심었다. 피어난 딸기의 꽃을 보니 계란꽃을 꼭 닮았다. 꽃이 지고 나면 깨소금이 콕콕 박힌 빨간 딸기가 열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나와 아이들은 그저 신기했다. 맛과 크기는 마트의 딸기와 비교해 훨씬 떨어졌지만 우리가 직접 키워서 그런지 달콤하게 느껴졌다. 모래놀이와 소꿉놀이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자연스레 아이들은 노지딸기를 똑똑 따 먹으며 수분을 보충했다. 이건 누려본 사람만 아는 기쁨이다.


어쩌다 참외를 조금 심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쭉쭉 뻗어나가는 참외 줄기를 보고 처음엔 신통하고 대견했다. 앞마당과 뒷마당 텃밭의 대부분을 참외가 점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참외의 번식력은 가히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나중에는 빛의 속도로 자라나는 참외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급기야는 무섭기까지 했다. 나에게 ”참외 = 무서운 과일”이란 공식이 생겼을 정도다. 맛은 그냥 물이 많고 시원하다 싶은 딱 그 정도의 맛이었다. 참외가 텃밭을 기어 나와 푸른 잔디밭을 뒤덮기 시작했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름이 끼쳤다. 열심히 가꾼 잔디 전체를 참외가 다 삼켜 버릴 태세였다. 가시넝쿨을 걷어내는 심정으로 참외 줄기를 몽땅 잘라냈다. 휴, 참외에게 호되게 당한 뒤 두 번 다시는 참외를 심지 않았다.


뒷마당에 찰옥수수를 심었다. 제대로 영근 찰옥수수 대여섯 개를 따서 겉껍질과 수염을 벗겨내 잠길만큼 물을 붓고 팔팔 끓여 푹 쪄낸다. 현장에서 일사천리로 쪄먹는 찰옥수수의 맛은 천상의 맛이다. 우리 가족은 옥수수 킬러다. 여름내 옥수수로 파티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옥수수를 쪄먹는다. 수확한 찰옥수수 중 너무 딱딱하게 영근 옥수수는 알을 따닥따닥 따서 진공팩에 가득 담아 친구들에게 한 봉지씩 선물했다. 우리 냉동실에도 두 세 봉지 얼려두었다가 밥할 때마다 넣어먹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입안에서 고소하게 톡톡 터졌다. 이렇게 찰옥수수밥을 해 먹으면 쫄깃한 옥수수를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다.


그 밖에도 고추는 기본으로 키웠고 가지도 심어서 열심히 먹었다. 호박도 풍년이요, 무서운 참외는 뭐 끊임없이 태어났다. 호박은 동그랗게 썰어 부쳐도 먹고 채 썰어 전을 해 먹고 또각또각 썰어 된장찌개에 넣어서 맛있게 먹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던날, 친정엄마와 텃밭에 파를 심었다. 두 살 태준이, 네 살 경준이, 일곱 살 현준이, 아홉 살 세아가 할머니를 도왔다. 미리 준비한 도랑에 파를 쪼르륵 눕혀놓고 물을 듬뿍 준다음 파의 뿌리가 땅에 잘 심기도록 흙을 모아 소복이 덮어가며 잘 세워주었다. 아이들은 파 심는 법을 눈으로 보고 직접 해보면서 몸으로 체득했다. 손에 맞지 않는 아빠 목장갑을 끼고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하는 녀석들. 물조리개로 진지하게 물을 주고 맨손으로 흙을 만지고 놀면서 텃밭일을 놀이처럼 재밌게 즐겼다.


셋째 경준이 네 살 때 모습이다. 두 손으로 호스를 잡고 채소에 물을 주는 모습이 일품이다. 두 손으로 꼭 잡은 호미질은 또 얼마나 야무지던지.. 장인도 울고 갈 솜씨였다. 우리 집 텃밭 가꾸기의 일등공신을 뽑으라면 단연 셋째 경준이다. 앙 다문 입술로 진지하고 비장하게 텃밭을 가꾸던 경준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셋째 경준이는 네 아이중 가장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지녔다. 날마다 자연을 친구 삼아 함께 놀며 그 속에서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누나 형아들이 열심히 텃밭을 가꾸는 동안 두 살 막내 태준이는 나 홀로 텃밭 고랑에 앉아 돌을 골라내거나 흙을 관찰하거나 때때로 흙을 집어 먹었다. 여러 번 내 예리한 레이더망에 딱 걸려, 맛있게 먹으려던 흙을 토해내야만 했던 전적이 있다. 혹시 모른다. 흙과 함께 작은 곤충이라도 함께 먹었을지.. 그때 섭취한 자연 영양제 덕분인지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막내 태준이는 넷 중에 가장 덩치가 좋다. 지인들이 막둥이를 보면서 늘 그런다. 형아들과는 다르게 떡대가 좋다고.


우리 동네에서 텃밭 가꾸기 일등 집이란 말이 있었을 정도로 우리 집 채소들은 매년 풍년이었다. “아니, 세아네는 채소들이 반짝반짝하네?!” 보시는 어르신들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척 가물던 해에도 감사하게 우리 집 텃밭은 “물 댄 동산”같았다.


저녁 준비를  때마다 텃밭에서 야채를 준비해 오는  아이들 몫이었다. 고기를 먹는 날이면 세발자전거 뒤에 상추를 따서 날랐다. 된장찌개를 끓이다가 “엄마  필요한데 뽑아  사람?” 물으면 서로 나겠다고 “저요, 저요합창을 한다. “뽑자마자 파뿌리에 달라붙은 흙은 텃밭에서 탁탁 털고 가져와?!” 나는 숙제를 하나 줘서 마당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뽑아온 파를 총총 썰어 된장찌개에 넣었다. 마당에서 따온 오이를 썰어 고추장에 찍어먹고 초록 고추를 쌈장에 찍어먹었다. 무서운 참외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앵두를 후식으로 곁들였다. 나의 상차림은 언제나 텃밭에서 공수해온 채소들의 화려한 변신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본인들이 직접 가꾼 채소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야채의 호불호는 조금씩 갈렸지만 편식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정성껏 가꾸고 키운 텃밭이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을 지극 정성으로 가꿔주고 키워준 셈이다.


7년간 아이들과 텃밭에서 보물을 발견했다. 자연이 주는 소중한 선물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고 맛있게 먹었다.  흘린 만큼, 아니 그 이상을 돌려주는 고마운 텃밭, 그곳에서 우리는 의 이치를 배웠다. 우리 아이들이 흙을 밟고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을 꼭 닮은 건강한 미소를 지을 때 우리 부부는 가슴이 박차 올랐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곳 전원주택으로의 이사, 역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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