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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름 Jun 12. 2021

삶의 곡절 없이 살아오셨나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싸움을 잘하는사람이 되고 싶다.

"삶의 곡절이 없이 무난히 잘 살아오셨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 문장이 모여 문단이 되고, 문장들이 가진 각각의 의도가 쌓여 의미가 되고, 글이 되고.  그 안에는 머리나 가슴을 때리는 펀치 라인이 있기 마련이다. 음. 어떤 때는 진짜로 가격을 당하기도 하는 것 같고..


 학점은행제로 듣던 수업이 기말고사를 치른 어제부로 완전히 끝났다.  전에 과제도 끝냈다. 평가도 이미 나온 상태고.  과목이 생각보다 점수가 낮았다. 하나는 교수의 평가가 납득이 갔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컴플레인에 약한 사람이다.  못하기도 하고, 별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불만을 제기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면대면은  그렇고, 그나마 온라인이나 전화에 기대서는 가뭄에  나듯, 무척이나 억울할  마음을  먹어야 다소곳이 실행을 하는 편인데, 비겁하게 보자면 그게 맞고, 살을 붙이자면 전화는 걸기 전에 내용을 정리할  있고, 글로 쓰면 정제가 되기 때문에 간접적 상황에서의 행동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다.      


 어쨌든, 내가 낸 과제를 교묘한 요행쯤으로, 내 이의제기를 유아적 핑계쯤으로 여기는 인상을 숨김없이 풍기는 교수의 답변을 읽으면서.. 뭐랄까, 뚜껑이 날아갔다고나 할까. 교수의 답변에서 내게 남은 문장은 ‘삶의 곡절 없이 무난히 잘 살아오셨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였다. 참으로 우아한 빈정거림이었다. 앞뒤로 차근차근 쌓은 비아냥이 저 문장으로 말미암아 내 머리통을 제대로 후려쳤다. 내 이의제기에서 어떤 문장이 교수의 어떤 부분에 꽂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무례한 문장들을 새겨 넣은 걸 보면 약이 좀 올랐나 싶긴 하다. 물론 나 또한 약이 아주 많이 올랐고.     


 뚜껑이 날아가면서 점수에 대한 미련도 함께 날아갔다. 내 전투력은 교수를 향해 집중됐다. 핵을 날리고 싶었다. 내 문장이 논리적 각도로 날아가 교수의 가슴팍에서 꽝꽝 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 넣은 모든 문장들이 교수에게 비껴감 없이 상흔을 남겼으면 좋겠다고. 안타깝게도 다시 날아온 답변을 보고 나니, 장황설을 늘어놓은 내 그 수많은 문장들은 샤프심 정도나 됐을까 싶었다. ‘제 입장은 일전에 평가글에서 담은 그대로입니다.’ 구절에서 자폭의 참담함을 느꼈다.     


 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학생의 입장에서 교수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오해하지 말라고 열심히 했다고, 이러 이런 점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냐는 말을 하려고 한 것이었다. 간단하고 성의 없는 평가를 보며 내 시간과 수고, 진심 같은 것들이 모조리 평가절하 당한 기분이었다. 납득이 안 돼서 억울했고, 속이 많이 상했다. 점수도 점수지만, 누군가가 얼굴도 모르는 나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저어기 저변에는 그런 마음도 조금 있었다. 온라인 수업인데, 다들 알 만한 사람들끼리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고, 이 정도 했으면 된 거지 너무 빡빡한 거 아니냐고, 얼마나 받는지는 몰라도 나 같은 수강생 덕분에 부수입 챙기는 거 아니냐고. 그런 천한 갑의 마음이. 애초 이 마음이 없었으면 이의제기 글을 쓸 생각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한번 간 성적은 돌아올 수 없으므로 이의제기를 하기는 했겠지만, 더 나은 표현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악의 없는 의도로 쓰인 글을 보내, 적어도 교수가 내 과제를 폄하했던 것을 조금은 미안하게 느끼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글이, 말이 가진 함유의 치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감추는 척한 악의와 감췄다고 착각한 저 뒤의 의도가 결국 눈 가리고 아웅 만도 못하게 되어 버린 걸 보면서. 나는 꿩이고, 교수는 포수다........ 머리를 쳐 박고 있으면 산 채로 잡을 일이지, 총까지 쏘다니. 어리석음을 깨달은 건 깨달은 건데 원망까지 안 할 만큼 맘이 넓지는 않음도 느낀다.      


 말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논리 쌈닭이 되고 싶다는 건 아니고. 논리적, 합리적 설득력으로 완전 무장된 사람이 돼서 꼭 필요한 때, 꼭 필요한 말을, 잘하고 싶은 것이다. 주눅 들지 않고 맞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려면, 정말 맞는 말을 해야 할 테니까. 그러려면 우선은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겠지. 마음이 더 넓고 깊고 그래서 사고와 말의 깊이도 더 넓고 깊은.  


 참내, 그러나 저러나 아직도 분한 마음은 분한 마음대로 있는데, 평생에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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