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비겁함

by 한아름

솔직해 달라고 말했다. 솔직하지 않은 건 기만이니까. 시간이 그리 오래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건 내 생각이므로, 당신 마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본 후에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근 한 달간의 ‘연애..’라는 표현을 쓰기가 무색한 그 끝에서 가볍고 얇고, 하여 팽팽하지도 못한 끈 하나를 집게손가락에 걸쳐놓고 했던 말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의문하고 이해해 보려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한 달을 보냈다. 글쎄, 이런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데이터가 없었다. 한 달 만에 끝낸 것이 다행이었다. 이럴 때는 나이를 먹는 게 도움이 되었다. 이십 대 때였다면 오래 깊게 헤맸겠지.


그의 태도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끝까지 수동적이고, 미성숙했다. 내 눈에도 보이는 자신의 마음이 그 본인에게 보이지 않을 리 없다. 굳이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일 뿐.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줬던 건 그에 대한 나의 배려이자, 그에게 바란 나에 대한 배려였다. 그를 이겨먹을 수 있는 꺼리는 많았다. 경솔, 미성숙, 비겁 등을 가슴팍에 던져 못난 사람을 만들 수 있었다. 다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 달은 그런 시간이었다. 연인을 잃은 슬픔은 없으나 사람에게 받은 배신감은 남는 시간. 하여 연인의 변절에 대한 원망보다 사람의 됨됨이를 탓하게 하는 시간. 그러나 그 탓을 입 밖으로 뱉어 굳이 상처를 주기에는 과한.. 그런 관계의 시간. 하여 그에게 공을 넘겼다. 그럴싸한 말 말고, 솔직한 마음으로 사과하길 바랐다.


일주일이 다 돼 갈 무렵에도 만나자는 말이 없던 그를 불러낸 건 다시 나였다. 그는 장황하게 돌고 돌다 ‘번아웃’을 들먹였다. 차라리 오랜만의 연애라 자신의 감정을 착각했던 것이라고 말했다면, 아니, 썸 탈 때는 설렜는데 사귀고 보니 별로였다고 말했다면 우리는 친구가 됐을지도 모른다. 뒤에 붙은 그의 사과는 진심이었을지언정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영영 연애를 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싶다. 비혼은 아닌데. 갔다 오더라도 한 번은 가보고 싶은데. 연애든 결혼이든 영영 멀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구체적일수록 한숨이 는다. 해가 바뀌었으니 나이도 늘고 그러자 또 한숨이 늘고..


그리 상처받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더 상처였나 보다 싶다. 자꾸 곱씹는 걸 보니. 그의 후처리가 결국 날 열받게 했던 건가 싶기도 하고. 우리는 직장에서 매일 만나고 있다. 이미 꽤 최악인데,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게 피하느라 껄끄러운 상황이 영 자신이 없어서 인사 정도는 하면서 지내자고 쿨하게 합의했지만, 번아웃 치고는 상당히 잘 지내는 그를 볼 때마다 도를 닦는 마음을…


어쨌든 또 이렇게 브런치에 시끄러운 속을 덜어내고 있다. 후회를 안 하려면 진정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오늘도 반복한다. 그리고 결국 하고 후회하자라고 갈음하며 무엇이든 또 한다. 산다는 건 후회할까 의심하며 무언가를 하거나, 후회하겠지 확신하며 무언가를 하는 삽질의 연속이 아닐까. 2025년에도 몇십 삽을 펐겠지. 2026년에도 잘 부탁한다 작고 소중한 삽아. 후회는 내가 잘해보도록 할게.

매거진의 이전글어떤 제스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