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을 노래한 거장이 "난 아직 모른다"라고 고백하는 이유
올해 2026년은 최백호가 데뷔한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70년대, 청년 최백호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는데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교사였던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장사를 하셨습니다. 위의 누나 둘은 대학에 보냈지만, 최백호까지 보내기는 너무 힘들었나 봐요. 그는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어요.
이제 의지할 곳 없는 최백호는 군대에 갔지만, 결핵으로 의가사제대를 했습니다. 그의 청춘 시절은 너무 가혹했죠.
1976년, 그는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최백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인데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대학도 못 가고, 결핵으로 쓰러진 청년에게는 정말로 마음 둘 곳이 없었던 겁니다.
돌아갈 집도 없고, 기댈 부모님도 없고, 펼칠 미래도 불투명했던 20대의 그가 부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절규였습니다.
그렇지만 최백호는 주변을 탓하는 대신 죽을힘으로 노력했는데요. 다른 가수들이 잊히거나 지난날의 곡들로만 연명할 때, 최백호는 꾸준히 신곡을 내고 후배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며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50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온 거죠.
2017년, 데뷔 40주년을 맞아 최백호는 '불혹(不惑)'이라는 앨범을 냈습니다. 40세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의 불혹. 40년을 노래해 온 가수가,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였죠.
그 앨범에 오늘 소개할 "바다 끝"이라는 곡이 실려 있는데요. 에코브리지와 함께 작업했지만, 가사는 최백호가 직접 썼습니다.
"바다 끝보다 까마득한 그곳에 뜨거운 사랑을 두고 오자. 무심한 네 마음을 놓아주자. 너와 나를 놓아주자."
40년을 버텨온 사람이 쓴 가사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연인과의 이별이지만, 더 깊게는 인생의 아픔과 상실, 견뎌온 세월들을 바다 끝에 묻고 오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마지막 후렴구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난 우리를 몰라."
결국 놓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최백호는 평생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는데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대학 진학의 꿈도, 건강도, 안정된 청춘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버릴 수 없는 추억이 있었던 거죠. 어머니의 기억, 사랑했던 순간들, 고통 속에서도 빛났던 그 모든 것들 말입니다.
"불혹"이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정작 가사는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게 바로 인간 최백호의 진솔함인데요. 모든 걸 초월한 도인이 아니라, 여전히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
우리도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놓아야 할 것들이 생기고, 바다 끝에 묻고 와야 할 기억들이 생기죠.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걸 완전히 놓지 못하고, 가끔 꺼내 보며 울고 웃습니다. 최백호의 목소리가 따뜻하면서도 슬픈 이유는, 그가 바닥까지 가봤기 때문이겠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청년이, 50년을 버텨내고 여전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다 끝"을 들으면,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많아도, 버릴 수 없는 추억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완전히 놓지 못해도, 가끔 그리워해도, 그게 우리가 살아온 증거니까요. 50년을 노래해 온 최백호처럼, 우리도 각자의 바다 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곳에 닿았을 때, 우리도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을까요.
"난 우리를 몰라."
여전히 놓지 못한 채로,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