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에 피어난 인동초, 기다림 끝에 꽃 피운 야구
지난주 우리는 김성근 감독님의 지독할 정도의 과정주의를 살펴봤습니다. 숨 막히는 통제와 극한의 훈련이 어떻게 왕조를 건설했는지 말이죠.
그런데 야구장이라는 비즈니스 현장에는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면서도 위대한 성취를 이뤄낸 또 다른 거장이 있습니다. 바로 국민 감독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님입니다.
김성근 감독님이 현미경으로 선수들의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를 교정하는 분이었다면, 김인식 감독님은 망원경으로 선수의 먼 미래를 내다보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분이었어요.
흔히들 믿음의 야구라고 부르죠. 하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 이 믿음은 단순히 착한 마음씨가 아닙니다. 이건 사실 리더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 전략에 가깝거든요.
김인식 감독님의 리더십이 전 국민의 가슴을 울렸던 첫 번째 순간은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야구는 세계 무대에서 변방 취급을 받았는데요. 그래서인지 메이저리거의 망언도 있었고(돈트렐 윌리스) 일본의 야구 영웅 이치로가 한국을 겨냥해 앞으로 30년 동안은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주겠다고 자극을 했죠.(두 케이스 모두 언론이 크게 부풀린 것으로 밝혀졌지만)
(정말 얄밉게 잘하던 이치로)
이 망언에 우리 선수들은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님은 허허 웃으며 선수들을 다독였어요. 분노에 휩쓸려 페이스를 잃기보다, 그 에너지를 필드 위에서 실력으로 보여주길 지시한 겁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도쿄돔에서 이승엽의 역전 홈런이 터지며 일본을 꺾었고, 야구 종주국 미국까지 격파하며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이런 외부의 도발이나 위기는 늘 찾아옵니다. 그때 리더가 같이 흥분해서 날뛰면 조직은 방향을 잃기 쉽죠.
김인식 감독님은 풍랑이 몰아치는 배 위에서도 흔들림 없는 선장처럼 중심을 잡았습니다. 그 여유가 선수들에게는 무엇보다 큰 심리적 안정감이 되었고, 결국 4강 신화라는 비즈니스적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김인식 감독님의 야구를 보고 선수들에게 맡겨두기만 하는 거 아니냐고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건 방임이 아닙니다. 리더가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건, 그만큼 선수 개개인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끝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고도의 심리 전략이에요.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죠. 모든 의사결정을 리더가 독점하면 당장의 실수는 줄일 수 있겠지만, 조직원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1995년 이후 6년 만의 우승)
김인식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필드 위에서의 자유를 주는 대신, 그 자유에 따르는 성적이라는 책임을 스스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2001년 두산 베어스의 기적 같은 우승은 바로 그런 자율성 속에서 태어난 폭발력의 결과물이었죠.
믿음의 야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2006년 WBC 미국전의 최희섭 선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거였던 최희섭 선수는 대회 초반 극심한 타격 부진에 빠져 있었는데요. 팬들과 언론은 최희섭을 빼야 한다고 난리였습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님은 묵묵히 기다렸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 미국전 4회에 최희섭을 대타로 내보냅니다. 결과는? 모두가 기억하시는 그 통쾌한 3점 홈런이었습니다. 홈런을 치고 들어오는 최희섭을 보며 감독님이 지으셨던 미소는 리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두산 시절의 박명환 투수입니다. 신인 시절 박명환 선수는 무려 9연패를 당하며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있었는데요. 주위에서는 당장 2군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지만, 김인식 감독님은 한마디로 잘랐습니다. 박명환은 선발로 계속 쓴다. 결국 박명환은 10번째 등판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팀의 기둥 투수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훗날 박명환이라는 투수가 더 크지 못한 이유로 김인식 감독의 혹사를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선수 본인이 김인식 감독님을 스승으로 가장 존경한다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걸 보면, 언론과 현장의 차이는 생각보다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선수의 케이스는 비즈니스적인 교훈을 줍니다. 인재를 영입하거나 육성할 때, 초기의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면 그동안 쏟아부은 매몰 비용은 모두 손실로 확정됩니다. 하지만 리더가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려주면, 그 인재는 조직에 평생 잊지 못할 충성심과 성과로 보답합니다.
기다림은 비용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수익을 위한 투자라는 걸 감독님은 몸소 증명한 것이죠.
2009년 두 번째 WBC는 사실 1회 때보다 상황이 더 나빴습니다. 박찬호, 이승엽 같은 핵심 선수들이 빠진 차포 뗀 장기판이었거든요. 하지만 김인식 감독님은 또다시 기적을 씁니다. 이때 탄생한 스타가 바로 봉중근 투수, 일명 봉닥터였죠.
일본전 선발로 나선 봉중근은 이치로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일본 열도를 침몰시켰습니다. 사실 봉중근 선수 역시 심리적으로 예민한 편이라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는데, 김인식 감독님은 특유의 툭 던지는 한마디와 신뢰로 그의 잠재력을 폭발시켰습니다.
전력이 약하다고 미리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남은 자원을 어떻게 조합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게 하느냐에 따라 비즈니스의 판도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야구가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그 기다림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부진할 때 팬들의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끝까지 기용하는 것, 이건 리더의 자리를 거는 도박이나 다름없거든요.
김인식 감독님은 그 비난의 화살을 본인이 다 맞으면서 선수들에게는 따뜻한 등을 내어주셨습니다. 리더가 조직원을 위해 자신의 고과나 평판을 희생할 줄 아는 것, 이게 바로 아버지 리더십의 본질입니다. 당장의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현대의 경영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이기도 하죠.
선수들이 감독님을 위해 죽기로 뛰었다는 미담은 여기서 나옵니다. 나를 믿어준 사람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마음. 이건 돈이나 시스템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오직 진심 어린 유대감으로만 얻을 수 있는 프로의 충성심입니다.
감독님은 감독 생활 후반부 한화 이글스에서도 수많은 재기 선수를 만들어냈습니다. 조성민, 지연규 같이 다른 팀에서 포기한 선수들을 받아들여 다시 마운드에 세웠죠. 비즈니스 환경으로 치면 사양 산업이나 한물간 인재를 데려와 다시 가치를 만들어내는 가치 투자자 같은 역할을 맡은 겁니다.
(때로는 한마디 말보다 표정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한화 시절의 성적이 늘 좋았던 건 아니지만, 감독님이 보여준 사람에 대한 예의와 기회 제공은 프로 스포츠가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임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다루는 영역임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결국 프로는 성적으로 말해야 하고, 비즈니스는 수익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인식 감독님은 성공한 비즈니스 리더입니다. 그는 사람을 도구로 쓰지 않고 파트너로 대접함으로써, 조직이 가진 잠재력을 120% 이끌어냈으니까요.
프로의 비즈니스가 차가운 숫자와 데이터로만 굴러가는 것 같지만, 결국 그 판을 움직이는 건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김인식 감독님은 증명해 주셨습니다.
효율과 속도만이 정답인 시대에, 당장은 손해처럼 보이는 기다림이 사실은 가장 높은 수익을 약속하는 가치 투자였던 셈이죠. 때로는 묵묵히 등 뒤를 지켜주는 리더의 믿음이 어떤 시스템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여러분의 필드에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신뢰가 기적 같은 성과로 돌아오길 응원하며, 다음 주에는 또 다른 거장의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