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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an 06. 2021

값싸게 쓰고 쫓아낼 수 있는 자리엔 여성이 있었다

<<회사가 사라졌다>> 서평 by 박재희

[서평] 값싸게 쓰고 쫓아낼 수 있는 자리엔 여성이 있었다

입력 2021.01.06 15:33


싸우는여자들 기록팀 또록, 『회사가 사라졌다』, 파시클


책 『회사가 사라졌다 - 폐업·해고에 맞선 여성노동』 표지 이미지. 파시클 출판사 제공.


- 『회사가 사라졌다』가 내게 왔다


신간 『회사가 사라졌다』가 세상에 나왔다. ‘답이 없다’는 직장폐업에 맞서 싸우기를 택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감사하게도 이 책의 기록팀 활동가로부터 서평을 제안받았다. 그러나 막상 책을 받고 나니, 읽고 쓸 자신이 없었다. 부끄러웠다. 내가 이 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을까.


문득문득 스치는 얼굴들이 있었다. 단 한 번도 마이크를 쥐어본 적 없던, 그러나 어딘가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던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이었다. 돌봄 노동의 굴레에 지독하게 내몰렸던 이들의 모습이었다. 내 가까이에 쉽게 사라지거나, 지워졌던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과연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내가 속한 세계는 이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을까.


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올 한해 코로나19 사태를 관통하며, 공적시스템이 가장 신속하고 책임 있게 작동되어야 할 재난 상황에서조차 장애인·집단시설 거주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은 손쉽게 ‘포기’된다는 것을 여실히 절감했다. 그리고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돌봄 현장에는 언제나 가족 내 여성들과 돌봄 노동자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내가 있는 위치에서 외면해온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노동이 가치 있게 인정되고, 인정되지 않는지, 드러나고, 숨겨지는지, 지워진 노동들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 우리가 일자리나 서비스 혹은 집안일로 인식하는 모든 것들이, ‘사람’의 노동이라는 사실, 내가 노동에 무지하고 무감각했던 시간이 누군가의 존엄과 연결되어 있다는 그 새삼스러운 진실 말이다.


- 일터가 사라진 자리, ‘답 없는 폐업’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


『회사가 사라졌다』는 폐업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워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이들이 ‘눈물과 한숨만 담아’갈 때,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은 폐업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생각을 물었다. 이 책은 ‘또록’의 이름처럼 폐업에 맞서 싸우기를 택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그리고 폐업 이면에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내몰리는 여성 노동의 현실을 ‘또박또박 기록’해 고발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눠져 있다. 성진씨에스(자동차 가죽시트 제조업체), 신영프레시젼(휴대폰 부품 조립업체), 레이테크코리아(문구용 스티커 제조업체)의 폐업·해고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2부에서는 폐업 투쟁을 통해 마주하는 한국 사회 여성 노동의 위치를 조명한다. 3부는 요양보호사, 브랜드 디자인 기획자, 제조업 생산직, 공공의료기관 사무직 등 여러 직종의 일상적인 폐업문제에 대해 현장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를 통해 왜 저자들이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의 편에서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 전한다.


책은 폐업이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폐업은 누구나 겪고 어디에서나 일어났다. 이야기되어야 할 거리로 취급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이다(11쪽). 그리고 묻는다. 폐업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냐고, ‘여자 해고는 해고도 아니’라는 사회적 무감각 앞에, 이것이 왜 ‘중요한 일‘이 아니냐고.


폐업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택한 기업의 전략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기업들은 하청에 하청을 두고 책임과 비용을 줄이다가, 더 뺏을 게 없으면 물량을 빼 폐업했다. 회사 문을 닫으니 해고자 구제에 대한 책임도 사라졌다. 정규직이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계약직 전환 동의서를 내밀고, 노동자들이 제 발로 나가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하다 끝내 해고했다. 결국 해고대상의 우선순위는 현장에서 묵묵히 일해 온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책을 읽으며, 비용 절감의 책임은 언제나 ‘여성’들에게 가장 먼저 전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장은 노동자들 밥을 먹여 주면 공장을 영업할 수가 없대. 밥값을 못 뺏어서 폐업을 시켜 버렸어. 뭘 줘야 폐업을 안 하는 거야? 다 줘야지.” (154쪽, 성진씨에스분회 강이순)



폐업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다 내줘야 폐업을 안 한다는 건, 기업이 여성 노동자들을 값싸게 활용하다 더 뺏을 게 없을 때, 일터마저 빼앗는다는 뜻이었다. “나이든 여자가 마땅히 일할 곳 없는 현실이 이들 입을 다물게”(18쪽) 했지만, 이들은 더이상 참지 않았다. 폐업에 맞서기로 한 여성 노동자들은 회사는 사장 혼자 키운 것이 아니라고, 회사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기록팀의 에필로그처럼, ‘노동자들이 담대해지는 순간’이 그려졌다.


여성노동자들이 “지금 당장 비정규직 철폐”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참세상


- 값싸게 쓰고 쫓아낼 수 있는 자리. 그곳엔 늘 여성이 있었다


폐업의 이면에는 값싸고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 있었다. “남자들이 힘들고 월급 적은 일을 지나쳐서 더 나은 일을 찾는 동안, 남은 일은 여자들 몫이 되었고”(47쪽), “공단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해도 휴대폰 부품 조립 업무는 하청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 부업 일자리로 쪼개”졌다(67쪽).



여자 해고는 ‘해고도 아니었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라 했다. […] ‘가정 있는’ 여자의 실직은 복직을 두고 싸울 만큼 큰 사건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15쪽)




‘일하는 아줌마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함부로 계약직(변경) 근로계약서를 건넬 수 있는, 정규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낮은 임금을 책정할 수 있는, 그마저도 사장이 무슨 대단한 혜택을 주는 양 굴 수 있는 지위에 놓이는 일이다. 자신들에게 야박한 세상에서 목소리 높이지 않고는 무엇 하나 순순히 얻을 수 없었다. (90쪽)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있어도 ‘아줌마’ 소리를 들었다. 사장으로부터 ‘당신들 노동은 천 원짜리’라는 모욕을 당하고, ‘동네 아줌마들 데려다가 일 시켜 줬더니’라는 훈계를 들어야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해고 이야기를 전하면 쉬라고, 봉사활동이나 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중장년 여성의 노동이 여전히 반찬 벌이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해고는 늘 어쩔 수 없는 일로 용인되었다.


기업은 손쉽게 문을 닫고 노동자들을 쫓아냈지만, 해고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았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원했던 정부도 ‘기업의 고용’만 보호할 뿐이었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 역시 고용에만 머물렀다. 그러나 그 ‘고용’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여성들을 시간제·저임금 노동에 가두었을 뿐이라고 책은 지적한다. 정부가 양산한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 정책’일지 몰라도, ‘노동 정책’은 될 수 없었다. ‘일-가정 양립’은 여성들에게만 요구되었고, 돌봄 노동의 굴레와 값싸고 불안정한 일자리로 끊임없이 내몰았다.


- 가부장제 사회에서 필수노동 ‘돌봄’ 책임지는 여성들



가족 중 간병이나 돌봄을 전담할 사람이 없어 누군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면, 그때 고려되는 것은 직위나 고용 형태가 아니라 성별이다. (7쪽)



이 책을 읽는 내내, 올해 코로나19가 드러낸 돌봄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대대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생활이 지속되자, 존재했으나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돌봄 노동’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장애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봄의 부담이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겨지면서, 발달장애인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 입소자의 집단감염·사망사건과 함께 대남병원 입소자를 돌보던 간병노동자의 죽음도 있었다. 고인은 입소자의 감염 사실을 모르고 엿새간 입소자를 돌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77세의 고령에 당뇨를 앓고 있었음에도 시급 4200원의 간병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 속,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지 않는 돌봄 현장에 가족(특히 여성), 그리고 이름 없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 이면에는 돌봄 노동의 공적 가치를 지우고 ‘여성의 몫’으로만 전가해온 가부장제, 그리고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족주의가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마주하게 되었다.


- 우리가 함께 억울할 수 있도록


『회사가 사라졌다』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조금이라도 귀 기울인다면,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책임’의 문제”(5쪽)라고. 그리고 제안한다. “세상은 타인이 처한 노동 현실에 대해 함께 억울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도록 노동하는 사람 사이에 위계를 형성했다. 그렇지만 여자라서 가능한 일은 장애인이라서, 노년이라서, 청소년이라서, 사회 초년‘생’이라서, 낮은 학력이라서, 그리고 어쩌면 노동자라서 가능한 일이 된다.”(129쪽) 그러니, 우리가 함께 억울해하는 법을 배우고,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의 다음이 우리 모두의 몫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가 사라졌다』가 비마이너를 구독하는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세상의 큰 축을 지탱하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의 현실을 나와 우리가 마주하길 바란다. 연결되어있다고 감각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의 벽들을 같이 허물어나가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들이 더 필요하다.


* 필자 소개 _ 박재희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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