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공유 60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한낮의 우울
by hanee Nov 08. 2017

정신과를 갈 때 고려할 3가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1. 생각보다 중요한 접근성

처음 병원을 가게 됐을 때 거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신과에 간다는 부담이 컸기 때문에 뭐라도 의지할 게 필요했다. 이럴 때 가장 믿을만한 건 아무래도 ‘지인 추천’이다. “나는 안 다녀봤지만 괜찮대”라는 말을 지푸라기 삼아 병원에 갔다.


병원은 우리집과 정반대 방향에 있었다. 회사와도 멀었다. 병원과 회사, 그리고 집을 이으면 삼각형 꼴이 만들어졌다. 보통 왕복 두 시간이 걸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가까운 병원에 다니게 되면 이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닫게 된다. 지금은 회사에서 가까운 병원에 다니고 있다.


정신과는 주기적으로 가야한다. 초반에는 3일에 한 번, 이후에는 매주 병원에 갔다. 의사가 내 상태에 대해 파악하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짧으면 3개월, 길게는 몇 년을 간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까운 병원이 좋다.


갑자기 병원에 갈 일도 생긴다.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작은 외부 자극에도 감정이 요동친다. 나는 그럴 때면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를 잡고 울었다. 엉엉 약주세요. 그러면 평소 복용하던 약 외에 비상약을 준다. 이럴 때 병원이 멀리 있으면 앞이 막막하다.


2. 예약제의 장단점

10곳 정도 병원을 알아봤는데 보통 정신과는 예약제가 아니더라. 초반에는 예약제가 아닌 병원이 좋은 것 같다. 병원에 가야겠다! 고 다짐하는 순간이 몇 안 되는데 이때 바로 못 가면 나중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지나면 상태가 좀 나아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찮다.


하지만 비예약제의 함정은 ‘대기’다. 대기시간은 그렇다 쳐도 나는 다른 환자들과 마주치는 게 너무너무 싫었다. 저 사람은 어디가 안 좋아서 왔을까? 얼마나 아프길래 보호자랑 같이 오지? 어? 저 사람 울었나보네 안 됐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스캔’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대기자가 많으면 상담 시간 내내 신경이 쓰인다. 막 스무 명이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 20분 이렇게 상담할 수 없다. 해주지도 않는다. 어떨 때는 5분만에 상담을 끝냈다. 지금 다니는 병원은 15분 20분 간격으로 예약을 받고 있어서 상담 시간이 확보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 마주치지 않는 게 좋다.


3. 그래봤자 의사

모든 걸 무화시키는 조건이 있다. 당연히 의사다. 내 경우 첫 번째, 두 번째 의사와는 잘 맞지 않았다. 첫 번째 의사는 전에 썼다시피 나를 아이 다루듯이 대했다. 우쭈쭈 받는 느낌은 들었지만 환자로서 존중 받는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나를 포기했다.


두 번째 의사는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고 약이 맞지 않거나 힘들면 언제라도 전화를 하라고 했다. 불안감을 통제하기 어려웠던 내게 전화상담은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는 불필요한 주관적인 조언을 자주 했다. 가령 이런 거.


내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하자 그는 내게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괜찮은데"라고 '평가' 했다. 내가 외모 자존감이 낮다고 하자 "외모 자존감이 낮을 이유가 없는 얼굴"이라고 '평가' 했다.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병원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알게 됐다. 1) 날 아이 다루듯이 하지 말 것. 나는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 할 뿐이지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다. 2) 투머치 토크 하지 않을 것. 나는 주관적인 생각말고 병에 대한 객관적인 것들 중심으로 말해주는 게 좋다.




지금 의사는 잘 묻고 잘 들어준다. 내 몸상태는 물론이고 회사에 복귀한 건 어떤지, 이사 간 집은 마음에 드는지, 동생과 싸운 건 어떻게 됐는지. 물론 지난 번 상담내용을 훑어 본 다음에 하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관심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쓸데없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선생님 보기에 어떠세요?” 식의 질문을 하는데, 의사는 이렇게 답한다. “하늬씨는 남들보다 조금 걱정이 많을 뿐이다. 그러니까 실제론 걱정하는 만큼의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불안한 감정이 생기다가도 “아 어차피 내 걱정만큼 큰 일은 안 생겨.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둬.” 그리고나면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자연스러운 일을, 나는 이제서야 배워가고 있다.


keyword
magazine 한낮의 우울
이야기를 듣고 글을 씁니다. 이젠 제 이야기도 하려 합니다.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