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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일기
by Alice in wonderland Apr 03. 2018

할머니, 데리러와줘서 고마워요

"할머니 캄캄, 할머니 캄캄"

"'할머니 캄캄, 할머니 캄캄', 쪼끄만 니가 날 보며 원망하듯 말했지."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가 해주신 얘기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세 살무렵? 우리 가족은 아직 엄마, 아빠의 고향인 횡성에서 할머니댁 옆에 살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두분 다 시골학교의 선생님이셨고, 아침에 학교를 가시면 난 유아원 같은 곳에 보내졌다.


어느 날, 어린 나는 할머니에게 울면서 유아원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다른 애들은 부모님이 일찍 데리러와서 일찌감치 집에 가는데, 항상 혼자서 가장 늦은 시각까지 남아있는 아이가 나였나보다. 어린 나는 그게 너무 싫었고 그래서 유아원을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으로부터 25년도 전의 강원도의 시골 마을이었다. 그 시절, 그 시골에는 여자가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드물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가정 주부였거나, 혹은 부부가 함께 자영업, 농업에 종사했다. 그러다보니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는 오후 4시면 대부분 부모님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나보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가면, 난 그것이 그렇게도 서럽고 슬펐나보다. 할머니는 내 얘기를 듣고, 그러면 엄마 말고 할머니가 잠깐 가게를 비우고 나를 데리러 오시겠노라 약속했고, 몇번을 할머니에게 당부와 약속을 받아내고서 나는 유아원을 갔다고 한다. 그래도 가끔이지만 할머니가 늦을때면 원망섞인 목소리와 서툰단어로 "할머니 캄캄, 할머니 캄캄"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훗날 나의 동생도 나에게 저 버릇을 꼭 같이 배워서, 할머니에게 같은 말을 했다고 했다.




나는 우리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다. 할머니가 해주셨던 음식도, 다리를 덜덜 떨고 있으면 그러면 못쓴다고 잡아주던 할머니 손도, 머리를 빗겨준 것도, 손잡고 시장에 데려가준 것도... 7살이 되어서 서울로 이사를 간 이후로는 방학때마다 할머니댁을 찾았다. 그리고 돌아가는 날에 이것저것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시면서, 우리를 차에 태워 보내실 때, 할머니는 꼭 만원, 이만원씩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큰 손주라고 항상 나에게 남동생보다 더 많은 금액을 주셨다. 친할머니는 손자라고, 고추가 최고라고 항상 남동생을 더 좋아하셨는데. 그러면 나는 차타고 할머니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울었다. 그리고 항상 다짐했다.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할머니 호강시켜드려야지. 이거 다 갚아야지. 우리 할머니 호강시켜드리고, 나에게 밉보인 친척들에게 보란듯이 잘 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지. 돈을 많이 벌면 나중에 우리 가족들 싸울일도 없겠지. 아주 어릴때부터 어느정도 철이 들때까지는 그것이 내게 공부를 하는 동기였던 것 같다.



지금은 우리 할머니 진짜로 정말정말 호강시켜드릴 수 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3년전 겨울 크리스마스무렵이었다. 나는 그 때 뉴욕에 있었다. 계속 암투병을 하고 계셨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당장 한국으로 올 수도 없는 내가 괜히 마음고생할까봐 엄마는 며칠이 지나고 내가 싱가폴에 돌아 왔을 때 그 소식을 알렸다. 엄마가 나에게 그 소식을 알려주었을 때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납골당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보다도, 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할머니께서 아프시기 전에 왜 더 많은 곳으로 데려가드리지 못했는지, 꽃과 자연을 좋아하시는 할머니가 좋아할만한 곳이 여기 많은데. 이 모든 멋지고 아름다운 곳들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할머니와 함께 먹지 못하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할머니, 그 시골 촌에서 잘 팔지도 않던 피자도 좋아하실만큼 미식가셨는데... 할머니가 엄마를 잘 도와드리라고 했는데, 나는 엄마를 도울 수도 없이 멀리 있어서 그것또한 너무 속상하다.




이건 외국에서 터전을 잡고,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부모님이 아프면 어떡할 것인지. 현재 부모님이 편찮으신 친구들도 있고, 그 친구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문득문득 '아,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사실 그 누구도 여기에 대한 뚜렷한 계획과 답은 가지고 있지 않다. 나처럼 파트너가 외국인일경우 상황은 조금 더 안좋다. 둘다 한국인이면 일정 기간동안은 같이 한국에 들어가서 일을 구해서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파트너가 외국인이면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대로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혼자든 같이든 부모님의 곁에 있기로 합의를 한 상황이다. 그래서 필립과 나는 마지막을 고민하기보다 매일 볼 수 없는 대신, 일년에 며칠이라도 퀄리티 있는 시간을 가족과 함게 보내고자 노력한다.


필립은 몇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 혼자 지내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필립은 어머니와 함께 할 여행계획을 짠다. 그러니까 오늘도 열심히 일하시는 우리 부모님도 나에게 협조 좀 해주셨으면...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일을 잘하는 것은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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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의 저자 앨리스입니다. eBook 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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