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실에 가는 것은 굉장히 설렘이 있는 순간이다.
다양한 음향 장비가 늘어서 있고, 보컬은 부스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고, 밖에서는 엔지니어와 작곡가가 디렉팅을 하는 모습. 누구라도 처음 경험이라면 기념사진 한 장쯤은 찍고 싶을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음악 작업의 대부분을 녹음실에서 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홈레코딩으로 많은 작업들이 가능해진 이후에도 “녹음은 녹음실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어디서든 녹음이 가능하다는 인식은 시간이 꽤 지나서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보통 녹음실은 시간당 금액이 아니라 “1프로” 단위로 렌트할 수 있다. 1프로는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를 의미한다. 3시간을 기본으로, 세팅 시간 등을 고려해 어느 정도의 추가 시간을 제공해 준다고 이해하면 좋다.
보통 1곡을 녹음할 때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노래를 잘하면 한두 번에 부르고 끝 아닐까?”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 1프로 안에 1곡을 녹음할 경우, 빠르게 끝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평균 1프로를 넘어서야 완성이 된다. 최대한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 수없이 녹음하게 된다. 물론 유독 톤이 좋고 컨디션이 좋아서 1프로 안에 2곡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가 지나 며칠 동안 1곡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노래를 듣다 보면 아이돌 그룹처럼 여러 명이 부르거나, 듀엣의 경우 파트를 나누어 부르다가 화음을 이루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 모두가 녹음실에서 자기의 차례를 대기하거나 같이 부스에 들어가서 부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녹음은 기본적으로 1명씩 부르기 때문에 자리 파트만 부르고 먼저 가거나 자기가 녹음할 때만 오는 경우도 많다. 듀엣곡을 녹음하고도 서로 녹음할 때 보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결국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결과물의 완성도를 책임진다.
정규 앨범 작업처럼 장기 프로젝트라면, 제작사와 녹음실이 별도로 전체 작업 금액을 협의하기 때문에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 없이 녹음할 수 있다. 하지만 빠듯한 예산 안에서 녹음실을 빌려야 할 때는 변수로 인해 재녹음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에 부담스럽다.
그 변수 중 가장 큰 것은 보컬 컨디션이다. 라이브 공연과 달리, 녹음에서는 전체적인 느낌이 좋으면 약간의 음정이나 박자 실수는 편집으로 커버할 수 있다. 녹음 도중 “이 부분은 튠으로 잡을게요”라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목소리가 쉬었거나, 잠겼거나,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경우처럼 보컬 톤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후반 작업으로도 한계가 있다.
또한 신기하게도 녹음 직전에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던 보컬이 막상 녹음을 시작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컨디션이 좋아 보였는데도 녹음 결과가 아쉬운 경우도 있다.
모두가 가능하다면 한 번에 녹음을 끝내고 싶어 한다.
요즘은 작업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소규모 공간에서의 보컬 녹음이나 기타 녹음 정도는 충분히 홈레코딩으로 가능하다. 물론 스트링이나 밴드 녹음처럼 여러 인원이 동시에 녹음해야 하는 경우에는 여전히 녹음실을 찾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보컬 녹음만큼은 홈레코딩은 일상이 됐다. 컨디션과 상황에 맞춰 여유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제작비 변수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을 막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사와 멜로디를 만드는 것보다 오디오를 녹음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초반에는 완벽한 세팅을 하려고 하지 말고 단순하게 시작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마이크가 내장된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거나 스마트폰 전용 음악 앱을 이용해 녹음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처음 녹음할 때는 부분 부분을 나눠서 부르려 하거나 편집 같은 디테일을 고민하기보다는 노래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에 녹음을 해보는 것이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선 녹음된 소스가 있어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고,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아예 녹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같이 작업하는 사람 역시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싱어송라이터이거나, 가이드 보컬을 직접해야 하는 작곡가라면 녹음 버튼을 눌러줄 사람도, 디렉팅을 해줄 사람도 없는 경우가 많다. 혼자 녹음할 때는 내가 직접 녹음한 것을 듣고 살릴지, 다시 부를지를 판단해야 한다.
녹음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펀치 녹음(Punch Recording)
필요한 부분만 다시 부르고 수정하면서 완성해 가는 방식이다.
2. 테이크 녹음(Take Recording)
특정 구간을 여러 번 부른 후, 나중에 좋은 부분만 골라서 완성하는 방식이다.
혼자 녹음할 때 나는 테이크 녹음을 선호한다. 중간중간 틀리더라도 쭉 부르면서 감정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좋은 부분만 골라내면 충분하다. 다만, 테이크 녹음의 가장 큰 위험은 막상 녹음을 모두 끝내고 나서 괜찮은 소스가 없을 때이다.
예전에 드라마 OST 작업을 처음 맡았던 가수가 있었다.
가수 입장에서는 테이크 녹음으로 빠르게 진행하려 했지만, 첫 작업이라 불안했던 나는 좋은 부분을 함께 고르면서 마무리하자고 제안했던 기억이 있다.
또, 내가 직접 노래까지 해야 했던 드라마 OST 작업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녹음이 잘 되고 있는지 감을 못 잡을 때도 있었다. 나의 기준만으로는 마무리에 자신이 없었다.
그럴 때는 오랜 작업 동료인 박성준에게 긴급 요청을 해서 보컬 디렉팅을 부탁해 무사히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처음 녹음실에 들어가서 느꼈던 설렘, 연주자들이 내 곡을 함께 연주하면서 완성해 가는 과정, 앨범 크레딧에서만 보던 편곡가, 연주자들과 한 공간에서 작업했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지금은 컴퓨터 한 대와 작업실 안에서 뚝딱 음악을 만들어내는 게 익숙해졌지만, 녹음실 특유의 풍경이 조금 그리워진다.
녹음실 풍경처럼 비록 폼은 나지 않지 않아도 내 손으로 끝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미뤄져 있던 새로운 곡 작업도
빨리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 또 녹음이 시작되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