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명이인들에게

“예지월드”의 부활을 기다리며

by 김예지

싸이월드가 다시 부활한다고 한다. 싸이월드를 생각하면 데이터의 바다 깊숙이 잠들어 있을 나의 10대 시절이 떠오른다. 셀피가 셀카이던 시절, 중2 감성의 글을 올리던 그때. 싸이월드에 백문백답을 올리며 자아를 찾아간 사람이 나만은 아니거라 믿는다. 정성스럽게 스티커를 붙여가며 편집한 셀카 한 장은 나의 첫 예술활동이었다. 그런 싸이월드의 부활이라니.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내 싸이월드 데이터를 백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나에게 이 부활은 기회일지 또 다른 흑역사의 발각 일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데이터 속에서 다시 찾아보고 싶은 나의 일촌이 있다. 그는 나와 동명이인이던 사람이다. 우리가 일촌이 된 유일한 배경은 우리가 같은 이름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이름은 꽤 흔한 편이라 학교 다닐 때는 늘 같은 학년에 나 말고도 한 두 명씩은 있었고, 심지어 같은 반이었던 적도 있다. 같은 이름의 디제이도 있고 아이돌 가수도 있다. 스타벅스에 가면 내가 아닌 내 이름에 놀라 고개를 드는 일이 종종 있다. 종로에는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의 동도 있다. 가끔 예지동에 사는 예지씨를 꿈꾸기도 한다. 돈과 집만 있다면 못 이룰 것도 없는 꿈이다.


아무튼 나와 동명이인인 그와 내가 일촌이 된 것은 어느 날 그에게서 도착한 일촌신청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모든 예지들에게 일촌신청을 하고 있다. 우리도 일촌 하자.' 이런 내용의 메시지였다.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피할 이유는 없었다. 일촌 신청을 수락했고 우리는 동명이인의 조금은 특별한 일촌이 되었다. 그는 내가 얼굴도 모른 채, 얼굴뿐만 아니라 아는 것이라곤 이름밖에 없는 사람과 친구가 된 최초의 사례다. 게다가 일촌이라는 이름의 친구. 일촌이 얼마나 복잡한 관계인지 지금은 안다.


일촌이 된 후 찾아 들어간 그의 미니홈피에는 수많은 예지들이 있었다. 일촌평에는 다양한 이모티콘들과 함께 반가움을 금치 못하는 예지들이 즐비했다. '예지들은 다 성격이 좋더라.', '예지가 최고지~'하는 예지끼리만 할 수 있는 농담들이 오고 갔다. 나도 그곳에 일촌평을 하나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비슷한 농담을 했었던 것 같다. '예지'라는 사연으로 점철된 농담들. 그곳은 싸이월드가 아니라 예지월드였고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평화를 찾은 유토피아였다.


그 이후에 예지들과 기억할만한 특별한 사건을 만들지는 못했다. 예지라는 이유로 일촌이 되었지만 그것 말고는 할 말이 없는 사이였다. 예지월드는 나에게서 점점 잊혀져 갔고 싸이월드의 멸망으로 예지 월드도 그를 따라 바다 깊숙이 수장되었다. 싸이월드가 부활하면 예지월드를 되찾을 수 있을까? 지금은 친하다 할 수 없는 친구들과 아마도 너무나도 낯설 나의 10대 시절보다 예지월드와의 조우가 더욱 기대가 된다. 혹시 그 예지가 나를 일촌에서 삭제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여전히 일촌일까? 그 사람도 예지들의 유토피아를 기억하고 있을까? 예지들은 잘 있을까?


동명이인이란 참 신기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름 하나로 움찔하게 된다. 이름이 흔한 만큼 동명이인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동명이인은 이상하게 늘 반갑다. 사람 인생은 이름 따라간다는데 내가 만난 예지들은 다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뜻이 다르기 때문일까? 내가 만난 예지 중에는 나와 한자까지 같은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의 지혜'를 줄여 예지가 된 한글 이름의 예지도 있었다. 내가 중학생 때 만난 예지월드의 예지들도 같은 이름에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겨우 예지라는 단서로 그들의 오늘을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모르는 사이에 서로 움찔하며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를 부르는지 알고 뒤돌아본 이름이 예지월드의 다른 예지의 것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당연히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지만 그런 식으로 우리는 계속 서로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예지월드는 수장된 것이 아니라 더 웅장한 동시에 은밀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지월드에서만 발급되는 등본에 일촌이라 명시된 복잡한 관계로 우리는 여전히 얽혀있을 수도 있다.


어릴 때는 이 흔한 이름을 싫어했다.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이름. 쉽게 외워지는 만큼 쉽게 잊히는 이름.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 하다가도 내 이름을 찾기 위해 사전이란 사전을 다 뒤졌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쩔 수 없이 이 이름을 안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노력해 놓고 겨우 예지야? 길가다 간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을 뭐하러 몇 날 며칠을 새워서 찾았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특별하고 유일한 게 늘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을 이런저런 경험으로 알게 된 지금의 나는 흔한 내 이름이 꽤 마음에 든다. 다른 예지에게 보낸 위로에 더불어 행복할 수도 있겠지.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예지들만 할 수 있는 농담을 나누며 실없이 웃을 수도 있겠지.


나의 동명이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covid-19가 만든 유일한 좋은 점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건강을 바라게 된 것이 아닌가. 얼굴은 모르지만 이름은 아는 예지들의 건강을 특별히 더 걱정한다고 이상할 것도 없다. 나도 인스타그램에 예지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계정에 다 안부 디엠을 보내볼까. 그러면 일촌은 될 수 없겠지만 서로의 팔로워가 될 수는 있을 거다. 상상만 하고 실행하기는 그만둔다. 예지들과 겨우 팔로워가 되고 싶지는 않다. 무려 일촌이었던 사이에 그런 관계는 퇴보다. 그러니 기다려보기로 한다. 싸이월드와 함께 부활할 예지월드를. 이번에는 실없는 농담 대신 잘 지냈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볼 생각이다. 10년도 전에 우리가 일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우리 사이에 이 정도 안부는 합법적이지 않느냐고. 예지가 최고지 않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