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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장 Jun 29. 2017

05. 욕망의 높이

# 다케토미섬_ 나고미 탑

다케토미는 이시가키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다. 리토터미널에서 뱃길로 10분이면 닿는다. 이 섬은 마을 자체가 볼거리다. 가슴 높이로 흐르는 돌담을 따라 붉은 기와를 얹은 류큐의 전통 가옥들이 맞춤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섬은 한쪽으로 길쭉하니 둥그스름하다. 5000피트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수면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한 마리의 커다란 개복치를 꼭 닮았다. 

눌린 호떡처럼 편평해서 가장 높은 곳이 20미터 남짓이다. 아파트 8층 높이로 솟은 언덕배기 한두 곳을 빼고는 모두 평지인 셈이다.


섬은 태풍이 지나는 길목에 있다. 당연히 바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달리는 마을의 돌담으로 바람을 구슬리고, 시멘트를 발라 고정한 주황색 기와로 바람을 견딘다. 



섬사람들에게 돌담은 필연이다. 그래서인지 풍경이 제주와 겹친다. 그러나 용암이 굳어서 생긴 제주의 까만 현무암과 달리, 이곳은 온통 산호 석회석이다. 


산호는 죽어서 하얀 뼈가 된다. 해변을 걷다보면 그 뼈가 발에 밟힌다. 수피가 매끈한, 배롱나무 가지처럼 흩어진 산호를 주워 맞부딪치면 금속성의 맑은 소리가 난다. 한때 생명을 지닌 것들이 물속에서 일군 퇴적의 시간들이 내는 울림이다.


땅속에서 갓 캐낸 산호 퇴적암은 처음에는 하얗다가, 공기를 만나 왕골 돗자리처럼 노르스름해진다. 그러다 때가 타고 버짐이 피어 이 마을의 돌담처럼 거뭇거뭇해진다. 그래서 어둠이 내리면 산호모래를 뿌린 마을길만 달빛을 받아 도드라진다. 길눈이 어두워도 그 길은 보인다.


마을 한가운데에 이르자 소방차 사다리 모양으로 우뚝 솟은 콘크리트 구조물 하나가 눈에 띈다. 나고미[なごみ]란 이름이 붙은 마을 전망대다. 다케토미라는 피자 도우에 올린 붉고 푸른 토핑을 내려다볼 기회를 잡으려면 줄을 서야 할지도 모른다. 



여덟 개의 가파른 계단을 밟아 오른다. 탑의 높이는 채 5미터가 안 된다. 언덕의 높이가 더해져 아파트 3층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다. 전망이 트여 하늘과 닿은 먼 수평선까지 막힘이 없다. 


이 편평한 섬이 길러낸 욕망의 높이는 딱 여기까지다. 재건축을 거치며 5층에서 15층, 15층에서 25층으로 자라난 아파트 숲은 도리어 조망을 방해한다.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본다.     


조망[眺望

먼 곳을 바라봄. 또는 그런 경치     


여기서 방점은 시선의 ‘높이’가 아니라 시선이 닿는 ‘거리’에 있다. 그동안 우리는 높이에 열중하느라 거리를 잃어버리고 풍경을 상실했는지 모른다.


그 이름처럼 푸근한 나고미 탑에 올라 내가 잊고 지낸 거리감을 확인한다. 

높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멀어서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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