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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간읽기 Jan 20. 2016

연명의료 중단법, 이제 시작이다

[행간읽기] 2016. 01. 20 by 리앤

 “연명의료 중단법, 이제 시작이다” by 리앤

1. 이슈 들어가기

리앤: 임종 직전의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일명 ‘웰다잉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입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웰다잉법’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포 후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부터 시행된다. 국회는 이날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잇달아 열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웰다잉법)’을 통과시켰다. 의원 203명이 표결에 참여해 202명 찬성 환자에게, 1명 기권의 압도적 지지 속에 통과됐다.

연명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웰다잉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해 있고 △치료해도 회복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네 가지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아일보/1월 9일 자] 회복 가능성 없는 환자에 ‘연명의료 중단’ 가능해진다…언제부터?

리앤: 최근 통과된 법은 ‘임종이 임박한’ 상태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미리 작성한 사전의향서를 통해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힌 환자에 한해 적용됩니다. 다만, 사전의향서를 미리 작성하지 않은 경우 의사를 추정하거나(구두로 의사를 밝혀온 경우) 가족들의 합의에 의해 실시될 수 있습니다.


사전의향서는 만 19세 이상인 사람이 평소 직접 작성해 두는 것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질병 상태와 치료법, 연명의료 시행법과 중단 결정, 호스피스 제도 등을 설명하고 의사가 작성한다. 실제로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때는 두 서류의 효력이 같다. 법에 따라 신설되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구'에서 이 서류들을 등록·보관하고, 임종이 닥치면 관리기구를 통해 실시간 조회할 수 있게 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통일된 서식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의사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환자가 동의하면 의사가 작성하게 된다. 사전의향서도 일정한 서식이 만들어지며, 의료기관이나 비영리법인(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상담받고 작성하면 된다.

[조선일보/1월 9일 자] 연명의료 중단, 환자의 뜻 모르면 가족 전원 동의해야

리앤: 소극적 안락사 또는 존엄사로도 불리면서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전 세계적으로 있어 왔습니다. 관련하여 국가별로 어떤 논의가 있어왔는지, 한국에서는 법제화가 되기까지 어떠한 논의 과정이 있어왔는지, 법제화에 대한 여론은 어떠하고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이슈 디테일


존엄사에 대한 국가별 논의

법적으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베네룩스 3국과 스위스, 태국 등이다. 존엄사에 가장 관용적인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지난 2000년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에게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벨기에도 2002년 존엄사를 합법화했으며 스위스는 말기 환자에 대한 약물 처방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캐나다와 일본 등은 존엄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환자의 고통과 죽음의 임박성, 본인의 의사, 고통 제거 수단 유무 등에 따라 허용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프랑스는 원래 안락사 및 존엄사를 강력히 반대했지만, 지난 2004년 존엄사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환자가 사전 동의할 경우 ‘죽음의 순간’에 기계적 호흡이나 심폐소생술 등을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일보/2014년 11월 4일 자] 한국선 존엄사 가능한가… 나라별 찬반 나뉘는 이유

리앤: 그러나 다수의 나라에서 존엄사를 법적으로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건 별로 법원의 판결에 의해 제한적으로 허용 판결을 내리거나, 입법 없이 묵시적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일은 판례를 바탕으로 존엄사를 인정한다. 1993년 독일 법원은 병원이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한 것은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독일의 한 병원 측은 뇌손상으로 의식불명인 72세의 환자에 대해 영양액 공급을 끊는 결정을 내리며 논란이 됐다. 하지만 독일 법원은 이에 대해 소극적 안락사가 아닌 ‘죽음에로의 도움’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며 살인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후 독일은 이 판례를 바탕으로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2008년 존엄사를 허용하는 첫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당시 16년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환자에 대해 급식튜브를 포함한 생명 유지장치 제거를 허용했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만 존엄사를 인정한다. 오리건주는 1997년 존엄사를 법으로 허용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본인이 존엄사를 요구했거나, 이를 요구했다는 가족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 치료를 해도 6개월 이상 살기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을 두 명 이상에게 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밖에 가족의 동의 아래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는 정도의 존엄사는 뉴저지주 등 40개 주에서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제한적인 존엄사를 허용한다. 산소호흡기 등 생명연장 수단을 제거하는 정도는 용인된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는 2006년 4월 회복의 기미가 없는 환자에 한해 사실상의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조선일보/2015년 5월 20일 자] 존엄사, 다른 나라에선? 네덜란드가 가장 먼저 허용


한국 내 논란의 시작: 보라매병원 사건

리앤: 한국에서의 본격적 논의는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 이 그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지금 논의되는 존엄사 또는 소극적 안락사와는 다른 맥락의 사건이기는 하나 해당 사건 이후 의료기관이 존엄사 또는 소극적 안락사를 시행하는 데에 있어 굉장히 방어적으로 행동하는 계기가 됩니다.

존엄사(연명치료 중단)와 관련된 논의가 우리 사회에 처음 제기된 것은 1997년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이 일어나면서부터다. 이 사건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부인의 요구에 의해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한 후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환자의 동생이 의료진을 살인죄로 고발했다.


대법원은 부인에게는 살인죄를, 환자를 퇴원시켰던 보라매병원 의사들에 대해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의사들 사이에선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극도로 꺼리는 풍조가 생겼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 가족이 치료 중단과 퇴원을 요구해도 의사들이 이 사건을 들먹이며 요구를 거부했다.

[조선일보/ 2015년 5월 20일 자] 1997년 '보라매 사건' 이후 18년간 지속된 존엄사 논의


존엄사 허용에 대한 본격적 논의 대두: 김할머니 사건

이 사건은 우리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첫 사례로, 사회 각계에서 ‘연명치료 중단’ 지침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김 할머니의 가족은 법원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가 존엄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아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도 냈다. 대법원은 김 할머니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연명치료 중지를 인정했다.


이후 대한의사협회 등이 참여한 ‘연명치료 중지 지침 제정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이 위원회는 만성 질병의 말기 환자나 3개월 이상 식물인간 상태가 지속된 환자 또는 그 가족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 투석 같은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명확한 관련 법규가 제정되지 않아 의료계가 만든 지침은 법적 타당성이 없었고, 일선에선 이 때문에 환자와 의사 간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에선 “경영상 이득을 위해 장기 입원 환자를 꺼리는 병원과 치료비 부담에 짓눌린 환자가 제도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조선일보/ 2015년 5월 20일 자] 1997년 '보라매 사건' 이후 18년간 지속된 존엄사 논의

리앤: 2009년 김할머니 사건 이후 관련 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여러 번의 입법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종교게, 의료계 등  각계각층 간의 합의를 도출하는 데에는 수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현재의 법안은 2013년 국가 생명윤리위원회의 권고안이 그 기반이 되었습니다.


2년의 유예기간… 앞으로의 과제는?

리앤: 법제화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자체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실상의 연명의료 중단은 지금도 관행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각 병원별 연명의료 중단 결정 진행). 다만 연명의료법 제정으로 법적인 틀과 원칙, 표준화된 절차가 만들어지고 이로부터 보다 객관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행을 2년 앞두고, 자칫 무분별한 연명의료 중단이 우후죽순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는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명의료 중단 대상, 연명의료의 범위와 절차를 구체화 함에 있어서도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웰다잉법 통과로 안 씨처럼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는 말기 환자들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법 시행 전 ‘2년의 유예기간’ 동안 일선 병원들이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큰 이유다.


현재도 임종기 환자는 사실상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2009년 김 할머니 사건 당시 연명의료를 중단했던 의료진이 무죄 판결을 받은 뒤부터 관행적으로 연명의료 중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의사 1명의 판단과 가족의 동의만으로도 임의로 연명의료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박상근 대한병원협회장은 “2018년 웰다잉법 시행 전까지 연명의료 절차가 병원마다 달라 혼란이 클 것이다”라며 “오히려 법 시행 이전에 연명의료 중단이 과잉돼서 일어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1월 11일 자] “2년 더 고통의 시간 보내야 하나” 말기 환자들 긴 한숨


연명의료 중단 결정 대상과 절차에서 특히 논란이 재연될 소지가 크다.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임종 과정의 말기 환자’로 정의했는데, 암 환자의 경우 큰 쟁점이 없다. 하지만 만성 간경변이나 폐쇄성 호흡기 질환자 등은 말기와 경계가 모호해 ‘임종 과정’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게 의료 현장의 말이다. 법 통과 후 일선 병원에선 연명의료 중단 대상이 아니지만 식물인간처럼 ‘말기 경계’에 있는 질환자와 보호자들이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대한 본인 의사 확인이 안 될 경우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로 가능토록 한 조항도 위험하다. 만약 가족들이 입을 맞춘다면 어쩔 것인가.

[국민일보/1월 14일 자] [세상만사-민태원] 웰다잉법이 정착되려면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민단체, 병원 등을 통해 이미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은 1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사전의료 의향서 실천본부가 1만 건을 관리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환자 개인이 갖고 있다. 현재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임종기에 접어들어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의향서 시스템 구축 비용(약 10억 원)이 올해 예산에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아일보/1월 12일 자] 웰다잉法 제대로 시행하려면

국내 웰다잉법은 말기 질환으로 임종을 2주가량 남긴 환자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네덜란드, 미국 오하이오 주 등이 임종기를 약 6개월로 넓게 보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엄격하게 연명의료 중단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문제는 웰다잉법이 자칫 임종기만을 위한 법이라는 인식이 커져 ‘좋은 죽음을 실현하기 위한 법’이란 의미가 묻힐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라정란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장(수녀)은 “웰다잉법은 연명의료 중단 허용과 호스피스 완화의료 강화라는 두 축으로 만들어졌는데, 전자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라며 “호스피스 기반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연명의료 중단만 논의하는 것은 대들보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다”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1월 12일 자] 웰다잉法 제대로 시행하려면


3. 필진 코멘트

리앤: 저는 개인적으로 임종에 가까운 환자들이 본인의 의지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권리가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논쟁과 시행착오 끝에 법적인 절차를 통해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다만 아직까지 세부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 법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하는 부분인데요. 자칫하면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의 이익, 가족들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치료 중단이 남용될 소지가 있는 만큼 시행 요건과 프로세스가 정교하게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사전 의향서를 통해 만약에 닥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내 의사를 명확히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전 의향서 작성 참여를 독려해야 할 것입니다. 권리가 보호되고 실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입니다.

by 리앤

yum.hae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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