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삶을 무한하게 늘려 사는 법

시계를 버리면 비로소 시작되는 나의 무한한 우주

by 행푼

최근 인생의 지혜를 꾹꾹 눌러 담은 정수와도 같은 책을 읽었습니다. 화자는 삶을 '무한'과 '유한'에 비유하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사용했고, 결국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에 충실히 살아야 한다로 귀결했습니다.


누구나 머릿속으론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무한한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책에 끌려다니며 저는 계속 마음속으로 질문했습니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하다 못해 한 달 그리고 일 년. 나는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미래에 집착하는 것일까? 란 질문을요.


유한의 희소성은 삶에 절박함과 소중함을 부여하고, 무한의 확장성은 실패하더라도 다음이라는 기회를 영원히 부여하겠죠. 또 다른 예시를 들자면, 유한이 하나의 완성된 소설이라면 무한은 작가의 머릿속이 됩니다.


저는 반복되는 '유한'이라는 문장에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조급함을 느꼈습니다. '인생은 짧다'라는 채찍질과 빨리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부채감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시간은 0에서 100으로 직선처럼 흐르니까요.


저는 여기서 주관적 무한성이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유한함은 외부의 시계나 타인의 시선에서 본 객관적인 시간일 뿐이니까요. 관찰자가 사라지면 세계도 사라집니다. 이 말은, 제 인생에 관찰자인 제가 사라지면 세계 역시 사라집니다. 우주의 역사가 수십억 년이라고 해도, 그것을 인식하는 '나'라는 주체가 없다면 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과 제가 죽은 후의 세상은 저에게 무의 상태죠. 제 삶을 하나의 독립된 완성본으로 만드는 조건이라면, 그 완성본 안에서 저는 영원히 주인공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니 '끝난 후에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즉, 저의 존재 기간이 곧 세계의 전체 시간이 되는 셈이니, 주관적으로는 그것은 유한이 아닌 전무후무한 무한일 수 있는 거죠.


제가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까지가 저의 우주라면, 시간은 저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원이 됩니다. 타인의 속도와 비교할 기준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죠. 시간을 자꾸 재는 습관은 우리가 삶을 결과물로 보기 때문입니다. "30대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10년 뒤에는 어떤 위치여야 한다"는 식의 계산 말이죠.


하지만 내 삶이 나만의 무한한 우주라면, 오늘 아침에 제가 마신 커피 한 잔의 향기나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10분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우주를 채우는 소중한 부분이 됩니다. 여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제 세상을 찬찬히 둘러보는 주인의 권리인 셈입니다. 그런 인생이 끝나면 저희의 세상은 물리적으로 삭제됩니다. 저희가 죽은 뒤에 우주가 1억 년을 더 가든, 당장 내일 멸망하든 저희의 인식 안에서는 똑같이 존재히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적은 견해에 가까운 발상입니다. 제 의견에도 많은 모순이 있죠. 단, 누구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유한한 몸에 갇혀 있으면서도 무한을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마음의 여유일지도 모릅니다. 우선 저는 그렇습니다. 그러니 세상이란 시계에 저를 맞추려 했던 것을 놓아보려 합니다. 어차피 제가 눈을 감으면 제 우주, 세상도 저와 함께 사라질 테니까요.


인생이 짧다고 느껴진다면 더더욱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빨리 뛰면 풍경이 흐릿해져 기억에 남는 게 없지만, 천천히 걸으면 1분이 영원처럼 늘어납니다. 진정으로 인생을 길게 살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가장 느려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