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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Sep 07. 2015

너나 잘하세요? 너부터 잘하세요!

젊으니까 도전하라는 말


“도전정신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젊은이고 나이 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다 가져야지, 왜 청년들한테만 가지라고 하나요?”    


“젊을 때는 잃을 게 없고, 뭘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까 그럴 때 여러 가지 기회를 다 노려봐야 한다는 얘기지. 그러다가 뭐가 되기라도 하면 대박이잖아.”    


“오히려 오륙십 대의 나이든 사람들이야말로 인생 저물어 가는데 잃을 거 없지 않나요. 젊은 사람들은 잃을 게 얼마나 많은데... 일례로 시간을 2,3년만 잃어버리면 H그룹 같은 데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잖아요. 나이 제한을 넘겼다면서.”    


“대신에 그에 상응하는 경험이 남겠지.”    


“무슨 경험이 있든 간에 나이를 넘기면 H그룹 공채에 서류도 못 내잖아요.”    


“얘가 원래 좀 삐딱해요.”    


누군가가 끼어들어 제지하려 했으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술을 마시면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 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하는 거잖아요.”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빈정대는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_장강명, <표백> 중에서    


읽고 나면 머리를 한 대 꽝! 하고 맞은 기분이 드는 장강명의 책 <표백> 중의 한 페이지. 

이 책 속 가상의 청년 ‘나’가 도전하라고 훈계하는 기성세대 ‘H그룹 과장’의 말에 맞서기 위해 일부러 더 격하게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평소 하던 생각을 그대로 내뱉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구절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기성세대들이 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년세대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소통이 잘 안 될 때가 있을지언정 그래도 ‘젊은이들을 착취하려는’ 세대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하게 공감되는 구절이 하나 있다. “도전정신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젊은이고 나이 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다 가져야지, 왜 청년들한테만 가지라고 하나요?” 바로 이 부분이다.    


너부터 잘하세요    


TV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자칭 평균 이하라는 멤버들이 무한한 ‘도전’을 하는 방송이다. <무한도전>의 애청자는 대부분 20-30대다. 기성세대보다는 젊은 층이 더 좋아한다.     


위에 인용한 장강명의 <표백>에서처럼, 20대를 타겟으로 삼으며 쏟아지는 책과 강연 등에서 ‘도전’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도전’은 어느새 ‘꿈’이라는 단어와 함께 본래 의미를 꽃피우지 못하고 우리들로 하여금 거부감마저 일으키게 하는 말로 퇴색되어 버렸다. 

도전. 본래 의미는 좋은, 멋진 단어다. 하지만 현실에 치이느라 지쳐버린 우리들에게 무조건적인 도전을 강요하는 몇몇 이들 때문에 ‘도전’은 지극히 상투적이고, 좀 더 비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아이고 의미 없는’ 단어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아예 제목 자체를 ‘도전’, 심지어 ‘무한도전’으로 내건 방송에 젊은 층이 열광한다. 나 역시 무한도전을 좋아한다. 단순히 보면서 웃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로그램의 취지와 무한도전 멤버들의 도전정신, 그리고 도전정신에서 끝나지 않고 정말로 ‘도전’하는 모습이 좋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어느새 마흔을 훌쩍 넘긴 멤버들도 있다. 사전적 의미로 ‘청춘’의 나이인 멤버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청춘이다. 그들은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한다. <무한도전>은 우리들에게 도전하라고 강요하거나 훈계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먼저 나서 모두가 말리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들을 보면서 자발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도 도전해야겠다고 말이다.    


같이해요, 도전    


장강명의 <표백> 속 청년 ‘나’는 도전하라는 기성세대 ‘H그룹 과장’에게 “오히려 오륙십 대의 나이든 사람들이야말로 인생 저물어 가는데 잃을 거 없지 않나요?” 라고 반문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들은 가족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떠안은 쓸쓸한 가장이기도 하고, 또 책임을 지느라 선뜻 안정된 울타리를 버리고 넘어질 각오를 갖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우리들이 당신들보다는 도전할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과, 혼자 뛰어들기에는 그 기회를 막는 현실의 장벽이 너무도 높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기성세대가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리는 만큼 요즘 우리들은 지독한 무력감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사실 그 무력감은 정말 도전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생기기 시작한 감정이다. 처음부터 도전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기력했던 사람은 없다. 무조건 개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싸움도 누군가가 싸움판을 벌일 계기를 만들어줘야 할 수 있다. 무조건 ‘젊을 때 도전해라, 나이 들면 못한다, 도전에 성공하든 말든 그건 신경 끄고 일단 젊은 너희는 패기 있게 도전이나 해!’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이 힘든 것을 알기에 내가 도와줄 테니 같이 도전해 보자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에게 도전할 기회와 가능성이 좀 더 많이 열려 있을 뿐, 기성세대들에게도 닫혀 있지는 않다. 기성세대든 젊은이든 간에 모두에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열려있는 것이 바로 도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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